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함께 익숙한 것에서 떠나다

작성일2021-09-01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 2:24).

우선 떠난다는 말은 ‘내 버리다’ ‘짐을 덜어준다’ ‘풀어준다’ ‘계획을 중단하다’ ‘권리, 재산을 포기하다’ ‘친구, 습관 따위를 버리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시편 22편 1절에서 ‘버리다’라는 단어가 ‘떠나다’와 같은 단어로 쓰입니다. 그러므로 떠난다는 말이 단순히 분가(分家)를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켄 가이어(Ken Gire)는 떠남을 이렇게 말합니다.

“새 집으로 이사 가려면 옛 동네, 옛 친구들, 옛 추억과 이별해야 한다. 대학에 가려면 집과 가족을 떠나야 한다. 결혼하려면 혼자만의 세계를 버려야 한다. 직장에 들어가려면 학교, 친구들 그리고 울타리를 떠나야 한다. 자녀를 낳으려면 아이가 없던 부부가 누리던 복잡하지 않고 방해 받지 않는 삶을 마감해야 한다. 승진하려면 좋아하던 부서와 좋아하던 도시나 지역을 떠나야 한다. 그러다 자녀들이 대학에 가거나 직장을 잡거나 가정을 이룰 때가 오면, 그들 역시 뭔가를 남겨두고 가야 한다. 옛이야기와 사진첩을 통해서만 돌아갈 수 있는 뭔가 소중한 것을. 은퇴하려면 생계수단에 영영 작별을 고해야 한다. 직장에 남은 동료들은 여전히 친구겠지만 그 우정의 차원 또한 달리해야 한다.”

그래서 부모를 떠나라는 말이 종종 부모를 버리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지만 성경은 전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둘을 똑같이 살립니다. 즉 생명의 탄생은 탯줄을 끊음으로부터 시작되듯 영향의 탯줄, 과거의 탯줄, 정서적‧경제적 탯줄을 끊음으로써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주례사는 가히 혁명적입니다.

새로운 출발의 코드
떠나지 못하면 결혼이 불행해집니다. 부모의 상처로부터 떠나지 못한 사람은 여전히 공격적이 되고, 그 상처를 대물림해 갑니다. 부모의 악습을 끊지 못하면 나 역시 악습의 포로가 됩니다. 그래서 떠나야 합니다.

부모의 기준에서 떠나지 못하면 부모와 배우자를 비교하게 되고, 비교하다 보면 결혼은 비참해집니다. 부모에게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독립적인 인격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제는 모든 관심사가 배우자여야 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떠난다고 합니다.

떠남은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새 출발을 의미합니다. 떠나지 못할 때 우리는 죽음 아래 머물게 됩니다.
“얘야, 너도 시집가야지.”
엄마가 딸에게 애타게 애원합니다. 그러면 딸이 톡 쏘아붙입니다.
“엄마, 행복해? 엄마 혼자로 끝내. 제발 이제 그만해.”

너무 어린 나이에 아빠의 외도에다 새까맣게 멍들어갔던 어머니의 슬픈 가슴을 알게 된 딸에게 있어 결혼은 인생의 무덤과 같습니다. 왜 그 낭떠러지로 자신을 떠밀어내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이상도 꿈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떠남이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진정한 떠남은 부모의 짐을 덜어줍니다. 나아가 떠나보냄은 그들에 대한 인격적 존중이 됩니다. 이제는 저들의 세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간섭하지 말아야하고 통제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떠나기 위해서, 또 떠나보내기 위해서는 용서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결혼의 모든 역기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 분리의 원칙이야말로 치유와 회복 그리고 새로운 출발의 코드인 것입니다.†

송길원 목사 | 가족생태학자, 하이패밀리 대표, 청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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