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에 감사하는 사람이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다

들어가면서

김의신 박사

세계적인 암 전문의 김의신 박사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예방의학 전공)을 졸업한 후 1969년에 도미, 존스홉킨스 의대에서 내과와 방사선과를 수련하고, 핵의학을 전공한 후 미네소타대 등을 거쳐 미국 최고의 암 전문 병원으로 손꼽히는 엠디 앤더슨 암센터에서 31년간 종신교수로 재직했다. 1994년 미국 핵의학회장을 지낸 김 박사는 ‘암의 방 사면역 검출법’의 개척자이자 양전자방출 단층 촬영(PET)의 대가다. 미국 최고의 의사에 12번이나 선정됐고, 15권의 교과서를 집필했으며 발표한 논문만도 350여 편에 이른다. 한국인 의사의 명예를 드높인 공적을 인정받아 2000년과 2005년에 한국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의학대학(얼바인)과 경희대학교 석학교수 그리고 서울대 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WCU 교수로서 학생들 및 연구원들을 가르치고 연구를 지도하고 있다. 또한 국제전문학술지인 ‘커런트 메디컬 이미징 리뷰(Current Medical Imaging Reviews)’의 편집인으로도 왕성히 활동 중이다. 핵의학계를 개척하며 암 정 복의 꿈을 앞당긴 김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신기할 정도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기도한 대로 아들 둘에 딸 한 명을 낳았고, 손자 손녀도 기도대로 일곱 명을 주셨습니다. 또한 결혼 전 아내에게 우리가 미국에 가서 살아야 하는데 여행 간다 생각하고 동부에서 시작해 서부에서 끝내자고 했는데 정말 그대로 됐습니다. 주신 은혜가 너무 커서 퇴임 이후 여러 선교지에 가서 섬겼습니다. 요즘은 의사로서, 교수로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제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암 전문의 김의신 박사의 말이다.

전북 군산 출신인 김 박사는 모태신앙이다. 친할아버지 할머니가 한국 기독교 1세대로 복음을 받아들였는데 김 박사의 아버지 신앙이 뜨거웠다. 목사님 말씀을 곧 하나님 말씀으로 알고 무조건 성경을 읽게 했고, 가정예배를 드릴 때나 식사 때마다 시편 23편 4절 말씀을 외우게 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예수님만 잘 믿으면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 보호하신다는 겁니다. 같은 말씀을 무한 반복시키시는 것이 어느 때는 못마땅했지만 순종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모두 천사라고 부를 정도로 따뜻한 분이셨고요.”
중학교를 1등으로 입학하고, 어린 김의신의 영특함을 알아본 교장선생님의 제안으로 입주가정교사를 시작했다.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건축가가 꿈이었다. 그런데 6.25전쟁이 발발하고 전쟁 통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때의 기억은 곧 소명으로 이어졌다.
“피난길에 언덕에서 구르는 바람에 입술이 다쳐 고스란히 흉터로 남았습니다. 아무리 주위를 돌아봐도 의사는커녕 그 흔한 머큐로크롬(일명 빨간약)도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는데 그런 사람이 곧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남을 도울 수 있는 의사가 되기로 결정하고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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