영적 리더십
포용의 리더십
리더십에 대한 저서와 강의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존 맥스웰이 이 같은 이야기를 했다.
“리더는 자신의 위치보다 자신의 사람들을 사랑해야만 한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에게는 변호사 시절부터 그를 무시하고 모욕하는 정적이 있었다. 바로 유능한 법률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에드윈 스탠턴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링컨의 외모를 조롱하며 이렇게 독설을 퍼부었다.
“우리는 고릴라를 만나기 위하여 아프리카에 갈 필요가 없다.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 가면 링컨이라는 고릴라를 만날 수 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이것은 국가적 재난입니다”라며 링컨을 공격했다. 그런데 링컨이 내각을 구성할 때였다. 요직인 육군장관 자리에 스탠턴을 임명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참모들은 그의 임명을 극구 반대했다.
이때 링컨은 “원수를 제거하는 방법은 죽여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품어 친구로 만드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스탠턴과 함께 국난 극복에 힘을 쏟았다. 링컨이 암살자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을 때 스탠턴은 링컨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워있습니다.”
링컨을 가장 헐뜯던 사람이 링컨을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리더에게는 따르는 사람, 즉 팔로워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의 평범한 어부나 세리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자들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의 학식이나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이들을 부르시고 포용하셨다.
제자들은 성품이 좋은 자들도 아니었다. ‘우레의 아들’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다혈질이었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비롯해 나중에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겼던 가룟 유다와 같은 배신자도 있었다.
그 외에도 유대의 독립을 꿈꾸며 극단적 정치 성향을 보였던 열심당원 출신의 시몬과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도 그 상흔을 직접 보고 만져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할 만큼 의심 많았던 도마도 있었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나셨던 지도자 예수님은 성품이나 배경이 제각각인 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품으셨다. 예수님이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을 때 그들 모두가 예수님께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따랐다.
이처럼 포용의 리더십에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영적 리더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만 편파적으로 품고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모습의 사람이든지 품어 따르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당시 세리들은 로마를 대신해 세금을 거둬들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중간에서 폭리를 취하거나 사정을 봐주지 않고 강압적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백성들의 원망과 외면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 오셨다고 하시며 죄인이나 세리들과 어울리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1~32).
율법을 엄격히 따르던 유대인들은 이 같은 예수님의 포용의 리더십을 강하게 비난했다.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눅 5:30).
비난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포용의 리더십에는 한계가 없었다. 예수님은 당시 인격적으로 대우받지 못했던 어린아이들을 귀하게 여기셨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셨고,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를 받던 사마리아인 여자와도 말씀을 나누시고 복음을 전하셨다.
이와 같이 포용의 리더십은 품고 보듬어주는 리더십이다. 예수님은 아무도 보듬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과 소통하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편견이 아닌 사람으로 모든 소외된 자들의 마음을 보듬어주셨다.
긍정적인 자화상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 다니던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을 포용해 주시는 예수님을 만난 후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가 되었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요 4:39).
초대교회 안에서도 이방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한 지체가 되었음에도 바리새파 출신의 율법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기본적인 규례 외에는 이방인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행 15:10).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행 15:28~29).
예루살렘 회의의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포용의 리더십을 따르는 결정이었다.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인종과 배경과 사회적 지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은 사람을 병들게 하며 억눌림과 상처 속에 소외시켜 버린다. 진정한 크리스천 리더는 이러한 편견을 깨고 복음 안에서 긍정적인 자화상과 새 희망을 선물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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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담임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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