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바리새인과 마주하다

성전을 사랑한 그러나 예수를 못 박은 바리새인의 고백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나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순간, “다시는 예전의 나로 살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이 흘러 나왔다.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목적이며, 이유가 되셨다.
전혀 타인에게 관심이 없었던 내가 영혼을 향한 열심이 생겼다. 섬겨야 할 순간이 오면 어떤 것이 나를 못 박는 것일까를 고민하게 됐고 나누어야 하는 지체가 앞에 있으면 주님이 보내셨음을 믿으며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려 얼마나 하늘의 문을 두드렸던가…. 그렇게 예전의 ‘나’라고 생각했던 나는 점점 희미해졌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내 발은 선교지에 와 있었다. P국에서 약품을 담은 가방을 등에 지고 부족이 사는 곳을 찾아다녔다. T국에 150여명이 넘는 센터 기숙사를 책임지며 그 아이들을 잘 먹이기 위해 끼니도 거른 채 동분서주 시장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무거운 짐을 나르다 팔목을 다쳐도, 칼을 차고 방 앞에 숨어 있었던 강도를 만 났어도 괜찮았다. 때론 내전이 있는 I국을 가야할 때에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불같은 사랑이 내 갈망의 전부였다. 20여 년이 조금 못 미치는 그 시간이 나에겐 마치 한두 달 지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최근 나는 주님께 영수증을 내밀고 있다. “주님의 계산에 착오가 있습니다.” 나를 내가 원하는 만큼 돌아보지 않으셨다고 말하고 있다.
바리새인.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그들이 기다리던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의 기대와 달리 주님이 입으신 옷은 그저 십자가를 목적으로 오신 ‘허무한 겉옷’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아랍국가인 J국에 와 있다. 싱글의 삶이 더 제한적인 이곳에서의 삶에 나의 한계가 드러난다. 협력하는 가정의 섬김과 함께 사는 자매에게 끊임없이 그들의 부족함을 나타낸다. 현지 지체들에겐 너그러이 미소 짓지만 돌아서면 싸늘한 눈으로 팀의 모습에 계산을 하는 나는 점점 더 어두워진다.

주님의 겉옷을 입으며
예수님은 로마의 손에서 도움을 주지도 않으시고 세리, 창기와 친구가 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내 속에 원함이 이루어지지 않자 숨겨놓은 말이 터져 나왔다. “주님! 이건 아니잖아요.” 마치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세요. 이건 아니잖아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누구보다 헌신했는데 결국 이게 다예요?”라 며…. 새로운 땅에서 다시 언어를 배우고 있는 나에겐 그럴듯하게 나를 소개할 어떤 것도 없었다.

그 동안의 걸음을 내 방법대로 계산하는 나를 발견했다. 주변 지체들의 걸음도 내 계산기가 값을 매긴다. 그들의 값은 마이너스다! 내 마음에 깊은 어둠이 찾아왔다. ‘그냥 다 포기하고 다시 돌아갈까?’ 자기연민에 깊이 빠져들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은 어디에 있나? 결국 하나님을 따라오면 그 날에 좋은 것을 얻는 것이 나의 의도며, 목적이었음을 말씀하신다. 청춘의 모든 시간을 보낸 중년기에 내 가증함이 드러났다. 왕궁에서의 삶을 보장하라고….
하나님은 나를 의롭게 보이게 하는 바리새인의 옷을 벗으라 하신다. 왕궁의 삶을 원하는 음란과 탐심을 벗으라 하신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 땅에 하늘 아버지의 종으로 내려오신 주님은 너를 완성하지 않아도 된다며, 다시 주를 따라오라 하신다. 그리스도의 종 된 제자로 다시 고백한다. “네! 주님, 당신의 사랑이 승리하셨습니다.”†


이연주 선교사·J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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