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바리새인과 마주하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자

누가복음 18장에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가 나온다. 둘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을 때,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의로움을 실컷 자랑하였고,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구했다. 이 상반된 두 모습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당대의 존경받던) 바리새인이 아니라 (천대받던) 세리가 의롭다고 하시며,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고 하셨다.

나의 기도는 바리새인의 기도인가, 겸손한 자의 기도인가
내가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참 감사한 것 중 하나는, 사람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자랑할 것이 없으니 자랑할 일이 없고, 그래서 조용히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엎드릴 수 있음이 참 감사하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사도의 (대우받을) 권리가 있지만 복음의 온전함을 지키기 위하여 그 권리를 결단코 쓰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육신의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고 오직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십자가의 복음만 전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운 사람이었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어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했다(고전 9장).

내 안에도 부디 이런 모습이 가득 있기를 정말이지 너무나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만 살고 싶은데, 때로 육신의 아직 죽어지지 못한 모습으로 인해 넘어지기도 한다. 어느 모임에 갔더니 이름표를 걸어주는데, 내 이름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내 이름 위에 ‘vip’라는 글자가 찍혀 있는데, 순간적으로 야릇한 마음이 들었다. ‘아, 이제 내가 좀 인정을 받는가 보다.’ 한 5초 가량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다. ‘아, 내가 주님의 복음을 위해 결단하고 산다고 하면서 이런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하다니.’ 이런 대우에 익숙해지면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정말이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빌 3장).

기독교 기획사를 운영하면서 추구하고 싶은 자세
내가 하는 일이 기독교 기획사 운영이다 보니, 어떤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올 때 계약이라는 걸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럴 때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아, 이걸로 얼마 벌겠구나’라면, 나는 기독교계를 대상으로 일하는 그냥 사업가이지 결코 신앙인의 자세는 아닌 것이다. ‘이걸로 얼마 벌겠구나’가 아니라 ‘이걸로 하나님이 그분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 무언가를 하시겠구나’의 자세여야 한다. 그래서 맡겨지게 되는 일은, 주께 하듯 해야 한다(골 3:23).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으로 험난한 고난을 기꺼이 통과한 믿음의 선진들을 소개하고 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라합 등등. 여기 히브리서 11장이 말하는 ‘믿음’은, 갈라디아서 2장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하고 말할 때의 구원의 ‘믿음’보다 훨씬 성숙한 믿음이다.

나의 믿음은 딱 구원을 이룰 정도까지의 믿음인가, 아니면 복음과 사명을 위하여 고난을 기꺼이 통과할 수 있을 믿음인가. 믿음의 선진들 앞에, 그리고 생을 바쳐 이 땅에 복음을 가져온 수많은 이름 모를 선교사들과 지금도 해외 각지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복음에 빚진 마음으로 묵묵히 사명을 완수하고 있을 수많은 선교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



박정열 대표·항아리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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