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였는가!

믿음의 명문가문을 세우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과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삶으로 전해져야 한다. 위로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아래로는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이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의 부르심과 사명이 자녀에게 흘러갈 때 그 때 대한민국의 회복이 일어날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하지만 한 세대가 지나가면 다음세대를 다시 세우는 것은 매우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믿음의 명문 가정들이 일어날 때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6).
성경이 말하는 죄의 본질은 무엇일까?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나는 “세대 간의 단절”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구약시대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 그 중에서도 마지막 구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아버지와 자녀의 마음을 연결하시겠다고 선언한다.
즉 세대 간의 단절은 죄의 본질이며, 세대 간의 연합은 하나님나라의 완성인 것이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아담 안에서 그와 함께 원죄에 참여했고 그 죄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된다. 유전된 죄는, 오직 예수의 생명을 전수 받는 것으로 이겨낼 수 있다.

주님은 복음을 전달하는 주된 방식으로 가정을 선택하셨다. 부모에서 자녀로 신앙이 전수되는 것은 곧 생명이 전해지는 것이다. 원수는 생명의 전달을 막기 위해 가정을 파괴하고 세대 간을 단절시키고 서로를 적대시하게 한다.
그러나 만일 가정에서 이를 극복하고 복음과 말씀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 다면 그 열매는 참으로 풍성하리라 확신한다. 이른바 ‘믿음의 명문가문’이다. 요셉의 가문과 다윗의 가문은 우리가 잘 아는 믿음의 명문가문이다.

신앙유산의 계보
우리는 특별히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을 중심으로 한 계보를 살펴보고자 한다. 히스기야는 25세에 왕위에 올라 첫해부터 영적 개혁을 시작했다. 우선 성전을 회복했고, 남유다를 넘어 황폐해진 북이스라엘까지 율법 준수를 촉구했다. 히스기야의 정책은 성공적이었고 무너져 있던 야훼 신앙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럴 즈음 초강대국 앗수르가 침략해왔다. 그들은 남유다를 포위하고, 협박과 위협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공략했다. 이와 같은 위기에서 히스기야는 항복하고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아니라 맞서 싸우기로 결정했다. 당시 남유다의 전력으로 앗수르에 맞서는 일은 무모해 보였지만, 신앙을 수호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만일 그가 굴복한다면 공들여 회복한 야훼 신앙은 빼앗기게 될 테고,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수많은 우상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지켜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는 즉각 기도하기 시작했다. 남유다의 대선지자 이사야와 함께 무릎을 꿇고 하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결국 나라는 위기에서 건짐 받았다. 그의 선택과 기도가 나라를 구한 것이다. 바로 직전에 멸망한 북이스라엘처럼 남유다의 역사도 끝날 수 있었지만 히스기야 왕으로 인해 150년 가까이 더 연장할 수 있었다.

그의 신앙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그의 아버지 아하스 왕은 남유다 역사에서 제일 가는 악한 왕이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무수하게 많은 우상을 숭배했고 하나님을 대적했다. 인생 마지막까지 주님께 돌아오지 않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우상숭배와 자녀공양, 성전폐쇄 등의 범죄가 성행 했고, 그에 따른 작은 범죄들이 나라를 채웠다. 그러한 악한 시대에 악한 아버지 아래에서 히스기야와 같은 신실한 왕이 어떻게 준비될 수 있었을까?

성경에는 특별히 그의 어머니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아비야’, ‘야훼는 나의 아버지시다’였다. 야훼 신앙의 핵심적인 신앙고백을 이름으로 가진 히스기야의 어머니 아비야는 악한 시대에 거룩하게 구별된 여인이었다. 그로 인해 그녀의 인생에 핍박과 고난의 눈물이 함께 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비야는 자신의 이름을 지켜냈다.
남유다 초기 왕 ‘아비야’는 그의 말년에 ‘아비얌’으로 개명하고 우상숭배로 돌아섰지만, 히스기야의 어머니 ‘아비야’는 끝까지 야훼 신앙을 지켜낸 것이다. 악한 시대에 히스기야가 신실하고 거룩한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의 어머니 ‘아비야’의 신앙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신앙은 어디서 전수받은 것일까? 성경은 그녀의 아버지의 이름을 기록해 두었는데 바로 ‘스가랴’다.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예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언하게 하리라 하시더니”(사 8:2).
딸의 이름을 통해 신앙을 고백했던 스가랴의 이름은 ‘야훼께서 기억하셨다’라는 의미다. 스가랴는 진실한 증인으로 주님께 인정받고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며 남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경고를 전하는 사역자였다. 악한 세대에 심판을 외친다는 것은 핍박과 외로움을 동반하는 일이다. 스가랴의 삶은 외롭고 척박 했겠지만 그는 신실하게 사명을 감당했다.

