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향한 불안한 마음 극복하기

작성일2020-10-01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에 늘 넘치는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득문득 비누거품처럼 뽀글거리며 올라오는 불안은 사랑 못지않게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말이나 행동을 결정한다. 사랑으로 믿고 기다리며 오랫동안 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부모도 인간인지라 늘 불안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두 돌 지난 딸을 키우는 조카는 온 집안을 아이의 교육용 놀이기구로 가득 채웠다. 영어로 된 책들과 산수를 배우는 도구들, 과학과 음악, 미술을 아우르는 교육적인 놀이도구가 현란하고 복잡했다.
“이것도 많이 버리고 치운 거예요. 주변에서 다 하니까 불안해서 자꾸 사게 되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안 쓰는 것은 중고로 팔기도 하고 이젠 덜 사려고 하는데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또 사게 돼요. 집에서 아이만 돌보고 가르치는 엄마도 있는데 저는 일하는 시간에 아이를 어린이 집에 맡기고 오후엔 돌봄이 선생님한테 맡기게 되니까 마음이 더 불안하고 초조한 것 같아요.”

엄마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은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관찰자인 내 입장에서는 이제 겨우 두 돌이 지난 아이의 미래가 뭐 그리 불안하고 걱정이 될까 싶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겐 그 불안이 구체적인 현실로 느껴진다는 것이 문제다.
“비싸고 좋은 것 사 놓으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한 번이라도 아이에게 더 읽어주고 챙겨주지 않을까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요.“
결국 그 모든 책과 도구는 아이의 교육보다 엄마의 불안을 달래주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불안은 염려의 다른 이름이다. 불안하면 아이의 현실을 객관적인 눈으로 보기보다 먼저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게 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난 것으로 여기며 예민해진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도 좋을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말로 아이에게 상처를 줄 준비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녀의 이성교제를 바라보는 눈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의 이성교제를 바라보는 부모의 눈에 든 불안은 근거 없는 염려가 아니라 충분히 예상되는 불안이다. 남자친구랑 어깨를 감싸고 걸어가는 십대 딸을 보게 된다면 어느 부모든지 불안과 분노지수는 최고에 이를 것이다.
내 아이에게 이성친구가 생겼다는 것은 지금까지는 엄마나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대상이 이성친구로 옮겨갔다는 뜻이다.
“15년 동안 너를 키우느라 직장도 그만두고, 네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다 들어주고 보살펴준 엄마보다 사귄 지 열흘도 안 된 여자(남자) 친구가 더 좋단 말이야?” 하고 묻는다면 아이는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응, 그 애가 더 좋아” 하고 대답을 하니 애초에 이런 질문은 참아야 한다.
불안은 곰팡이처럼 음지에서 급속하게 퍼지고 자라는 특성이 있다. 햇빛에 바짝 말리면 곰팡이는 죽는다. 자녀를 지켜보며 불안을 키우지 말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이성교제를 시작하는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불안은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 이성친구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해 결국 성적이 떨어지지 않을까.
- 이성친구와 스킨십이 발전해서 책임질 수 없는 문제로 연결되지 않을까.

막연한 불안을 이렇게 문장으로 정리하면 아이와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거나 문제를 미리 피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너, 좋아하는 남자(여자)친구 생겼지?” 이 질문에 “엄마, 어떻게 알았어? 사실은…” 이렇게 정직하게 대답하면서 자기 마음을 다 털어놓는 아이는 현실에는 없다. “누가? 내가? 엄마 무슨 소리하는 거야” 하면서 잡아떼거나 “엄마가 이성교제 허락할 사람이야” 하면서 부모에게 공을 넘기거나 “나도 좋아하는 애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하면서 빠져나갈 수 있다. 아이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은 다양하다. 다만 아이가 어떻게 나오든 엄마로서 가진 불안은 그대로 있으니 이왕 말을 꺼냈으니 이성교제에 대한 부모의 염려를 말해보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이성친구를 사귄다면 엄마는 이런 점이 좀 신경이 쓰일 것 같아. 먼저 네 관심이 나뉘게 되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야. 이성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고 잘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 애랑 보내는 시간이나 문자를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고 재미있고 너를 가장 행복하게 했다가 불행하게 했다가 기분을 좌우할거야. 공부나 가족 친구까지도 네 관심에서 두 번째로 밀릴 거야. 그때 생기는 문제를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되네.”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이나 성적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겠다는 약속까지 미리 받아두는 것이 좋다. 이건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이미 와 있는 미래이니까.

