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 하나님 사랑으로 눈물 되찾게 돼

일러스트 배주은(신앙계 제공)

울지 않는 아이, 하나님 사랑으로 눈물 되찾게 돼
“인찬아! 어서 도망가! 너 잡히면 또 매 맞는다.” 다급한 큰집 사촌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마도 과로로 쓰러져 세상을 등진 아버지 그리고 안타깝게도 곧바로 어머니마저 그 슬픔을 못 이겨 따라가신 후, 5살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 댁에 더부살이로 맡겨져 눈칫밥을 먹으며 살기 시작한 때부터였을 것이다. 큰어머니는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자기 자식들에게는 관대하셨지만, 부모 없이 맡겨진 어린 조카에게만은 모질도록 매몰차셨다.

하지만 사촌 형의 고함 소리에도 정작 매를 맞아야 할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이유일까?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도망도 가지 않고 벌을 주면 벌을 주는 대로 매를 때리면 매를 맞는 대로 절대로 울지 않았다. 그래서 그 아이는 ‘울지 않는 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렇게 큰어머니의 차별 대우와 모진 체벌을 참을 만큼 참다가 도망치다시피 찾아간 동네 교회. 처음 발을 딛기 시작한 순간부터 마치 돌아가신 부모님처럼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박 권사님. “인찬아, 너는 큰 인물이 될꺼야! 내가 매일 너를 위해 그렇게 기도한단다.” 자신도 홀로 사시면서 넉넉지 않으셨을 텐데,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용돈도 주시고 기도도 해주셨던 정말 사랑이 많으셨던 좋은 분. ‘울지 않는 아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아이는 울고 있었다. 벌을 서고 매를 맞을 때 울지 않겠다는 얼음장 같은 굳은 결심은 하나님 사랑 앞에 그리고 박 권사님의 관심과 돌봄 앞에 녹고 말았다. 그 순간, 역경을 이기는 힘은 결국 자신의 의지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유산 빼앗겨, 등록금도 내지 못해 벌을 서야 했던 학창 시절
“예끼 이놈, 너 뭐 잘못해서 벌서고 있냐?” 몇몇 선생님이 이제 학생으로 성장한 아이의 머리를 출석부로 때리며 한마디씩 하고 지나가셨다. 당연했다. 교무실 앞에 손을 들고 서 있으니, 당연히 무슨 잘못을 했다고 오해했던 것이다.
큰아버지는 차가운 사람이었다. 조카에게 학교 월사금(=지금의 등록금)은 물론 책이나 교복 한번 사준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는 월사금이 없으니 그냥 다녔고 중•고등학교 때는 등록금을 내지 못해 자주 벌을 서야 했다. 사실, 큰아버지에게는 조카 인찬에게 남겨진 죽은 동생의 유산으로 살던 집과 상당한 재물이 맡겨져 있었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동생의 그 유산을 자기의 사업과 자녀들을 위해서만 사용했다.
학생 정인찬은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다행히 성적은 전교에서 최상위권이었고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면제받았다. 하지만, 교복을 사 입을 돈이 없었다. 체육복도 없어 체육 시간이면 친구들과 함께 운동도 하지 못하고 벌을 서야 했다. 교과서도 선배들이 쓰던 헌책을 물려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문교부 장관배 문예대회’가 열렸다. 시와 수필, 소설 부문에서 당선되면 상패와 상금을 주는 큰 행사였다. 그는 ‘기원’이라는 시와 ‘울지 않는 아이’라는 제목의 소설로 문예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받은 상금으로 교복을 맞추고 책과 체육복을 샀다. 하나님은 감사하게도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그의 필요를 채워주고 계셨다.



글 | 김다니엘 일러스트 | 배주은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