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과 ‘격리’의 시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훈련의 시간
멈춤과 격리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위기를 낭비하지 말자. 윈스턴 처칠은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주신다. 위기 가운데 인생 역전의 드라마를 연출해 주신다.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갑자기 멈추게 했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멈추게 했다. 또한 자가 격리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격리케 만들었다. 접촉하며 살던 세상을 접촉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접촉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접촉이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접속은 많아지고 접촉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에 이제는 아예 접촉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나는 성도들에게 코로나19가 오기 전에 접속만 하지 말고 접촉하라는 부탁을 하곤 했다.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접촉하지 말고 접속을 하라고 거꾸로 권면을 하게 되었다. 이제는 접속이 곧 접촉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접촉할 수 없는 언컨택트(uncontact) 시대에는 접속을 통해 온컨택트(oncontact)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게 되었다. 엄청난 변화다. 이제는 온컨택트 즉 인터넷상의 접촉을 강조하는 시대가 되었다. 온라인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다고 말했던 목회자들이 이제는 온라인예배를 통해 얼마든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하게 되었다. 지금은 온라인예배와 교회에서 드리는 현장 예배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는 멈춤과 함께 우리를 격리시켰다. 코로나 확진자는 격리를 해야 한다. 격리를 해야 하는 이유는 치유를 위해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코로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도 스스로 자가 격리를 해야 한다. 격리가 강요되고 있고, 스스로 격리를 선택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멈춤과 격리의 축복을 찾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낭비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전염병으로 인한 멈춤과 격리는 지금 우리 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염병이 창궐하면 어김없이 멈춤과 격리는 삶의 현실로 찾아왔다. 멈춤과 격리는 꼭 전염병으로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멈춤과 격리는 필수다. 먼저 멈춤의 은혜를 살피고, 그 다음에 격리의 은혜를 살피고 싶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멈춤의 은혜가 있다
우리는 늘 분주하게 살아간다. 우리는 멈춤을 두려워한다. 끝없이 성공과 성취를 향해 질주한다. 우리는 속도가 강조되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멀리가 강조되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더 많이 더 빨리 더 멀리가 강조될 때 우리 영혼은 혼란스러워한다. 우리 영혼은 너무 빠른 속도를 불안해한다. 왜냐하면 우리 영혼은 고요한 것을 좋아하도록 만들어진 까닭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잠시 멈춤의 지혜다.
멈추면 보게 된다. 빠르게 움직이면 보지 못하는 것들이 멈추면 보게 된다. 빠르게 지나가면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을 속도를 줄이고 또한 멈추게 되면 보게 된다. 멈출 때 우리는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된다. 이전에 음미하지 못했던 것을 음미하게 된다. 진정한 맛과 멋을 경험하게 된다.
멈추면 듣게 된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또한 우리와 교제하길 원하신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분주하게 움직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음성은 세미한 음성이다. 그래서 멈추어 경청하지 않으면 잘 들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멈추게 하심으로 듣게 하신다. 예수님은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때 좋은 것을 먹게 되고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게 된다(사 55:2).
멈추면 맑아진다.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호수는 탁하다. 반면에 거센 폭풍우가 멈춘 고요한 호수는 맑다. 호수에 거센 물결이 치면 하늘을 담을 수가 없다. 반면에 호수가 고요해지면 하늘을 담는다. 밤에는 달과 별을 담는다. 우리 영혼도 멈추면 고요해지고 맑아진다. 우리 영혼은 고요함 속에서 평강을 누리도록 만들어졌다. 고요한 평강을 누리고 싶다면 멈추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멈추면 우리 자신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가장 만나기 싫어하는 대상이 있다면 우리 자신일 수 있다. 우리 자신을 대면한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우리 실상을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만나야 할 대상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정작 돌보아야 할 대상은 우리 영혼이다. 우리 자신을 진실하게 대면할 때 우리 자신을 바로 잡을 수 있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킬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영혼이 행복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멈추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은 인격자이시기에 만남이나 교제를 강요하는 분이 아니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길 원하신다. 성도가 누리는 가장 큰 축복은 성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삼위 하나님의 교제 가운데로 초청해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멈출 때 우리 자신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성삼위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멈춤은 친밀한 교제의 시간이다. 친밀한 교제에서 중요한 것은 충분한 시간이다. 멈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시간을 충분히 갖게 된다.
멈추면 안식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피곤에 찌들어 있다. 지쳐 있다. 탈진상태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다. 멈추어 쉬지 않으면 영원한 멈춤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멈출 때 우리의 피곤한 육체가 쉬게 된다. 멈출 때 우리는 자게 된다. 멈출 때 우리는 누리게 되고, 놀게 된다. 그때 우리는 새 힘을 얻게 된다. 멈춤은 그냥 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하나님이 공급해 주신 새 힘을 얻는 시간이 멈춤의 시간이다. 멈춤을 두려워하지 말라. 멈춤은 축복이다. 멈춤은 음악의 쉼표와 같은 것이다. 쉼표가 없는 음악은 음악이 아니다. 진정한 음악의 아름다움은 멈춤을 통해 주어진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격리의 은혜가 있다
격리의 은혜는 다른 말로 고립의 은혜다.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격리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은 두려움이다. 소외됨이다. 외로움이다. 격리는 답답하다. 격리는 자유를 상실한 느낌이다. 격리는 단절감이다. 격리는 잊혀진 느낌이다. 집에서 자가 격리만 해도 고통스러운데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는 감옥에 격리된 사람들이 있었다. 어두운 굴에 갇혀 있었던 사람도 있었다. 격리는 고통스럽지만 격리 속에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한 사람은 격리를 축복으로 여긴다.
