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나눌 때, 찾아오는 평안

마음을 정리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잘 살고 싶다면 하나님의 눈으로 삶을 보아야 한다. 크게 보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내 마음을 당기는 것에 저항하며 무엇이 삶 전체에 도움이 되는지를 묻고 결정한다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들로부터 많은 자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이 시간이 유일한 것처럼 하나님을 주목하고 그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일상 속에서 시작된다면 우리는 이미 그를 향한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영원히 크신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여행을 떠나면서 편안함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격식을 차리기 위해 비싼 예복을 챙기는 사람도 없다. 여행은 가볍게 떠나야 제 맛이다. 만나는 사람들이 새롭고 보는 것이 신기하다. 그렇게 낯선 땅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면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이 중요치 않게 된다. 어느 뒷골목에서 만난 오래된 카페의 묵은 탁자를 새로 지은 오피스의 반듯한 책상과 비교하지 않고 제각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거리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들판 멀찍이 서 있는 몇 그루의 코코넛 나무와 그 뒤로 넘어가는 석양도 가벼운 마음으로만 누릴 수 있다.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아이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사람을 향한 분노로 무거워진 마음은 도무지 누릴 수 없는 것들이다.

마음 이해하기
성경은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고 했다. 마음을 정리하고 지키고 다스리려면 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쉽게 무거워진다. 뭔가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지쳐있는 이 자유롭지 못한 마음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중독’이다.
중독이란, ‘우리의 마음속 어떤 욕구가 통제되지 않은 채 작동해서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는데 자신의 의지적 결정으로는 이 반복된 행동을 제어할 수 없으며 몰입된 관심과 유도되는 행동 때문에 삶의 다른 부분이 관심 밖에서 부서지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행동은 외적 행동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 전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추구되는 생각과 따라오는 감정도 포함한다. 보이지 않지만 특정한 내용을 가진 생각 혹은 기억, 이에 따라오는 감정이 오히려 중독 행동의 뿌리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풀어보면 중독은 모든 이들의 내면에서 발견될 수 있다. 마치 성경이 죄가 모든 이에게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중독이 그러하다.
중독이 일반적일 수밖에 없는 특성이 우리 마음속에 있다. 삶에서 벌어지는 많은 이야기가 마음의 이 특성과 관계되어 있다. 이는 ‘자신을 또 다른 누군가와 연결해서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다. 하나님과 이어진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빚어진 존재이기에 성경적으로 보면 너무도 당연한 특성이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를 ‘애착(Attachment)’이라고 부른다. 마치 마음의 표면에 찍찍이(벨크로)가 있는 것처럼 정서적으로 가까이 있는 대상에 들러붙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특성이 사람들의 마음이 무거워지는 과정에 작동한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힘겹게 씨름하고 있는 삶의 테마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은 또 다른 존재와의 연결을 통해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는다. 자기 가치감을 채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며 감정적으로는 불안과 우울을 해결 받고 연결된 마음을 의지하여 그 처리 방법을 배운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내가 아무런 조건 없이 안전함을 느끼며 연결될 수 있는 대상을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모를 포함한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연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사람들은 내면의 조성에 단절에 대한 불안(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부정적이지만 아주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계속 진행하자면 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애착의 대상을 찾게 된다. 과정 속에서 일시적이거나 혹은 건강하지 않은 관계일지라도 이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대상을 만나게 되면 찍찍이가 작동한다. 유착되면 더 이상 다른 변화를 만들 수 없을 만큼 단단한 고리를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삶의 방식이 습관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것이 습관이라는 관점에서 본 중독의 발생 과정이다. 잘 알려진 중독의 대상은 술, 담배, 약물 같은 것들이다. 이 물질들을 섭취했을 때 얻게 되는 감정의 변화를 탐닉하는 형태로 습관이 된다.

