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바리새인과 마주하다

내가 왕바리새인입니다

허운석 선교사님의 마지막 3년여의 삶은 처절한 질고의 시간이었지만, 자기 노력의 삶에서 되어지는 삶으로의 전환이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닌 주님의 열심을 누리며 찬양하는 삶의 비밀을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삶에서도 그 비밀이 발견되고 누려지길 소망한다.

자기 연민의 탈을 쓴 사탄
“누군가에게 비난을 들으면 어떻게 합니까? 체면이 손상되었고, 모욕을 당했다고 화내고 맞받아칩니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이런 수치를 당한다’면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연민, 자기애입니다. 내 안에 깃든 사탄의 견고한 진입니다. 이 자기 연민은 성령이 아니고는 도저히 빼낼 수 없습니다.”(<내가 왕바리새인입니다> 中)

우리 그리스도인이 상처받고 분노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죽은 자아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말씀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내가 없고 예수로 사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가 아닌 죽은 자아를 의지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우리의 자아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고, 시체로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체라도 붙잡는 것이다.
죽은 자아를 애착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만족감이 없고 항상 목마르다. 채워질 수 없는 죽은 자아이기에 만족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나의 미래, 나의 만족, 나의 보상, 나의 체면과 같은 나에 관한 이슈만을 붙잡고 살아간다면 늘 만족감이 없을 것이다. 오직 우리가 이미 죽었다는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 우리 인생의 주어가 내가 아니라 주님이 되실 때 마침내 나의 상처나 분노를 벗어버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십자가 없는 은사는 참담한 결말
“십자가 없이 은사만 있으면, 가뜩이나 신이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우리는 이세벨같이 남을 조종하는 사람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내 마음에 안 들면 내쳐 버리고 나보다 잘나면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나의 신기한 은사를 보고 사람들이 추종하니까 스스로 참람한 이름을 단 면류관을 쓰고 군림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은사는 그래서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내가 왕바리새인입니다> 中)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동일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성령의 은사이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동반하고 있다. 무시무시하게 보이는 사형 틀인 십자가 안에 오히려 부활생명의 능력이 있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은 십자가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만일 십자가의 옷을 입지 않은 은사와 능력은 자기 자신을 높이고, 동시에 타인을 압제하고 위력을 행사하게 된다.

허운석 선교사님은 십자가 없이 은사와 능력만 구했던 자신의 삶을 절절하게 고백하며 회개하신다. 아마존과 같은 척박한 땅에서 헌신하는 선교사의 삶 이면의 어두운 모습을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은사와 기적으로 다른 이들을 속이고 스스로도 속을 수 있다. 말씀에서 주님은 이런 이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 나가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우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실 수 도 있는 것이다.

암이 발견되다
“병을 얻고 지난날의 죄를 낱낱이 회개하고 보니 학교 건물을 짓고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수록 나는 사람들한테는 인정받았지만 하나님한테는 인정받지 못 했습니다. 나를 자랑하고 내 능력을 과시하는데 빠진 나를 보호할 방법은 징계밖에 없었습니다. 병에 걸리자 나는 순식간에 멸시와 모욕을 받는 낮은 자리로 추락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낮아지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질병의 고통으로 인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내가 겸손해지고 온유해지는 것,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내가 왕바리새인입니다> 中)

우리는 웬만해서는 주님 앞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죽은 자아가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끝까지 버티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삶을 멈추고 주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 중심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의 삶에 주님께서 개입하시면,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인해 그제서야 결국 우리는 무릎을 꿇는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에 짓눌릴 때 우리 안의 세포 하나하나에서까지 교만과 거역의 썩은 물이 터져 나온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비로소 정금처럼 나오게 되는 것이다. 고난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므로 참으로 유익하다.

암이 발견되다
“성경에서 ‘이것을 지켜라’ 하는 말씀들은 율법을 힘써 지키라는 말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과하고 성령 안에 거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면 ‘그렇게 살아진다, 그렇게 된다’는 듯입니다. ‘이것을 율법대로 지켜라’가 아니라 ‘이렇게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살아진다. 변화되었으니까!’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주님과 연합 한 사람들은 ‘하지 말아지는’ 겁니다 억지로 ‘하지 않겠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내가 왕바리새인입니다> 中)

내 안에 죽은 자아를 훈련시키고 가르쳐서 예수님을 닮게 하려는 시도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그리고 반드시 실패한다. 죽음은 생명을 흉내 내더라도 결국 죽음이다. 우리는 죽음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예수의 생명을 받아 누리는 존재이다. 우리가 죽은 자아를 벗고, 십자가를 메고 성령 안에 거할 때 예수의 삶이 살아질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반드시 복음의 합당한 삶이 살아지게 되는 것이다. 억지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삶이 곧 은혜이다.

허운석 선교사님의 마지막 3년여의 삶은 처절한 질고의 시간이었지만, 자기 노력의 삶에서 되어지는 삶으로의 전환이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닌 주님의 열심을 누리며 찬양하는 삶의 비밀을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삶에서도 그 비밀이 발견되고 누려지길 소망한다.†

남유다 (목사)

월드미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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