다음은 가능하면 미루고 싶고 누군가가 대신 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성충동이나 스킨십의 문제다.
“이성친구를 만나다 보면 손 잡고 싶고, 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스킨십이 주는 짜릿한 기쁨을 알게 될 거야. 그때 네가 그런 충동을 어떻게 다스리고 풀어나갈 것인가도 신경이 쓰여. 이 문제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데 넌 그건 자연스러운 본능이니까 그때 알아서 한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 “엄마, 우린 그냥 톡하는 정도야. 아직 손도 못 잡아봤다고. 그리고 엄마가 말 안 해도 나도 알 건 다 알아요.”
맞는 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라는 365일 24시간 밀착해서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정보서비스 덕분에 부모의 불안을 지나 다른 차원에서 ‘성’을 이야기하고 보고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간섭하고 가르쳐야 할 부분은 남아 있다.

자녀의 이성교제를 바라보는 눈
중학교 1학년 남학생들이 출산휴가를 다녀와서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는 담임선생님에게 한 첫 질문이 “그럼 선생님 섹스 해봤겠네요?”였다는 신문기사가 몇 년 전에 화제가 됐다. “아이 이름이 뭐에요?” 하는 자연스런 관심의 표현이 아니라 ‘섹스로 아이를 낳았구나, 아이가 있으니 섹스를 했구나’ 하는 어설프지만 섹스에 집중된 관심이 어처구니없는 질문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여기에서 부모의 현실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먼저 내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모습대로 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라는 오해를 내려놓자. 아이는 정보의 홍수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어떻게 익사하지 않고 오염된 정보의 바다를 건너느냐가 관건이다.
“엄마는 성에 대한 호기심이나 욕망이 자연스런 본능이라고 해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해. 많이 아는 것과 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다르거든. 먹고 자고 화장실을 가는 것은 본능이지만 이것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넌 기억하지 못하지만 네가 태어난 날부터 몇 년 동안 엄마아빠가 끊임없이 가르치고 훈련시켜서 좋은 습관이 되었고 이젠 너 혼자서도 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처럼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성적인 충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이성에 대한 스킨십의 충동이나 욕망도 이성친구가 생긴 지금 조절하는 것을 배워야 할 것 같아. 본능적인 일일수록 ‘알아서 할게요’ 보다는 절제하는 능력을 배우고 키워야 하거든.”

성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자녀의 나이에 상관없이 조심스럽고 부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나이에 따라 그에 맞는 적절한 가르침이 부모를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성교육은 성행위나 성추행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타인의 인격과 행복할 권리’를 나의 권리와 똑같이 인정해주고 보호해줘야 한다는 인간의 권리에 대한 교육이다. 나보다 약한 다른 사람, 나보다 어린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보호받고 인정받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인격이 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힘이 있다고, 권력이 있다고, 돈이 있다고 다른 사람을 내 마음대로 취급해서 타인을 불행하게 하고 나도 넘어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

한두 번 아이와 어렵게 이야기를 나눴다고 성교육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성친구를 사귀다 어떤 상황이든 혼자 해결하기 힘들면 친구를 찾기 전에 엄마에게 먼저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잊지 말자. 어떤 경우에도 엄마아빠는 너를 판단하지 않고 너를 도와주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으니까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기 전에 먼저 부모에게 도움을 구했으면 좋겠다는 당부는 아이가 문제를 만났을 때 찾을 수 있는 문을 열어두는 것이다.†


강금주 변호사

지난 30년간 <십대들의 쪽지>를 통해 십대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살아온 청소년 전문 상담자이자 발행인, 호주 변호사, 저서로는 <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 <사춘기 대화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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