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 나가는 크리스천, 이대로 괜찮은가?

어느 가나안 교인의 고백

7년 중 2년은 교회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유목민처럼 예배를 드렸지만, 절망과 불안감과 분노가 나를 지배했다. 가나안 교인도 네 가지 유형이 있었다. 단절형, 유목민형, SNS접속형, 마음은 콩밭형. 나는 유목민형이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불교집안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대각사와 병풍암과 영도다리 점집을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따라다녔다. 삼십대 중반 수색 언덕배기 있는 집에 살 때, 어느 날 오솔길을 걷다가 나는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일 내가 인생을 정리할 나이인 70세쯤 되었을 때, 인생길을 잘못 들어 이건 결코 내가 바라던 정상이 아닌데…라는 후회에 이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 다음 주에 바로 옆집 아주머니를 따라 한참 먼 강남의 모교회로 달려갔다. 아마 그때가 8.15 광복 주일이었는데, 첫날 설교를 듣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 후 성경책을 뒤적거리다가 솔로몬이 지었다는 전도서를 읽고 깜짝 놀랐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솔로몬은 나이 80이 되어 좌충우돌 끝에 깨달았는데, 어째서 나는 나이 30중반에 주님이 몸소 성령으로 찾아오셔서 나를 구원해주셨을까. 주님의 은혜가 마치 배추에 소금이 배어 물이 흥건히 흘러 내리듯 예배 때마다 교회 기둥 뒤에서 은혜의 눈물을 흘렸다.
그때 아마 열심을 봐서는 성도 10만 명 중에 예배당 서열 100위 안에는 들어갔을 정도로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던 시기였다. 심지어 나의 손을 이끌고 그 교회로 인도한 권사님이 시기 질투할 정도였고, 구역을 담당하는 전도사님이 내 열심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하셨다.

역경을 통해 하나님께 도피하다
그렇게 수 년 동안 강남의 모교회를 온 가족과 함께 잘 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잘 나가던 사업이 IMF 영향으로 부도가 나서 물질적으로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온통 빚쟁이가 찾아와 대금을 독촉했고 은행 압류로 하루아침에 알거지 되고 말았다.
그 때 마침 교회 내에서 후계자 문제로 교회가 시끄러웠다. 어느 날 갑자기 담임목사 사모님으로부터 내가 교회분파를 주장하는 무리들과 어울려 다니면 안 된다는 치리성(?)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사업이 부도나서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사모님은 뭔가 잘못 짚은 듯 죄송하다며 혹시 그런 제안이 오면 절대 동요 마시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사모님으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사실관계를 더욱 파악해보니 주동자와 함께 다닌다고 판단하고 다시 한 번 더 말씀하시기를 교회에 와서 그런 사람과 모임을 갖지도 말고 말도 섞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전화를 끊고 묵상하면서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받지?’ ‘혹시 내가 주님께 버림을 받았나?’ ‘이렇게 회복 불능이 되는 것 아닌가?’ 하며 한동안 자책하기도 했다. 한때 삶을 포기할 것인가, 외국으로 도망갈 것인가, 혹은 더욱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나 고민했다. 결국 온 가족이 야반도주하다시피 이사하여, 주님의 때를 기다리기로 결단했다. 그 때가 어디 내놔도 쳐지지 않는 ‘가나안 교인’으로서 절정의 면모를 갖춘 때였다.

잘 섬기던 교회에서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아 떠날 수밖에 없던 심정은 정말 괴로웠다. 그리고 희한하게 나와 우리 가족과 부산에 있는 친지 형제자매 모두도 그즈음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 아마도 이전에 욥기를 읽지 않았다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환난 날에 얻은 깨달음
약 7년간 극심한 고통의 날들이 이어졌다. 7년 중 2년은 교회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유목민처럼 예배를 드렸지만, 절망과 불안감과 분노가 나를 지배했다. 가나안 교인도 네 가지 유형이 있었다. 단절형, 유목민형, SNS접속형, 마음은 콩밭형. 나는 유목민형이었다. 살아있는게 죽음보다 못했다. 그 사이 우리 부부는 각기 한 차례씩 국립호텔(?)에 갔다 오고, 고향 부산에 있는 형제자매들도 거의 파산에 이르렀다. 게다가 가족 간 갈등이 극에 달했으며, 모든 관계성이 단절되었다. 그 참혹한 상황에서 오직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통이 최고조에 도달했을 때, 나는 두 가지 기도응답을 받았다.

첫째, 이 연단은 하나님이 나를 깨끗하게 하시는 훈련과정이라는 것과 둘째, 이 힘든 과정을 통해 분명히 어떠한 사명을 맡기시려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영적 터닝 포인트를 만난 후로 사도 바울처럼 늘 기뻤고, 담대해졌으며, 도리어 죽음의 골짜기에서 가야할 길을 깨달았다.
7년의 환난이 지나자 마치 아침 안개 걷히듯 환난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의 기대보다는 훨씬 느린 속도였지만. 육신과 영혼이 점차 회복되어갔다. 그 긴 시간 동안 교인들과 친지들조차 나를 불쌍하게 여겼다. 바로 그 시간 나는 주님을 뼛속 깊이 만났다. 이제 그 체험을 기록한 글들이 책으로 26권을 엮고도 남을 만큼 되었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기적을 기록하였던 것이다.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하며 살아야 ‘힘이 샘 솟는다’는 것을 지천명의 늦은 나이에 깨달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묵상하며 지은 시로 글을 마무리한다.

예수 / 아, 그 아름다운 이름 / 이전에 날 살리셨고 / 늘 도우시며 숙성시켜 /
언젠가 이 몸 거두실 이 / 내 평생 결코 잊을 수 없네†


최병진 집사·주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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