상처와 분노 처리하기
상처나 분노 반응에 유착된 삶의 형태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상처받은 사람은 단지 상처받은 사건에 대한 기억 때문에 힘겨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 때문에 숨겨진 내면에 복수하고 싶은 욕구와 불안 등 정서적인 반응들이 생기게 된다. 이를 용서로 풀어내지 못하면 결국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생각과 감정에 일정한 틀이 생기게 된다.
이 틀은 자신의 정체성, 타인에 대한 판단, 관계에 반응하는 방식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또다시 열등한 자기를 만나고 싶지 않아서 꼭 해야 할 일을 미루는 행동도 이 곳에서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무엇보다도 무겁게 만드는 것은 고정된 사고의 틀이다. 마음의 뼈대가 되는 사고의 틀은, 연결된 모든 것들을 일정한 방식으로 고정시켜 버린다. 인간이 가장 깊게 중독되는 것은 ‘자기 관점이다’라는 말이 여기서 기인한다.

마음을 가볍게 하기
결론으로 이야기하면 굳어진 마음을 스스로의 결단으로 가볍게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유착이 일어난 대상들과 그로 인해 익숙하게 만들어진 삶의 습관을 의지의 결정으로 떼어내려는 시도는 마치 문제의 소멸을 위해 자기 손으로 자기 목을 조르려는 시도와 같다.
그래도 변화를 포기할 수 없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다. 포기할 수 없는 결속의 욕구가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결속의 대상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 “뿌리를 해결하지 못하고 또 다른 형태의 중독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중독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 형태를 바꿔가며 한 사람의 삶 속에 이어진다고 이해해 왔다. 하지만 이건 대상의 문제이다.
성경은 우리가 원래 결속을 이뤄야 했던 대상을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집중할 때 우리의 마음이 자유를 누리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대상이신 하나님 쪽에서는 이유를 따지지 않고 항상 함께 있어줄 의도를 가진 분이어야 하고 우리 쪽에서는 내 인격의 한 부분도 소외됨 없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연인을 사모하는 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그 사람 생각 외에 모든 것이 중단된다. 오직 그에게 갇혀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 인격의 모든 부분이 활동하기 시작한다. 감정, 사고 심지어는 그동안 무기력했던 의지적인 결정까지 생명 있게 타오른다. 그리고 스스로 정리하지 못했던 삶의 요소들이 정화되기 시작한다.
하나님과의 사랑에 몰입된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마음에서부터 성화의 과정이 시작된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믿으면 ‘의롭게 여김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껍데기가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그와 함께 하기에 합당하지 않은 것들이 소화되고 새로운 조성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결코 스스로의 목표의식, 결정, 노력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 상태에서는 노력할수록 오히려 마음이 자신으로 채워져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소멸되어도 기꺼워할 수 있는 사랑을 통해서만 이기성의 늪에서 빠져나와 가벼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보이지도 않고 잘 알지 못하던 하나님을 믿음으로 삶의 조성이 바뀌어가는 일이 어찌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의 옛 사람 속에 이미 틀어박혀 있는 수많은 습관의 조각들이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이들 중 한 조각이라도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뿐 아니라 하나님을 주목하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익숙한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기회다. 자유로운 누림을 위해 매일 여행하듯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 속에서 그럴 수는 없다. 여행을 마치면 반복되는 일상의 틀 속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고 하루 종일 비슷한 말과 행동을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일상 속에서도 여행의 가벼운 마음을 누릴 수 있다면 어떨까?

하나님과 함께 살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는 영생이 약속돼 있다. 영원한 시간을 산다는 것은 영원히 똑같은 시간의 반복을 경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영원히 매 순간 특별한 시간을 산다는 의미이리라. 영생의 약속은 지금 이 시간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잘 살고 싶다면 하나님의 눈으로 삶을 보아야 한다. 크게 보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내 마음을 당기는 것에 저항하며 무엇이 삶 전체에 도움이 되는지를 묻고 결정한다면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들로부터 많은 자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이 시간이 유일한 것처럼 하나님을 주목하고 그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일상 속에서 시작된다면 우리는 이미 그를 향한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영원히 크신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김준 (선교사)

예수전도단 상담학교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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