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과 ‘격리’의 시간

코로나로 강제 폐쇄를 겪은 후 느낀 것들

2주의 격리를 마치고 주일 오후 예배부터 모여서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격리 기간이 주일 정오 12시까지였기에 오후예배부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또 깊이 느낀 것 하나가 있는데 ‘이렇게 자유롭게 나와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운 복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감격스러웠습니다.

6월 초에 성도 한 분이 전화를 하셨는데 조심스러운 목소리도 자신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모회사소속 확진자가 우리 교회 성도님 회사를 방문하면서 성도님이 전염이 되신 것이었습니다. 성도님은 교회의 다른 성도들에게 피해 갈 것을 생각하시고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하신 것입니다.
저희 교회 교역자가 예배 참석한 성도들에게 집 근처에 있는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으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다음 날 성도들이 검사를 받기 시작했고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총 여덟 분의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음성이 나온 성도들 역시 2주간 격리 조치를 당해야 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첫째는 양성 판정 받은 성도들의 문제였습니다. C집사님은 그분으로 인해 회사 용역들 전체가 일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본인만 피해를 입으면 괜찮지만 자신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면서 힘들어하셨습니다. 죽고만 싶다고도 하셨습니다. C집사님을 위해 기도하면서 대화하는 중에 겨우 마음이 추슬러졌습니다.

핍박 받는 성도들
K집사님은 인천에 학원을 열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가서 개원예배를 드렸습니다. 매달 월세와 관리비가 600만 원 가량 나가는데 원장이 입원해있으니 학원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있던 아이들까지 빠져나갑니다. 그런다고 월세를 안 받는 것도 아닌데요, 경제적인 면에서 타격이 너무 심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둘째로 격리된 성도들이 겪는 어려움입니다. 몇몇 성도들은 직장을 잃어야 했습니다. 요즘 취직난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잘 다니던 직장을 잃게 되었으니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을 잃지 않았지만 차가운 눈총을 받는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어린이집 교사와 병원 간호사가 그랬습니다. 확진자가 나오면 큰일인 곳이라 그런 듯합니다.
가족들로 인해 눈치를 본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자녀 때문에, 어떤 집사님은 건강하지 못하신 어머니 때문에, 일부 청년들은 믿지 않는 부모들로 인해서 마음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한 청년은 방 하나에 갇혀 있었는데 그 방문으로 먹을 것을 밀어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런 영상을 보내줘서 웃기는 했는데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셋째로 언론이나 지역 사회의 반응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입니다. YTN을 포함하여 텔레비전에서 우리 교회를 뉴스로 내보냈습니다. 신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 같은 포털에서는 메인으로 올라갔습니다. 제가 세 보았을 때만 해도 우리 교회 기사가 70개가 넘었습니다. 그 후로 더 많이 올라갔겠지만 속상한 것을 자꾸 볼 필요가 없다싶어서 그만 셌습니다.
지역에서도 공격이 들어왔습니다. 지역 언론에 교회가 노출되었고 지역구민들이 7000명 이상 가입되어 있는 페이스북 그룹에서 우리 교회 이야기가 계속 올라갔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여러 역할들을 잘 하고 계신 권사님이 우리 교회 가족이신데 교회를 대신해서 이런저런 말을 많이 듣느라고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사실 여러모로 강심장입니다. 뇌수술을 받기 전날 의사가 세 번이나 위험하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침대에 누운 채 수술실에 들어갈 때도 쳐다보는 성도들에게 브이를 남기고 들어갔습니다. 수술이 잘못되어 아내와 아이들은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뇌수술 외에도 몸 전체에 많은 문제들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얼마든지 버틸 수 있고 뚫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성도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줄줄 나왔습니다. 얼굴이 퉁퉁 불어버릴 정도였습니다. 밤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탄식하면서 우리 성도들을 붙들어달라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시련을 이기게 하시고 더 멋지게 성장하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저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 것은 놀랍게도 어려움 가운데 처한 우리 성도들이었습니다. W장로님과 통화를 하는데 제1남전도회에서는 이번 격리 기간 동안에 성경통독을 하기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짜증내고 원망하고 우울해하는 게 아니라 말씀에 집중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격리자들을 다 같이 모아놓은 단톡방에 P집사님이 릴레이 기도를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자마자 여기저기서 자신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서로서로 빈 공간을 채워가며 기도하겠다고 나섰고 제 아내도 새벽 1시~3시 타임을 맡았습니다. 제가 시킨 것도 아니고 언질을 한 것도 아닙니다. 성도들이 알아서 그런 일을 했습니다. 제 입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왔습니다.
확진자인 G집사님은 병원에 입원한 성도들의 사정을 일일이 파악해서 단톡방에 올렸습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그 내용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단톡방 안에는 툴툴거리는 글은 하나도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내라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내용들로 가득 찼습니다. 제 눈에서 눈물이 사라진 것은 바로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부터입니다. ‘이번 코로나로 인한 고난이 우리 교회에 화가 아니라 복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마음이 편해진 것입니다.

격리 기간 동안에는 아무도 교회로 올 수 없으니 영상으로 예배를 띄워야했습니다. 그 일은 교회 5층 사택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의 몫이었습니다. 제가 설교를 하고 아내가 반주를 하고 큰 아들이 찬양인도를 하고 작은 아들이 PPT를 다뤘습니다. 첫 예배부터 성도들이 참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 가족들이 똘똘 뭉쳐 여러 차례 예배를 진행하면서 나름대로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결속력도 더 좋아졌고요.
2주의 격리를 마치고 주일 오후 예배부터 모여서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격리 기간이 주일 정오 12시까지였기에 오후예배부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또 깊이 느낀 것 하나가 있는데 ‘이렇게 자유롭게 나와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운 복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러고 보면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입은 피해보다 얻은 유익이 만 배 이상으로 큽니다.

지금 우리 모두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세상은 교회를 향하여 적대적이 되고 똑바로 신앙 생활하려고 발버둥치는 성도들은 핍박도 받게 될 것인데 그 모든 것을 이길 힘이 무엇인지 확인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사람, 문제, 장애물, 환경, 처지를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끼리 원망과 불평과 책임전가를 버리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세워주는 공동체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시련은 우리를 망가뜨리는 요소가 아니라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요소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격리 해제 직전에 저도 성도들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첫 예배 시간에 코로나 감사헌금을 드리자고요. 조금 웃기는 이름의 감사헌금인지는 몰라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안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어떤 것도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성도들이 코로나 감사헌금을 드리는 것으로 첫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기쁨 목사(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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