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 맞춤형 의료시대에는 ‘의사과학자’가 절실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임인경 박사

“새벽별 보고 출근하고 다시 새벽별을 보며 퇴근했던 시간들이었어요. 오죽하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장래 꿈을 적어낼 때 ‘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겠어요. 늘 곁에 있어주는 엄마를 소망했던 거죠. 생각하면 가슴 아프지만 결국 자신들도 다들 워킹 맘이 되더라구요”라며 미소 짓는 임 교수는 미국에서 있었던 시간을 잊지 못한다.
남편과 함께 갈 계획이었지만 본의 아니게 임 교수가 먼저 좋은 조건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세 딸 중 막내가 생후 11개월밖에 안 된 상태였기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 그러나 홀로 먼저 시작된 미국생활은 정말 힘들고 외로웠던 시간이었다.
“오죽하면 숙소에 들어올 때 아무도 없는 줄 알면서도 ‘누구 있어요?’ 하면서 들어왔겠어요. 심신이 지쳐있을 때 우연히 김진홍 목사(두레교회)님의 설교테이프를 듣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말씀이 꼭 제게 들려주시는 것 같았어요. 본문 말씀은 고린도전서 12장 1~3절 말씀이었는데 내용은 의사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제가 처한 상황과 딱 맞았어요.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너희가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다’라는 말씀이 제 가슴에 박히면서 ‘아, 내가 성령을 받은 자이구나!’를 강력하게 깨달았습니다. 어찌나 기쁘던지 마치 제 몸이 붕 떠서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이 실제로 느껴졌으니까요.”
성령님의 임재를 뒤늦게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의 부모님 고향이 평양이었고 특히 어머니는 선교사로부터 영어를 공부하며 주님을 영접했었던 1세대 복음을 받아들인 믿음의 가정이었다. 아버지가 평양의전을 졸업하고 어머니와 결혼 후 청진에서 병원개업을 하며 나름 안정된 생활을 하던 중 해방을 맞이했지만 친할아버지는 공산주의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이 있으셨다. 모든 것을 배급해주지만 결국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어느 날 온 가족을 모아놓고 자유민주주의가 나라의 근간인 남한으로의 피신을 명령하셨다.
“아버지는 의사면허증만 챙기시고 양쪽 팔에 팔목시계를 가득 채운 후 온 가족이 남하를 결정했어요. 시계가 필요한 이유는 당시 북쪽은 소련군이 주둔해 있었는데 그들이 그렇게 시계를 좋아했어요. 중간에 걸리면 시계를 하나씩 풀어주면 눈을 감아줬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잡히고 말았지요. 바로 의사면허증 때문이었죠. 아버지는 어떤 방에 갇혀 있었는데 그 방에는 모두 의사들이 있었대요.”
다행히 임 교수의 아버지는 화장실 간다는 핑계를 대고 작은 창문을 통해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임진강 철교 아래 철근에 대롱대롱 매달려 건너 그렇게도 그리던 가족들과 만날 수 있었다. 처음 혜화동에 자리 잡았다가 북한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충북지역 산골로 세 형제들이 흩어졌고 할아버지는 세 아들 집을 오가며 생활하셨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어머니는 하나님밖에는 매달릴 분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셨죠. 간절히 기도하며 ‘살려만 주시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겠다’고 고백하셨어요. 그리고 교회 부흥회라도 있으면 당연히 우리 집이 그분들의 숙소가 되었고 부모님은 물심양면으로 잘 섬기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임 교수에겐 남몰래 드리던 한 가지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 매번 부흥강사들이 외치는 “성령을 받으라”는 말이 그에게 큰 부담이 되었기에 “하나님, 제가 주일이면 다른 데 안 가고 교회에 오고 내 용돈 중에 헌금을 빼놓지 않으며 교회에서 봉사도 하는데 과연 내가 성령 받은 자입니까? 성령을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강사 목사님들이 그러시는데 궁금합니다”라는 기도였다. 그런데 그 기도응답을 미국에서 홀로 된 시간에 철저하게 경험했던 것이다. 임 교수는 비로소 ‘아, 내가 죽으면 천국에 가겠구나!’라는 확신, 그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가를 경험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후 아주대 의학대학 여자교수 1호였던 저는 당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뭐든 제가 먼저 개척해야 했으니까요. 그 과정이 녹록치 않았고 의과대학의 기초를 세워나가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사람에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벽마다 주님께 제 모든 속마음을 털어놨어요. 마치 대화를 주고받듯이… 그러면 하나님은 제게 성경말씀과 목사님의 메시지를 통해 답을 주셨지요. 그렇게 문제들을 해결 받는 경험을 하다 보니 주님 안에서의 진정한 자유함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자유함은 오직 말씀입니다.”
임 교수는 삶의 여정 속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다. 바로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매일 이런 기도를 드리게 된다.
“하나님, 저는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사실 은퇴 후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만을 위한 길은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순종하겠습니다. 이는 제가 인생길에서 당신과 함께 할 때가 가장 큰 기쁨인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글=이영희 편집장, 사진=스튜디오탁스 탁영한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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