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예배를 향한 목마름이 있는가
녹슨 검의 날처럼 무디어진 우리 신앙
지금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고민과 해결해야 할 숙제는 한국교회만의 고민과 숙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요, 더 나아가 현재 팬데믹 상황에서 지구상의 전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가운데 우리는 몸뿐 아니라 마음도 멀어지고 있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생활은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홀로서기를 강요하고 인간은 더욱 철저히 개인주의적 이기주의자로 전락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이다.
교회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여야 한다(히 10:25). 그러나 사실 그동안 우리는 점점 모이기를 폐하여 왔다. 주일예배 이외에도 수요예배를 비롯한 금요기도회와 새벽기도회까지 다양한 여러 종류의 예배와 모임이 있었으나 이제는 축소될 대로 축소되어 주일예배의 명맥만 유지하는 교회도 많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가 활개치기 한참 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러니 코로나19를 탓할 것도 아니다. 이번 코로나19로 그 현상이 두드러지게 표출되었을 뿐이다.
솔직히 그동안 우리의 신앙생활은 게을렀고 나태해졌으며 영적으로도 녹슨 검의 날처럼 무디어 있어 영적 싸움에는 번번이 패배하고 마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는 실정이다. 신앙 초기의 뜨겁고 순수한 열정이 식은 후로는 내 안에 새로운 부흥이 찾아오지 않았고 나 역시 이에 대한 회복의 갈망마저 없었다. 그러면서 주일성수의 개념 자체가 율법적으로 나를 구속하는 것 같아 싫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비대면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제 갈등 없이 내 편한 방식대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제야말로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내 자유의지의 선택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내 식대로 하면 된다’가 아니라 ‘그렇게 해보니 잘 안 된다’이다. 점점 더 게으르고 나태한 신앙생활 속에서 내 신앙은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것이 현재의 내 영적 상태의 진면목이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길까?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게 스스로 믿을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율적이되 스스로 그 자율성을 통제하기까지는 철저히 비자율적으로 구속과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이 말하는 세상 기준의 자유를 스스로 반납하고 진리 안의 자유를 찾아나서야 한다. 진리를 위해 스스로 찾아나서는 구속은 은혜로 말미암은 자유이고, 이 은혜는 철저히 율법의 준거(틀) 위에서 주어짐을 알아야 한다. 율법 밖에서는 은혜가 없다. 율법 안에 묶여 율법의 속박을 체험한 뒤에야 은혜의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의 리차드 범브란트 목사가 세 발자국밖에 걸을 수 없는 좁은 지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는 스스로 두 발자국 안으로 활동반경을 정하고,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자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나를 세 발자국 안에 가두었지만 나는 두 발자국으로 족하기에 하나님께 감사하오. 내 걸음의 한계는 당신들이 아닌 나 스스로의 선택이 있을 뿐이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조건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환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이끄시는 주님의 뜻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다. “왜 나를 세 발자국 안에 가두어 두십니까?” 하고 원망 불평하기보다 겸허한 자세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 두 발자국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인내와 현실의 포용력을 길러야 한다.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통은 우리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상 유례없는 전 세계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세기말적 세계 재앙’이기 때문이다.
조규남 목사. 우림복지재단 대표이사, 기독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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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남 (목사)
우림복지재단 대표이사 ·기독문화평론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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