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께 배운 ‘순종의 신앙’ 두 아들에게 전수

주님을 알지 못했던 나는 믿는 가정으로 시집 와서야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교우끼리 나누는 ‘할렐루야!’ 인사조차 생소하고 힘들었다. 당시 직장을 다니고 있어 일과 가사가 벅찰 때면 시어머니께 ‘이번 주만 교회 예배에 빠지면 안 될지’ 여쭸다. 그때마다 시어머니는 “다른 일은 안 해도 좋으니 예배만은 빠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무슨 일이든 교회 일이 우선이셨던 시어머니께 배운 건 바로 ‘순종’이었다. 시어머니가 소천하신 후 나는 교회 일에 열심을 다했다. 심방이 잡히면 동행했고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 금요철야예배, 금식 성회에 빠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알게 됐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기도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게 됐다.

올해 40, 45살이 된 두 아들을 키우면서 어릴 적부터 가르친 건 시어머니께 배운 ‘순종하는 믿음’이었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어 긍정적인 말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항상 본이 돼야 했기에 화가 나도 일단 참았고 아이와의 약속은 반드시 지켰다. “모태신앙은 간절함이 없다”는 누군가의 말에 모태신앙인인 아이들의 뜨거운 신앙 열정을 위해 교회학교 봉사를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초등 3학년이 된 큰 아들은 임원반에 들어갔지만 성격이 워낙 내성적이라 자신 없어했다. 나는 “우리나라에는 7전 8기라는 말이 있지만 외국에는 21전 22기가 있대. 도전해보고 안되면 그때 가서 포기하자”고 응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큰 아들의 봉사는 현재까지 이어져 주일2부 베들레헴찬양대에서 헌신하고 있다. 둘째 역시 형을 따라 교회 봉사에 열심이었지만 육아로 잠시 쉬고 있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아이가 공부하는 늦은 밤 같이 깨어 있기 위해 TV 앞에 앉았다. 그러다 아이가 고 2때 담당 교구장님이 성경쓰기를 추천해 성경필사를 시작했고, 그 후에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시간 동안 기도하기 위해 매일 철야예배를 드리게 됐다. 예배가 끝나는 새벽 1시가 되면 모든 차편이 끊겨 마포대교를 지나 아현동까지 1시간가량 걸어야 했지만 주님만 의지하고 찬양하며 집까지 걸어왔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기도를 쉴 수 없었다.

군 제대 후 대학 3학년에 복학한 큰 아들(김성은)은 회계사가 되겠다며 공부를 시작했고 2004년 1차 시험은 합격했으나 2차 시험에는 떨어졌다. 그러나 이듬해 재도전에 성공해 공인회계사가 됐고 지금은 푸른세무회계컨설팅 대표이자 공인회계사 및 세무사로 활동하고 있다. 모든 것이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기도의 힘이었다. 대학원에서 언론학을 전공한 둘째 성오도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경제TV 기자가 됐고 얼마 전에는 10년 근속상까지 받았다.

시어머니가 보여주신 ‘순종의 믿음’은 순복음의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긍정의 신앙과 조화를 이뤄 우리의 생각 꿈 믿음 말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두 아들을 통해 4차원의 영성이 우리 삶에 어떤 열매를 가져다주는지 확인케 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렇다면 우리의 할 일은 명확하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늘 ‘한나의 기도’를 이야기했다. 자녀를 달라고 속으로 빌고 입술만 움직여 기도할 때 술 취한 여자로 책망 받았으나 그럼에도 제사장에게 순종하며 기도했던 한나처럼 내 아이를 비롯한 자자손손이 올바른 신앙 안에서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그리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길 간절히 소원한다.

정리=오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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