그리고 그의 신앙은 고스란히 그의 딸 ‘아비야’에게 전수된 것이다. 이쯤에서 스가랴의 아버지가 궁금해진다. 성경은 스가랴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짧게 소개한다. 스가랴의 아버지 즉 히스기야 왕의 외증조부 ‘예베레기야’는 ‘야훼께서 복 주셨다’라는 의미이다. 그의 삶에 대해서는 이름 외에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붙잡고 살았으며, 자신의 아들 스가랴의 이름을 지으며 “야훼께서 기억하셨다”는 고백을 남겼다. 스가랴의 이름을 통해 그의 아버지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예베레기야는 아들 스가랴에게 ‘야훼의 복’을 전했고, 스가랴는 딸 아비야에게 ‘야훼의 복’과 추가로 ‘야훼께서 기억하심’을 전수했다. 그렇게 히스기야는 ‘야훼의 복’과 ‘야훼께서 기억하심’ 그리고 ‘야훼는 나의 아버지이심’을 유업으로 받은 것이다. 유업은 세대가 계속될수록 전수되고 축적되기에 세대가 지날수록 더욱 풍성 해진다. 우리는 이들을 믿음의 명문가문이라 말할 수 있다.

이 가문의 시작은 누구인가? 그것은 예베레기야의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들을 낳고 “야훼께서 복주셨다”고 고백한 그에 대해 우리는 그의 이름 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분명 믿음의 명문가문의 시작이었다. 성경은 그를 기록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는 히스기야 왕만큼 중요하게 기억하실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미신과 우상숭배가 만연한 가정에서 자라, 서른이 다 되어 예수님을 만나셨다. 제사 때나 명절 때면 예수쟁이라는 핍박을 심하게 받았지만, 끝까지 믿음을 지켜내셨다. 덕분에 나는 별 핍박 없이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오히려 아버지로부터 양질의 신앙 기초 훈련을 받았다. 나는 아버지께서 전해 주신 복음 위에 “헌신자의 길”을 추가했다. 삶을 전적으로 주님께 드리는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헌신자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말씀하신 사명
나는 내 다섯 자녀들에게 “복음”과 “헌신”과 “다자녀”의 축복을 유업으로 전하고 있다. 믿음의 유업이란 보고 경험하며 배우는 것이기에, 우리 다섯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가문의 유업을 취하게 될 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가문으로부터 받은 유업에 새로운 것을 추가하여 그들의 다음세대에게 전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는 것이다. 이후에 내 손주들은 20명이 넘을 것이고, 그 다음세대에서는 100여명의 후손이 생길 것이고, 조직의 배신자가 없다면 또 그 다음 대에는 500여명의 후손이 세워질 것이다. 세대가 지날수록 인원도 늘어나지만, 그들이 자연스럽게 받게 되는 유업도 증가할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 더 큰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불과 앞으로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내 자손 500여명이 세계 곳곳에서 각자의 부르심과 은사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그분께 영광 돌리는 일을 상상해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신 사명이자 부르심이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당신의 삶이 작게 느껴지고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개인이 아니다. 이전세대와 다음세대와 함께 동역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다. 당신의 위치에서 온전한 사명을 이룰 때 가문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가문의 열매는 해당 세대의 것만이 아니라 그 일을 함께 꿈꾸고 준비해 온 모든 세대가 함께 누리는 것이다. 그야말로 가문에게 주어지는 상급이다.

사역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주님의 일은 당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세대와 세대가 하나의 부르심으로 연합하고 동역하여 열매 맺는 것이다. 예베레기야의 아버지에게서 시작된 믿음의 명문가문도 스가랴와 아비야를 지나서 히스기야의 때에 빛을 발하지 않았는가?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쾌락과 만족을 추구하여 자녀를 낳지 않고, 더 나아가 결혼을 거부한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키우는 일을 우매하게 여기고 오히려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것을 스스로 지혜롭다 여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졌고, 이혼율도 높아졌으며 세대간의 격차는 점점 커져 온갖 사회적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원수는 부모세대를 무시하고 자녀세대를 섬기지 않고 서로 간에 이간질하여 세대와 세대의 틈을 넓히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대한민국은 심각한 위기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아직 기회는 있다. 특별히 한국교회의 부흥기에 뜨거운 신앙을 전수받은 현재 30대와 40대가 각성하고 일어나야 한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다.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물려주기 원하는가? 흔히 유산이라고 하면 땅, 돈, 건물 등의 물리적 재화를 생각한다. 또는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물려주기 원한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땅에 썩어질 것들이 과연 가치 있는 유산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자녀 들을 병들게 할 뿐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과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삶으로 전해져야 한다. 위로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아래로는 자녀들을 가르치는 일이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의 부르심과 사명이 자녀에게 흘러갈 때 그때 대한민국의 회복이 일어날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하지만 한 세대가 지나가면 다음세대를 다시 세우는 것은 매우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믿음의 명문 가정들이 일어날 때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다음세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였는가!" 리스트

남성모 (목사)

월드미션교회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