격리를 통해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환자들을 격리하는 것은 치유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격리를 통해 우리를 치유하신다. 하나님은 구약에서 불결한 것과 접촉한 사람들에게 일정 기간 동안 격리하도록 명하셨다. 접촉이 소중하지만 접촉을 통해 병이 감염될 수 있다. 접촉을 통해 감염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간 동안 격리해야 한다. 격리는 우리를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라 치유하기 위함이다. 어떤 접촉은 나쁜 접촉이 있다. 폭력에 가까운 접촉이 있다. 우리 육체와 감정과 영혼에 깊은 상처를 주는 접촉이 있다. 우리를 괴롭히는 접촉이 있다. 하나님은 때로 그런 접촉을 시도하는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격리시켜 주심으로 우리를 치유하신다.
격리를 통해 하이콘택트(Highcontact)를 경험하게 된다. 언컨택트시대에 필요한 것은 하이콘택트다. 온컨택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이콘택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접촉이다. 존 네이스빗은 <하이테크(High Tech)-하이터치(High Touch)>라는 책을 썼다. 하이테크시대에 오히려 필요한 것은 하이터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쓴 책이다. 하이테크시대에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은 하이터치다.
우리가 격리하게 되면 사람들과의 접촉이 단절된다. 그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접촉 즉 하이터치다.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 그는 격리 중에 있었다(렘 33:1). 사방이 다 막혀 있었다. 하지만 하늘이 열려 있었다. 하늘 문이 열려 있었다. 그는 기도를 통해 하이터치를 경험했다. 하나님과의 접촉을 통해 놀라운 계시의 말씀을 받았다(렘 33:2~3).
격리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게 된다. 하나님이 쓰신 인물들은 대부분 일정한 기간 동안 격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격리하게 되면 홀로 있게 된다. 홀로 있는 시간에 우리는 무엇인가를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집중해서 준비하게 된다. 격리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격리의 시간은 학습하는 시간이다. 요셉의 경우에 보디발의 집과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고립을 경험했다.
요셉이 사랑하는 아버지와 친동생 베냐민 그리고 그를 미워하는 형제들로부터 격리 되었을 때 그는 고난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애굽에 팔아넘긴 형제들을 미워하고 그들을 향해 복수심을 품는데 에너지를 쏟지 않았다. 그는 그가 머무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고립의 시간을 배움의 기회로 여겼다. 애굽의 언어와 문화와 정치를 배웠다. 그는 격리 중에도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섬겼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함께 갇혀있던 술맡은 관원과 떡맡은 관원을 잘 섬겼다. 그들은 그 당시에 장관들이었다. 그는 그들을 섬기는 중에 정치를 배웠다. 바로 왕이 어떤 사람인지를 배웠다.
나의 인생에도 가끔 고통스러운 격리의 시간들이 있었다. 때로는 스스로 격리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집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좋은 책을 읽었다. 책들을 읽으면서 미래를 준비했다. 독서와 학습을 통해 더 깊은 배움을 얻었다. 인생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었다. 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심화할 수 있었다.
격리를 통해 놀라운 작품이 탄생된다. 인생은 역설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역설의 은혜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 내신다. 마르틴 루터가 바르트부르크 성에 감금되어 있는 동안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갈릴레오는 자택 구금 상태에서 <대화(Dialogue)>를 집필했다. 나중에 이 책으로 인해 아이작 뉴턴이 운동의 세 가지 법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단테의 역작인 <신곡>은 사형선고를 받은 후 20년을 지내는 동안 쓴 것이다. 존 번연은 베드포드 감옥에 감금되어 있는 동안 <천로역정>을 썼다.
격리를 통해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을 가져다 준 사람은 사도 바울이다.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옥중서신을 썼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는 복음의 정수를 보여주는 보배다. 그는 옥중에 격리되어 있는 동안 절망하지 않았다.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했다. 오히려 감사했다. 오히려 감옥을 복음 전파의 거룩한 장소로 만들었다. 그는 감옥 생활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는 감옥에서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렸다. 그들을 위해 옥중에서 편지를 썼다.
바울은 옥중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의 계시는 조용한 곳에 임한다. 홀로 있을 때 임한다.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계시는 고립의 때에 받게 되는 은혜다. 그의 몸은 옥중에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다. 그는 옥중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을 깨달았다. 창세 전부터 영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드라마를 보았다. 그는 옥중에서 받은 계시를 편지로 기록했다.
사도 요한도 밧모섬에 격리되어 있는 동안에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밧모섬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섬에서 요한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다. 그는 하늘에서 임하는 계시를 받았다. 천국의 신비를 드러내 주었다. 그의 격리와 그의 홀로 있음이 우리를 복되게 했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한다.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걱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걱정하지 말고 기도하자.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미래를 준비하자, 역사는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다. 그분의 섭리 안에 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다.
멈춤과 격리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위기를 낭비하지 말자. 윈스턴 처칠은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고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주신다. 위기 가운데 인생 역전의 드라마를 연출해 주신다. 멈춤과 격리 속에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도록 하자. 멈춤과 격리의 시간을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충만히 받는 기회로 만들자. 미래를 잘 준비하는 기회로 만들자. 멈춤과 격리의 시간에 우리 함께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도록 하자. 하나님만이 우리의 산 소망이시다. 하나님을 소유한 자가 가장 부요한 자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신다.†
강준민 목사·L.A. 새생명비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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