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용서는 부모를 용서하는 것이다

작성일2021-07-01

오래 전 한 기자가 잡지에 기고한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누나가 한 명 있었는데 시험 때마다 만점을 받을 만큼 공부를 참 잘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큰누나가 실업계 고등학교에 입학원서를 내던 날,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그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부모 잘못 만나 그 좋은 머리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는구나. 미안하다.”

그날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물론 그 누나가 아버지를 용서해야 할 만큼 큰 분노나 억울함을 품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우리 삶이나 정서적인 결핍이 느껴질 때 부모를 원망하곤 합니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방관적인 삶을 사셨던 아버지로 인한 상처
생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능력하기만 하셨던 아버지
병환으로 늘 누워 계시기만 했던 아버지
늘 술에 절어서 세월을 허송했던 아버지
어머니와 끊임없이 싸우기만 하셨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 때문에 기도 못 펴고 숨죽여 살았던 세월들
그래서 항상 위축되고 자신감도 상실한 채 음지에서만 지내야 했던 나날들…….

그뿐일까요? 잘못된 부모의 양육 태도가 가져다준 상처들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무관심하기만 했던 부모님,
자신이 못 배운 탓에 배움에 대한 한을 내게 강요로 풀어내셨던 부모님…….

부모를 위해 울라
어떤 분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영어 시험을 보았는데 그런 대로 꽤 점수가 잘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야단을 맞은 후,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영어 공부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아버지에 대한 보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정작 피해를 입고 죽어가는 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나를 죽음의 골짜기에서 건져내는 일은 부모를 용납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부모님 자신이 아니라 부모님들이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그들의 서투름과 연약함과 죄를 위해 울어야 합니다.

저는 성인이 되어서까지 어두일미(魚頭一味)라는 말을 크게 착각해왔습니다.
생선은 진짜 머리가 맛있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2년 터울의 6남매 형제를 한꺼번에 키워내야 했던 어머니는 박봉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식탁에 겨우 올려놓은 생선 세 마리. 자식놈들은 속도 모른 채 생선을 향해 젓가락을 찔러대고 한 점이라도 더 먹으려고 눈을 부라릴 때 죄인이 된 것처럼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셨지요.

전쟁터의 잔해처럼 뼈만 남은 생선을 보면서도 어머니는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 물 스며드는 것처럼 기분 좋다 하셨지요. 머리에 붙어 있는 마지막 살점까지 발라주고 “생선 눈을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는 말로 우리를 꼬드겨서 돌려가며 눈 하나씩을 먹여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은 생선 머리를 빨며 반찬을 대신했던 어머니, 그냥 먹기 멋쩍으니까 ‘어두일미’라는 심리적 암시로 위안을 삼아 뼈를 씹어 삼키셨지요.

그때는 그런 어머니가 왜 그렇게 촌스럽고 초라하게만 느껴졌던지요.
그래서 우리가 부모가 되었을 때에야 그분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을 합니다. 그분들의 사랑의 행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그분들이 준 상처가 있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잊지 마십시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엡 6:2).†

송길원 목사 | 가족생태학자, 하이패밀리 대표, 청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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