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명문가를 이루게 하소서(이영훈목사님 가문의 신앙 스토리)

목회는 염소와 두루미를 잘 관리하는 것이다(14회)

교회도 분명히 양과 염소가 공존하는 곳이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양의 성품’과 ‘염소의 성품’이 함께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불완전한 인간의 속성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된 후, 근거 없는 음해성 악성루머로 모함을 당한 적도 많았다.

“이영훈 목사가 교회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뒷돈을 지원한다더라. 여의도순복음교회가 2천억 원의 빚을 지고 있다더라….”

그런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분들이 누구인지를 전해 들어 결국은 알게 된다. 때로 그분들이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찾아오거나, 그분들을 모임에서 만날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분들에 대해 분노하거나 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내 스스로가 거리낌이 없고, 미국 이민목회 시 미리 연단을 많이 받아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분들을 최대한 친절하고 공손하게 잘 대해드린다.

교회도 사람이 모인 곳이다. 그중에는 사나운 염소와 시끄러운 두루미들이 분명히 있다. 그것을 잘 다스리고 관리하는 것이 목회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서양 속담에 ‘타우라스(Taurus)의 두루미’라는 말이 있다. 타우라스는 터키 남부의 장대한 산맥이다. 사도 바울이 이 산맥을 우회해 선교여행을 다녔다. 타우라스 산은 독수리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독수리들에게는 두루미가 가장 맛있는 먹이다. 독수리들은 타우라스 산을 넘어가는 두루미들을 공격해 굶주린 배를 채운다. 그런데 독수리의 먹이가 되는 것은 항상 소음을 내는 두루미들이다. 원래 두루미는 소란스럽게 떠들기를 좋아한다. 하늘을 날 때도 계속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이 소음이 바로 독수리들에게 먹잇감의 위치를 알려주는 신호가 된다.

그런데 좀 나이가 든 노련한 두루미들은 거의 희생을 당하지 않는다. 노련한 두루미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 입에 작은 돌을 물고 하늘을 난다. 입에 문 돌 때문에 노련한 두루미들은 침묵 속에서 안전한 여행을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입을 너무 쉽게 놀리면 공격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이 당하는 시련의 대부분은 잘못된 말에서 비롯된다.

물고기는 항상 입으로 낚인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아낀다. 입을 조심한다.

요셉처럼 인내하라



하나님은 가끔 내게 요셉의 마음을 주신다. 요셉은 자신을 증오한 형제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자신을 팔아넘긴 형제들의 죄를 묻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난의 역사를 통해 형제를 용서하는 큰 사랑을 실천했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끔찍한 모함을 당했지만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요셉이 형제들이나 환경을 원망했다거나 그들에게 복수했다는 구절이 없다. 진실은 하나님의 심판대인 시간 앞에서 반드시 밝혀진다.

다만 때때로 그 시간이 좀 오래 걸릴 뿐이다. 우리가 참소에 상처받고 넘어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기도하고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신앙의 뿌리. 신앙생활도 뿌리가 중요하다. 어릴 때 바른 신앙을 갖게 되면 그것이 평생 동안 삶을 지탱해준다. 나의 어머니 쪽 가계(家系)는 주로 목사님이 많다. 아버님 쪽 가계는 주로 장로님을 많이 배출했다. 할머니 문창화 권사님의 오라버니 되시는 분이 독립유공자이고, 조카가 바로 양영배 목사님이다. 양 목사님은 육군 제13대 군종감을 지내시고 고엽제 후유증으로 8년간 고생하다가 90세를 일기로 지난 1월 18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양 목사님은 서울신학대학교와 영남대를 졸업하고 군종 4기로 임관해 맹호부대 군목과 국방부 군종실장을 지냈다. 목사님은 6·25사변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으며 전군 신자화운동과 군대에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을 주도했다. 우수 군목 확보를 위해 최초로 군목의 해외유학제도를 만들어 정착시킨 분이다. 이런 분이 나의 친척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한국교회는 하나다



양영배 목사님의 육군 제26사단 군목시절 일화다. 양 목사님이 물건을 사기 위해 우연히 가게에 들렀다. 그런데 장병들에게 배급되어야 할 식량이 버젓이 그 가게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정의감이 유난히 강했던 목사님은 곧바로 사단장을 찾아갔다.

“사단장님. 장병들을 위한 군수품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막지 않으면 장병들의 사기가 크게 추락할 것입니다.”

“군수품 유출 경로를 조사해 처벌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겠습니다.”

양 목사님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대쪽 같은 삶을 살다가 하나님 의 품에 안겼다. 목사님의 자녀들도 모두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 나는 양 목사님의 장례예배를 인도했다.

우리 가족과 친척은 사돈 내 팔촌까지 모두 예수를 믿는 사람들뿐이다. 내 주위에 예수 안 믿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명문가’의 축복이다. 조모 쪽은 성결교, 외가는 예장합동,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예장통합, 우리 집은 순복음, 동생은 감리교 선교사이다. 우리 가족이 에큐메니칼의 본을 실천한 셈이다. 가족들 간에 교파의 갈등은 전혀 없다. 신앙의 이질성도 찾을 수가 없다.

나는 한국교회는 하나라고 생각한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언어를 쓰면서 같은 성경, 같은 찬송, 같은 교리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은 왜 유독 장로교가 강한가. 교육을 중시하는 500년 유교전통의 배경에 말씀교육을 중시하는 장로교 전통이 자연스럽게 뿌리 내린 것이 그 주요 요인이겠으나, 다른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가 5대째 한국에 살면서 많은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는 많은 능력과 신학적인 해박한 지식, 그리고 재능을 가진 뛰어난 선교사임에도 참으로 아쉽게 젊은 나이에 목포 앞 바다에서 여객선의 침몰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그 때 그의 나이는 44세에 불과했다. 그의 순교는 한국교회 특별히 감리교단에 큰 손실이 되었다. 만일 그가 언더우드 선교사 가문같이 몇 대를 이어오면서 한국교회를 섬겼더라면 아마도 오늘날 감리교는 장로교에 버금가는 큰 영향력을 가진 교단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기하성이 모두 동질성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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