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안 해본 일 없는 목사

침례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1998년 결혼한 뒤 3주 만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IMF 외환위기가 닥쳐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가난한 유학생 부부의 삶도 팍팍하긴 마찬가지였다.
최 목사 부부는 미국에서 안 해본 일이 없다. 레스토랑 웨이터, 학교 식당에서 접시 닦기, 폐가 수리공, 아파트 계단 청소, 도넛 배달 등을 했고, 아내 이수복 사모는 세탁소, 흑인 가발가게 등지에서 일했다.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는지 어떤 때는 일하러 왔는지, 공부하러 왔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어느 날 교회가 조금 성장해 강단에서 성도들을 보는데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150여 명 성도가 전부 저와 아내가 해본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때 무릎을 쳤습니다. 다윗이 14년간 엔게디, 바란 광야 등을 헤맬 때 이유를 모른 채 도망다녔는데 나중에 왕이 되고 보니 블레셋과 전쟁하는 터가 전부 엔게디인 겁니다. 눈 감고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14년간 공부를 시킨 것이지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이렇게 일을 시키시나 했는데 나중에 보니 엘리트층부터 하루하루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층까지 두루 경험시키시며 성도들의 마음을 알게 하신 겁니다. 성도들과 공감대가 저절로 형성됐지요.”

2002년 생각지도 못한 단독목회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부교역자였는데 담임목사가 떠나면서 오갈 데 없는 성도 15명만 남은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학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마음뿐이었어요. 이민목회 할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런데 성도들이 붙잡는 거예요. 한 영혼이 귀한데 내가 노(NO) 하면 갈 데 없는 성도들… 진짜 억울한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미국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렸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저 스스로 극복할 게 많았으니 더했지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 서운함이었다. 좋은 것은 딴 사람 주고, 자신에게는 안 좋은 것, 남은 것만 주시는 것 같았다.
“1년쯤 지나고 보니 제 바닥이 보이더라고요. 그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너는 스스로 5달란트인데 1달란트 받았다고 불만인지 몰라도 네게는 1달란트도 과분하다’는 것이었어요. 목사는 떠날 생각뿐인데 세상에 교회가 이 교회밖에 없는 것처럼 달려오는 저 15명의 성도가 저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진짜 목회가 시작됐고, 교회가 조금씩 성장했습니다.”

교회가 설립된 지 3년쯤 지났을 때 어른 성도가 50여 명 정도 됐다. 그때 미국교회에서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는다. 백방으로 교회 장소를 물색했지만 마땅한 곳이 나타나지 않았다. 고민이 깊어질 즈음이었다. 70이 넘은, 세미한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게 된 할아버지 성도가 3000여 개의 깡통을 가지고 나타났다.
“깡통들 외에 쪽지 내용이 ‘하나님, 저희 교회에 자체 성전을 주십시오. 하나님께 드릴 헌금이 없어서 깡통 주워 드립니다’였습니다. 전 성도가 감동을 받았지요. 그 깡통들을 판 금액이 80불 80전이었는데 저희 교회 첫 번째 건축헌금이었습니다. 이후 교회에서 깡통 줍기 캠페인도 하고, 아내도 패물을 파는 등 전 성도가 마음을 모아 첫 번째 300석 규모의 교회를 구입해 들어가게 됐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교회 이름도 바꿔주셨다. 사랑마을교회에서 세미한교회로. 세계, 미국, 한국을 그리스도의 품으로 돌려드리는 교회, ‘세계’와 ‘미국’과 ‘한국’의 앞글자를 떼어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3년쯤 지나니 성도들 앉을 자리가 부족할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10분 거리에 500석 규모의 본당, 교육관, 체육관이 있는, 이민교회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아름다운 교회로 이전하게 된다. 여기서도 성도들이 급속도로 불어났다. 마찬가지로 3년쯤 지나니 500석도 부족했다. 그리고 2011년 미주 4300개 교회 중 두세 번째로 건물이 큰, 현재의 교회로 이전하게 된다. 여기에는 놀라운 간증이 숨어 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셔서 최 목사는 대외사역 담당 집사와 함께 무작정 이 교회를 찾아가 팔 계획이 있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당연히 “없다”였다. 사실 세미한교회가 그 건물을 구입할 여력도 없었다. 그리고 10개월쯤 지나 다시 가라는 마음을 주셔서 그 교회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담임목사가 최 목사 일행이 찾아오길 기다렸다며 반가워하는 것이 아닌가.
“교회를 갑작스럽게 더 좋은 곳으로 옮기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 교회 중보기도팀이 기도를 하는데 언제부턴가 방석을 들고 갓을 쓴 사람들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이 건물로 몰려와 기도하는 환상이 보인다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인 거죠. 교회 측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이 교회를 매각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저희를 수소문하다 못 찾고 기다렸던 거예요.”

한편 그 미국교회는 2007년 조용기 목사가 달라스에 왔을 때 말씀을 전했던 교회이기도 하다. 그 당시 한인과 미국인들의 연합집회로 약 3000여 명이 참석했는데 최 목사와 세미한교회 식구들도 그 집회에 참석했었다.
“뒷자리에 앉아서 그냥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나도 저 자리에서 설교하면 좋겠다.’ 그런데 2011년 그 교회가 우리 교회가 된 거예요. 그 교회에서 8년간 설교하다 한국에 온 것입니다.”


<글=최선미 기자, 사진=스튜디오탁스 탁영한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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