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명문가를 이루게 하소서(이영훈목사님 가문의 신앙 스토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13회)

지천명을 넘겨 다시 미국으로 떠나다


워싱턴 생활을 접고 한국에 정착했다. 조용기 목사님께서 교회 옆 초원아파트를 거처로 마련해주셨다. 몇 년 동안 이 아파트에 살면서 열심히 교회를 섬겼다. 그 후 다시 목사님의 명을 받고 미국 LA로 건너가 베데스다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했다.
이 학교가 미국 정부가 인준한 학력인준기관으로부터 정식학력인정 대학으로 인가를 받을 때까지 약 2년간 사역했다. 베데스다대학교가 한국계 학교로는 최초로 학력인가를 받은 대학교가 되자, 목사님은 나를 다시 도쿄로 보내셨다.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목사님은 내게 딱 한 말씀하셨다.
“가서 교회를 지어라.” 일본 도쿄로 건너가 1년 반 후 약 200억 규모의 8층 건물을 매입하여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하고 헌당예배를 드렸다. 그 후 한국으로 부름 받고 돌아와 여의도순복음교회 교무 부목사로 일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내 나이도 지천명(知天命)을 넘었다. 더 이상 해외로 이사 다니는 일은 없겠구나.’
나는 국내에서의 안정된 목회를 꿈꾸었다. 그런데 한 가지 예상 못한 일이 발생했다. 미국 나성순복음교회에 어려움이 생겨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목회자 청빙을요청해온 것이다. 그때 두 사람이 물망에 올랐는데, 그중 한 분이 교회를 개척하는 바람에 나에게 시선이 쏠렸다. 조용기 목사님은 다시 나를 불렀다.
“이 목사, 자네가 나성순복음교회로 가면 어떻겠는가.”
“목사님의 명령에 순종하겠습니다.”
목사님은 다시 물으셨다.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야. 지금 이 목사의 솔직한 의견을 묻는 것이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목사님이 이미 마음에 보낼 뜻을 갖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말씀드렸다.
“목사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목사님은 매우 기뻐하셨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순종한 것에 대해 흡족한 표정을 지으셨다. 아마 일본에서 사역을 마치고 50이 넘은 나를 다시 미국으로 보내는 것에 마음이 안쓰러우셨던 것 같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떠나서 단독으로 사역을 하지 않는 한, 조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목사가 담임목사님의 말씀에 대해 “기도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나의 목회 철학이다. 왜냐하면 부목사는 담임목
사님의 목회 권위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결국 50세를 넘긴 나이에 다시 짐을 꾸려 미국으로 목회의 텃밭을 옮겼다.

조용히‘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성경말씀이 있다. 힘들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고난을 당할 때, 거대한 인생의 파도 앞에 낙심될 때, 그때마다 위로와 힘을 주는 말씀이 있다. 그것은 로마서 8장 28절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 속에는 절대 긍정의 신앙이 담겨 있다. 역경을 만날 때마다 이 말씀을 묵상하고 나면 힘이 생긴다. 성경의 인물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요셉이다.
요셉의 가시밭길 인생 13년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억울한 일이 많았는가. 형제들에게 배신당해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가고, 거짓 참소로 옥살이를 하는 등, 진실이 철저히 외면당하는 현실 앞에서 요셉은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수많은 악행과 능욕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용서해주는 큰 사랑을 보여주었다.
요셉의 13년을 생각하면 내가 당하는 어려운 일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때로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변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단 마음이 구부러진 사람들은 그 변명을 재료로 새로운 공격거리를 찾기 때문이다. 물론 정말 억울할 때, 때로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용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 그 고통은 영적 깨우침의 기회가 된다.
또한 내 자신의 부족함을 살피는 시간이 된다. 목회를 하면서, 교계활동을 하면서 어떤 분들로부터 “당신을 법정에 고발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또 고발당하기도 했다.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때도 내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불편하지도 않았다. 놀랍도록 평정심을 유지했다. 그 이유가 뭔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일하고 계심을 확실히 믿기 때문이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나는 장로교의 전통에서 자랐다. 장로교에서 배운 것은 철저한 ‘말씀 중심의 삶’이다. 순복음에 와서 배운 것은 ‘성령 충만’과 ‘절대 긍정’이다. 장로교와 순복음의 장점을 순조롭게 받아들여 체득한 것이 내겐 최고의 영적 자산이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으로 세상을 살다가, 본향인 천국으로 가는 날 어떤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어차피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이 잠시 이민 와서 살다가는 타국(他國)이요, 우리는 지구촌 이방인(異邦人)일 뿐이다. 우리의 본적(本籍)은 하늘나라다. 나는 찬송가 314장을 마지막 노래로 부르며 주님을 만나고 싶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 엎드려 비는 말 들으소서 / 내 진정 소원이 내 구주 예수를 / 더욱 사랑 더욱 사랑(1절)…. 이 세상 떠날 때 찬양하고 / 숨질 때 하는 말 이것 일세 /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 더욱 사랑 더욱 사랑(3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됐을 때,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어떤 분들은 교묘한 이간질로 사람과의 관계를 어지럽혔다. 이런 모함과 이간질은 9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모함과 공격은 다양하고 악의적이다.
“이 목사가 너무 착해서 아무 일도 못할 것이다. 우유부단하고 결단력이 없다. 교회 빚이 늘어나서 교회 운영이 어렵다더라. 어르신들 앞에서는 존경하는 척 하면서 뒤에서는 공격한다….”
참 많은 이야기가 끊임없이 돌고 돌았다. 나는 이런 것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요셉은 숱한 모함에 변명하지 않았다. 나도 변명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가면 모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밝혀진다. 다만 그 시간이 좀 오래 걸릴 뿐이다. 오락게임 중 ‘두더지 잡기’라는 것이 있다. 뿅 망치로 두더지를 내리치면 다른 두더지가 계속 머리를 들이민다. 그러나 그냥 놔두면 혼자 퉁퉁 튀다가 멈춘다. 주변의 모함과 공격에 대해 나는 침묵하는 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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