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나눌 때, 찾아오는 평안
삶을 여유롭게 만드는 비움의 기술
우리는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공간에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한계성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이 갖는 제약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항상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들어오는 수많은 물건, 관계, 일들 중 우선순위를 생각해야 한다. 비워낸다는 것은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단 하나뿐인 소중한 삶을 진짜 소중한 것들로, 원하는 것들로 채워 넣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근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게 되었다. 정리를 잘 하기로 소문난 연기자 신애라 씨와 맥시멀리스트로 알려진 개그우먼 박나래 씨가 연예인들의 집안을 정리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정리를 의뢰하는 연예인들은 넓은 집과 고가의 좋은 물건들을 가졌지만 어질러진 집안 환경에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본격적인 정리가 들어가면 MC들과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비우기와 공간 재구성이 진행되며, 프로그램 말미에는 정리된 집안이 공개된다. ‘정리로 우리 집이 바뀔 수 있을까?’라고 의심을 했던 집주인은 이사나 인테리어를 하지 않고 정리만으로 환골탈태된 집안을 둘러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드라마틱하게 변화된 집안을 보는 것이 이 프로그램을 보는 큰 재미지만 내가 즐겨보게 되는 까닭은 비우지 못하는 집주인과 정리를 도와주러 온 MC들이 옥신각신하는 장면 때문이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나도 저런 물건들을 못 버리고 가지고 있는데.’하는 공감도 불러일으키고, ‘이번 기회에 비워볼까?’ 하는 용기도 주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리 집도 저렇게 정리해야지!’라는 의지를 다진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물건을 비우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이익보다는 손실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두 배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어떤 물건들을 어떻게 비워야 하는지, ‘필요, 시간, 기분, 가치, 공간’이라는 다섯 가지 기준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필요 : 현재 하는 일과 연관되었는가
우리가 물건을 소유하는 이유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 물건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어떤 일과 연결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 기준으로 비울 수 있는 물건은 특정 기간을 회상할 수 있는 과거의 물건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과거 명함인데, 회사나 직급, 연락처가 변경된 명함은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가지고 있어도 아무 쓸 데가 없다. 닉네임 개고양이 님은 직급이 바뀌어서 사용하지 않는 명함을 버리면서, 쓰지도 못하는 것을 왜 통째로 보관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제인 님도 2년 전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했던 급여 명세서 한 뭉치를 버렸다. 그때 일한 경험이 소중해서 모아 놓았는데, 종이는 종이일 뿐, 종이를 버린다고 추억까지 버려지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단지, 빵끈, 쇼핑백, 비닐봉지, 택배박스 같이 무심코 모으게 되는 물건들도 이 기준으로 비울 수 있다. 사람들은 ‘언젠가 쓸 때가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버리지 않으면서, 언제•어디서•어떻게•얼마나 쓰일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배달음식 전단지는 모아봤자 검증된 단골집에서 먹어야 후회가 없다는 것이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쇼핑백, 택배박스, 비닐봉지는 생기는 양에 비해 쓸 데가 거의 없다. 내 아내는 유명브랜드의 쇼핑백은 버리지를 못하는데 그런 쇼핑백은 튼튼하고, 모양도 예쁘기 때문에 가방 대신 사용할 만하다. 그런 쇼핑백만 크기별로 몇 개만 남기면 된다. 비닐봉지는 상시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양을 가늠하여 통에 보관하고, 그 이상 늘어나는 것들은 분리 배출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시간 : 사용하기 위한 시간을 낼 수 있는가
두 번째 기준은 ‘시간’이다. 물건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을 사용하려면 일을 해야 되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장식품이라도 그것을 감상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방치된 물건은 어쩌면 물건을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언제 쓸 수 있는지, 사용이 가능한지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자.
전자제품 중에 대표적인 것이 주방기구다. 예를 들어 아침식사 대용으로 주스를 마시기 위해 주스를 만드는 기계를 구입했다고 치자. 그러나 생각했던 것만큼 자주 쓰지는 않게 된다. 출근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빠듯하고, 주스를 마시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이 바쁘다면 저녁시간이라도 사용하면 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재료를 사는 시간, 씻고 다듬는 시간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사용한 뒤에는 음식물 찌꺼기를 버리고, 부품들을 분리해서 구석구석 씻는 것도 일이다.
그래서 쓰지 않는 쥬서기가 고객들 집마다 하나씩 있다. 비싸게 주고 산거라 버리기도 쉽지 않고, 부피는 커서 적지 않은 공간을 차지한다. 이런 경우 정리 컨설턴트들은 아예 눈에 잘 띄고, 사용하기 편리한 곳에 놔드린다. 그래야 한 번 더 보게 되고, 사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지 않으면 그제야 처분할 결심을 하게 된다.
