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 망한 인생, 복음으로 일어서다!

바람 한 점도 무거웠던 젊은 시절

진정한 혁신은 본질을 지키는 것이라는 유동부 대표. 하나님께 드리고 가족과 고객들에게 건강한 빵을 제공하고자 하는 첫 마음을 놓쳐버린 적이 없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열여섯 살 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첫 직장이 구로공단에 있는 석유난로, 연탄보일러를 만드는 철공소였다. 열여덟 살쯤 되니 소자본으로 내 장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때 우연히 제과점을 알아보게 됐고, 아는 선배 소개로 춘천의 빵집에 취직해 제빵 기술을 배우게 된다.
“혈혈단신으로 춘천에 갔어요. 당시에는 먹여주고 재워주며 제빵 기술만 배울 수 있다면 급여 같은 것은 안 줘도 된다는 시절이었거든요. 새벽 4시 반부터 밤 11시까지 빵을 만들고, 배달하는 등 육체노동이 고됐습니다. 그 당시 참 곤고했던 것 같아요. 일을 마치면 춘천 시내를 배회하곤 했거든요.”
그러다 알게 된 이가 현재 유 대표가 다니는 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의 제자였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유 대표에게 자신이 받고 있는 신앙훈련에 동참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 신앙이 전혀 없던 유 대표는 초신자가 하기 힘든 조건이 붙어있었음에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간 모임에서 귀신이 떠나가고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했기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인해보고 싶어졌던 까닭이다.
“훈련을 받으려면 매일 말씀 30장 읽기, 1시간 기도하기, 말씀 한 구절 암송하기를 실천해야 했습니다. 이걸 안 하면 말씀 나눌 때 끼워주질 않더군요. 그래서 기를 쓰고 기도하고 화장실에 가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1년 정도 그렇게 김 목사님 밑에서 제자훈련을 받았는데 생계 때문에 춘천에서 서울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디어 스물다섯 살 때, 그는 호기롭게 제과점을 오픈했다. 그런데 얼마못가 문을 닫아야 했고, 그때부터 슈퍼마켓, 책 대여점, 우유 대리점, 두 번째 제과점, 식품 제조업까지 약 20여 년을 손을 대는 것마다 줄줄이 실패했다. 그 당시 고단했던 삶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지하에 있는 빵 박스를 메고 1층에 있는 화물차에 싣고 있는데 어디선가 바람 한 점이 불어와 어깨에 부딪쳤습니다. 그런데 그 바람의 무게가 마치 큰 산이 와서 누르는 것 같은 겁니다. 그때 본능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이 월세, 전기세, 인건비만 깨끗이 해결할 수 있다면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마음이 지옥이니 신앙도 곤두박질쳤다. 춘천에서 훈련받으며 뜨거웠던 신앙은 서울에서 보낸 10년 동안 온데간데없어지고 자신이 그렇게 혐오했던 타락한 크리스천으로 변질된 것이다. 한때 예수님 믿는 게 무척 자랑스러웠는데 어느새 교회 다닌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인간이 돼버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어떻게 하면 신앙을 회복할까 방법을 몰라 전전긍긍하다가 1999년부터는 주일마다 춘천을 오가기 시작했어요. 지금 다니는 교회 말이에요.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만 다니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주가 되고 두 주가 지나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글=최선미 기자, 사진=스튜디오탁스 탁영한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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