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찐자, 이렇게 살빼라!

작성일2020-07-01

학교도 안 가고, 직장도 안 나가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던 우리의 꿈이 이뤄졌다. 그것도 전 세계가 동시에. 방학이 끝나도 학교로 돌아가지 않은 아이들과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하루 여덟 시간 이상을 책상에 앉혀 놓고 수학이며 영어, 과학 등 어려운 공부를 시켜준 선생님과 학교 의 존재가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됐다.
“아이가 수업 시간에 좀 산만해요.”
“교실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 다닐 때가 있어요.”
“물건을 던지거나 친구들과 자주 몸싸움을 합니다.”
이런 선생님의 의견을 들으면
“그건 선생님이 제대로 신경을 안 쓰고 뭔가 잘못했겠죠. 우리 애는 집에선 얌전해요”
하고 당당했던 covid-19 이전의 무지를 반성했다. 몇 시간 동안 아이의 교육활 동 프로그램을 짜서 다 하고 보니 시간은 겨우 15분밖에 안 지나갔고, 몇 주가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수요일이라니 이젠 주말도 월요일의 반복처럼 느껴지는 시간이다.

시간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일들은 여전히 그대로 쌓여 있고, 학교에서 나쁜 친구들 영향 없이 집에서 내가 가르치면 바른 말, 고운 말만 쓸줄 알았던 꿈은 벌써 깨졌다. 아이의 문제는 학교나 사회의 문제이기 전에 집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밖에 나가서 움직이는 시간은 적고, 냉장고를 열 수 있는 시간은 많으니 노력하지 않아도 몸무게가 상향 조정되는 현상이 생겼다. Covid-19가 만들어낸 새로운 용어 ‘확진자’와 ‘확찐자’다. 과체중의 아이를 지켜보며 내가 굶는다고 아이의 몸무게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대신할 수 없는 안타까움의 시간이 있었다. 그렇다고 먹는 음식을 가지고 “덜 먹어라”, “그만 먹어라” 타박하는 일은 사람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매일 기록하라
“제대로 좀 많이 먹어. 그렇게 약하면 쓰러진다.”
“이젠 몸무게 그만 줄이고 근육을 키워.”
“40킬로가 넘게 빠졌는데도 아직도 계속 살이 빠진다는게 신기하다.”

최근 우리 집에서 이야깃거리는 서른이 된 아들 한빛이의 다이어트다. 한빛이는 태어날 때 4.6kg, 돌이 되었을 때 12kg(1년 된 아이의 평균 몸무게는 6kg), 초등학교 6학년 때 60kg, 7학년엔 70kg, 그렇게 학년이 1년 올라갈 때마다 몸무게도 꾸준히 10kg씩 증가했다. 고3때까지도 운동을 워낙 많이 했기 때문에 체격은 컸지만 보기에 늠름하고 좋았다. 풋볼, 레슬링, 골프, 원반던지기, 학교 선수로 뛰는 종목도 많았다.

고3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페이스북은 고등학교 졸업사진에서 멈췄고 핸드폰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몇 년 동안의 우울증은 우리 가족 각자에게 10kg 이상의 몸무게를 덤으로 얹어주었다.
내가 농담처럼 “지금 몸무게가 130kg 정도 될까?” 하면
“엄마,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럼 120?” “아니 그것보다는 조금 더 높고…”
그래서 125로 생각하고 서로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열아홉에서 스물일곱이 된 아이는 10개월 정도 혼자 말없이 몸무게를 줄이는 노력을 하는가 싶더니 스물여덟이 되는 1월 1일 드디어 108kg 몸무게를 공개했다. 10개월 동안 혼자서 17kg 정도를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눈에는 108kg나 125kg나 뚱뚱한 사람일 뿐이다. 그해 마지막 날까지 날마다 100g씩만 줄여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그날 목표치와 실제 몸 무게를 기록하는 노트를 마련해서 보여주었다. 우리 모두 격려하고 인정하고 환호하면서 이미 17kg이 빠졌는데 날마다 100g이 빠져나갈까? 20kg 빼고, 30kg 뺀다면 그 다음엔… 걱정스러움이 없지 않았다. 결과는 그 해 10월 23일에 73.4kg에 도달했다. 혼자서 묵묵히 찾아낸 자기만의 방법으로.

“누나, 날마다 기록은 하는데 어쩌다 200g이나 더 올라가면 하루쯤 그냥 금식한다 생각하면 돼.” “목표보다 더 잘 되고 있으면 가끔은 치팅을 해도 돼. 먹고 싶은 것을 하나씩 먹으면서….”
“여행을 하는 기간에는 그냥 몸무게 재지 말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 다음날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많이 걸어 다녀. 계속 걸어 다니면 조금 더 먹어도 괜찮아.”(6개월간 스톡홀름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한빛이는 도시 지도를 벽에 붙여 두고 자기가 걸은 거리를 색칠해 나갔다.)
“다이어트 한다, 10kg을 빼겠다, 20kg을 빼겠다 하면 못 할 것 같으니까 그냥 하루에 100g만 줄이자. 그러니까 음료수 대신 물을 마시고, 한 숟갈만 덜 먹는다 생각하고… 칼로리 적은 건강한 음식으로 골라 먹고… 몇시든 저녁이다 생각하고 먹고 나면 다음날 아침까지는 물만 마시고 안 먹고… 그럼 괜찮아. 할 만해.” 다이어트를 끝낸 아이가 누나에게 준 다이어트 팁이다.

‘살 빼고 좋은 몸매 갖기’에 가장 좋은 조언은 무엇일까?
70이 넘은 나이에도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메이 머스크 조언이다.
“내가 가장 권하는 방법은 ‘먹은 것과 먹을 것을 기록하는 습관’ 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어느 정도 먹어야 내 건강에 좋다’는 걸 잘 압니다. 식단기록은 나 혼자만의 일기 같은 것이고 다른 사람은 볼 수 없지만 나를 압박 하고 설득하죠. ‘날씬해지겠다는 내가 이런 고열량의 음식을 먹었다니…’ 하고 반성하게 되고, 다시는 그런 반성이 필요 없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이어트 일기를 쓰는 것은 이미 먹은 식단을 기록하면서 자책과 반성에 시달리며 내일은 좀 더 적게 먹으리라 다짐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내일 내가 움직일 동선을 생각하면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계획하는 일은 먹는 일에 내가 주인이 되어 컨트롤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준다. 먹은 음식을 기록하고, 먹을 음식을 기록하는 일은 우리의 생각을 조절하는 행위다. 어디로 가는 기차를 탈 것인지 목적지를 정해서 기차표를 사는 것과 같고 ktx를 탈 것인지, 무궁화를 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일어난 일을 기록함으로 해서 나를 돌아보고,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이고, 일어날 일을 기록함으로 해서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높이는 것이다. 행동하기 전에 내 생각이 먼저 선택을 하고, 생각에 따라 바른 선택을 하는 행동이 이어져 습관이 되는 것이다.†



강금주 변호사

지난 30년간 <십대들의 쪽지>를 통해 십대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살아온 청소년 전문 상담자이자 발행인, 호주 변호사, 저서로는 <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 <사춘기 대화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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