운동기구도 안 쓰고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하루 30분이라도 운동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데, 집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운동보다 집안 일이 먼저고, 힘들게 운동하기보다 쉬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헬스장에 다니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운동시간을 확보하는 방법일 수 있다.
그 밖에 사용하지 않으면서 버리지 못하고 수집만 하는 것들이 있다. 액세서리나 스카프, 샘플 화장품 같은 것들이다. 액세서리나 스카프를 잘 안 하는 사람이라면 많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가장 좋아하는 몇 가지만 남기고 과감히 처분하자. 샘플 화장품도 여행 갈 때 사용하려고 모으는 사람이 있는데, 1년에 몇 번이나 여행을 가는지 생각해본다면 평소에 사용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여행 계획이 세워질 때 준비해도 늦지 않다. 너무 오래 뒀던 샘플은 변질돼 피부에 좋지도 않다.
기분 : 즐거움, 설렘을 주는 물건인가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라도 나에게 좋은 기분을 준다면 이런 물건은 고민하지 말고 남겨야 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쓸모도 없으면서,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하는 잡동사니와 같은 물건들이 많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선물, 기념품, 옷, 결혼예복, 옛날 사진과 같은 추억의 물건들이다. 그런 물건들은 물건 자체보다는 그 물건을 준 사람, 그 물건을 산 곳, 그 물건을 사게 된 이유들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방치된다. 사용하기 불편한 물건도 여기에 해당된다. 예쁜 옷이지만 불편하거나 느낌이 좋지 않은 옷은 손이 잘 가지 않기 마련이다.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물건을 만져보고 ‘설렘’이라는 기준으로 남길 물건과 버릴 물건을 판단하라고 한다. ‘설렘’이라는 것은 감정적인 기준이므로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물건에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면 ‘3초 정리법’을 적용해볼 수 있다. 물건을 만지면서 3초 안에 버릴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결정하지 못했다면 그 물건은 나에게 어떤 느낌도 주지 못하는 잡동사니일 가능성이 높다. 감정은 오래 생각한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고민하고 싶은 물건이라면 더욱더 빠른 결단을 내야 한다. 생각은 하면 할수록 버릴 수 없는 더 많은 이유를 만들어내게 되어 있다.
가치 : 나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물건인가
주방정리 컨설팅을 하다 보면 사은품으로 받은 밀폐용기나 배달음식을 담았던 일회용 용기 등을 버리지 않고 쌓아놓는 고객들이 적지 않다. 상부장에는 글라스락 밀폐용기 세트가 있으면서도, 이런 용기를 버리지 못하고 재활용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또 손님들을 대접할 때 쓴다고 상부장 꼭대기에 예쁜 그릇들을 고이 모셔놓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소중한 우리 가족은 이가 나간 그릇을 쓰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손님을 치를 일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데 말이다.
<돈과 행운을 부르는 정리의 비밀>에서는 비우기를 위한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이상적인 미래의 나도 이것을 쓰고 있을 것이다”, “이상적인 나로 변신하는 데 필요하다”, 이 두 가지 기준을 상상하면서 버릴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하라는 것이다. 물건은 사용하는 사람을 대변해 준다고 한다. 질 좋은 물건은 써버릇 해야 한다. 내가 나를 가치 있게 생각해야 성공과 행운이 따르는 법이다.
공간 : 보관할 공간이 있는 물건인가
가정 컨설팅을 하러 가면 가장 활용도가 떨어지는 곳이 베란다 창고이다. 잘 활용하면 선풍기 같은 계절용품이나 교자상처럼 자주 꺼낼 일이 없는 물건들을 넣어두기 좋다. 하지만 대부분 이사 가기 전까지 꺼낼 일이 없을 것 같은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고, 선풍기와 교자상은 집안을 방황한다. 둘 곳이 없다고 아무데나 놓지 말고, 불필요한 물건들을 과감히 처분하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듯, 집에서도 선입선출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기준은 오랫동안 배경처럼 자리해서 비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물건들에게 ‘정말 버리면 안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한정된 시간과 한정된 공간에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한계성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이 갖는 제약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항상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들어오는 수많은 물건, 관계, 일들 중 우선순위를 생각해야 한다. 비워낸다는 것은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단 하나뿐인 소중한 삶을 진짜 소중한 것들로, 원하는 것들로 채워 넣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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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현 (대표·베리굿정리컨설팅, 국내 1호 정리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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