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로 영적 바이러스를 퇴치합시다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다

오성욱 원장은 어릴 때 공부를 잘하고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는 모범생이었다. 성격은 조용하고 차분하였으나 반장과 회장직을 맡으며 리더십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는 사업을 하는 부모님 슬하에서 부족함 없이 성장할 수 있었으나 1.4후퇴 때 이북에서 내려와 자수성가한 실향민으로 항상 검소했던 부모님 영향으로 절약과 겸손이 몸에 배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치과의사가 된 계기를 물었다.
“과거에 직업군이 다양하지 않던 시절이라 막연히 법조인이 멋있어 보이고 정의의 사도가 되면 좋겠다는 꿈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서울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군복과 비슷한 카키색의 각을 세워 다림질한 멋진 교복을 입고 넓은 경희 궁터에서 수학하며 ‘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을 지키자’는 교훈 아래 넓은 마음을 가지며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문과보다 이과가 적성에 맞았는데 수학 등의 성적이 좋아 응급환자의 부담이 적으며 전문직인 치과의사가 되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오 원장의 부모님은 북녘의 믿음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안수집사로 혈혈단신으로 남한으로 넘어와 실향민으로 살며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삶을 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오 원장도 부모의 신앙을 본받아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었다.
“저는 믿음의 가정에서 셋째로 태어나 모태신앙을 가지고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과 새벽기도와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에 익숙했던 것 같습니다. 1970년대 강남으로 이주하며 부모님은 교회를 개척하셨고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하셨습니다. 어느 날 새벽에 일찍 깨어보니 무릎 꿇고 자녀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과 때마다 기도원에 올라가서 자녀와 나라를 위한 구국 산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보며 부모님이 믿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오 원장의 부모는 명절 때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사랑으로 이북5도청 장학회에 장학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구두 밑창이 닳으면 수선하여 재사용할 정도로 한없이 검소하시지만 실향민들을 위한 헌신과 나눔에는 인색하지 않으셨고, 그런 본을 보여주시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고인이 되셨으나 장로 직분을 받으셨고 어머니와 둘째형, 막내 여동생은 장로 직분을, 큰형은 목사 직분을 받는 등 믿음의 가정의 복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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