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버팀목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찬양사역자가 되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들과 함께. 가족은 전용대 목사의 든든한 울타리다.

그렇게 시작된 기도원에서의 사역은 은혜의 시간들이었다. 찬송을 부르고 단에서 내려오면 그의 손을 잡고 찬양에 은혜 받았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해왔고 병고침을 받았다며 찾아와서 인사를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하나님만 의지했다. 그는 점점 하나님을 더 알고 싶었다. 주변에서 신학을 권유했다. 목사가 되려는 목적보다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 신학공부를 시작했다. 신학공부를 시작하고 그는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왜 태어나게 하셨는지 왜 고난을 보여주셨는지를 깨닫게 됐다.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날 그날 밤 평생 주님만 찬양하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로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복음성가 가수로 지금까지 40년간 전 세계를 다니며 1만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했다.

40년간 수많은 일들이 많았다. 찬양을 통해 병든 자가 일어난 일은 비일비재했고 조폭이 회개하고 돌아온 일, 이단교회인 줄 모르고 갔다가 거절하니 폭행당한 일, 집회 사례비로 가축을 받은 일도 있었다.
“한 번은 운전할 때 아무 일도 없는데 뒷차가 계속 경적소리를 내는 겁니다. 그러면서 차를 한쪽으로 세우라는 거예요. 그래서 차를 세우고 봤더니 그 사람이 자기를 소개하기를 어느 교도소에 있었던 아무개랍니다. 그러더니 자기 차에서 생선 두 박스를 꺼내 제 차 트렁크에다가 넣는 겁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안녕히 가십시오’라며 90도로 인사하더라고요.”

전용대 목사는 요즘에 국내보다 해외에서 집회요청이 더 많이 들어온다. 미국의 1.5세와 2세들이 전 목사를 알아보고 그의 찬양을 좋아한다고.
“미국에서 찬양 반주를 하던 자매가 저의 팬이라고 하길래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저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어렸을 때 부모님들이 항상 제 찬양만 틀어서 거의 세뇌수준으로 노래를 들었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싫었는데 지금은 그 찬양들이 너무 좋아졌다며 환영해주는 일도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전용대 목사를 굉장한 부자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음반과 앨범이 많이 판매된 것은 사실이나 대부분 제작자가 수익을 가져갔다. 또 그는 교회나 집회에서 받은 사례비를 과거 구로공단에서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 찬양팀 사역과 장학금 지급에 쏟아 부었고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음악회를 열어 밀알심장재단에 후원금을 전달해왔다.

“저는 지금까지도 제 이름으로 된 집이 없습니다. 돈을 모으고자 했으면 많이 모았을 테지만 주변에는 항상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이 많아 나눔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지요. 요즘은 이전보다 교회에서 찬양집회나 부흥회를 거의 하지 않아 집회요청이 많지는 않습니다만 때마다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여 슬하에 두 딸을 낳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다. 그의 아내는 축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전 목사가 태릉선수촌에서 예배인도를 할 때 만났다.
“사실 결혼도, 아이를 낳는 것도 생각이 없었어요. 장애인 아빠를 둔 자녀들 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서였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귀한 자녀들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자랑스런 아빠가 되기 위해 늘 노력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포기했고, 이웃과 친구가 포기했고, 저 자신도 포기했던 저를 살리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나의 버팀목 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이유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저의 버팀목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리스트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