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은 거짓 신들의 전쟁터

우리는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는가?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려는데도 다시 죄에 무너지는 일이 있다. 다 죽은 것 같은 혈기를 부리고, 음란한 유혹에 무너지고, 거짓과 탐욕의 죄에 무너진다. 이때의 죄책감과 좌절감은 엄청나다. ‘결국 죄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인가?’ ‘주님을 바라보아도 죄를 이길 수 없는 것인가?’ 죄를 이기는 것은 우리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이기게 해주시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께서 상담을 요청해 왔다. 최근 들어 교회나 가정에 크고 작은 문제가 계속 일어나 염려와 분노, 조급함과 두려움과 좌절 등에 시달린다고 했다. 기도하면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하고, 정말 주님께 다 맡겨야 될 때임을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아지지 않고 주님께 맡기고 싶어도 맡겨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어떤 문제를 자신이 내려놓으려 한다고 해도 내려놓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려놓으려고 애를 쓸수록 그 문제에 더 집중하게 된다. 어떤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더 생각하게 되는 것과 같다. 어둠을 제거하는 것은 애를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제를 마음에서 내려놓으려면 그 문제보다 더 큰 것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면 내려놓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아진다. 어떤 문제가 내려놓아지지 않는다는 말은 그보다 훨씬 크신 주님과의 관계가 너무 약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뿐이다. 문제를 내려놓으려고 고민하지 말고 꾸준히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길러야 한다. 그래서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내려놓으라는 것은 그것을 “그만두라”, “포기하라”, “떠나라”는 의미가 아니다. 가정이나 사역이나 직장이나 사업이나 공부를 그만두지 않아도 주님을 바라보게 되면 내려놓아진다. 내려놓고 싶은 것들이 마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해지는 것이다. 잘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요동치는 마음도 없어진다. 사랑 하는 사람이 생기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좋고 싫음이 사라지듯이, 주님을 아는 눈이 열려지면서 다른 문제로 인한 마음의 요동함이 없어지고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일에 어려움이 없어진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에 관하여 신학적인 예수, 역사적인 예수, 성경에 기록된 예수에 관해서는 잘 알지만 인격적으로 함께하시는 주 예수님에 대해서는 너무 미숙하고 연약하다. 주 예수님의 임재하심에 눈이 뜨이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보지 못한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마귀가 마음을 사로잡고 있어 영적으로는 눈이 가려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쏟지 않아도 될 일과 문제에 온통 신경이 쓰이고 마음을 빼앗기고 사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려놓아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주님께 맡겨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려놓아지지 않는다는 말은 주님을 바라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지금 자신이 주님을 바라보는지 아닌지는 내려놓아야 할 것에 마음이 흔들리는지 아닌지를 보면 스스로 알 수 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식을 갖는다고 해서 실제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어떤 문제로 인하여 스트레스가 심하고 마음이 힘든가? 그 문제를 내려놓으려고 애쓰기보다 꾸준히 주님을 바라보는 일에 힘써보기 바란다.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라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려는데도 다시 죄에 무너지는 일이 있다. 다 죽은 것 같은 혈기를 부리고, 음란한 유혹에 무너지고, 거짓과 탐욕의 죄에 무너진다. 이때 의 죄책감과 좌절감은 엄청나다.
‘결국 죄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인가?’ ‘주님을 바라보아도 죄를 이길 수 없는 것인가?’

죄를 이기는 것은 우리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이기게 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면 죄를 이기는 놀라운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왜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는데도 다시 은밀한 죄에 무너지는 것일까? 주님을 바라보면서도 세상을 기웃거리며 마귀에게 틈을 주었기 때문이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 한눈 파는 것이 우리가 죄에 무너지는 시작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한눈 팔지 말라”는 권면을 받으면 한 숨을 내쉰다. 너무 힘들다고 탄식한다. 바로 그것이다. 그 탄식이 문제의 핵심이다. 한눈 팔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생각, 그것이 우리가 여전히 죄에 무너지는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다. 한눈 팔지 말라는 것을 힘쓰고 애써서 지켜야 하는 율법으로 여기는 것이다. 아직 마음에 임하신 주님을 진정으로 믿지 않는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이다. 주님이 마음에 거하시는 것을 정말 믿으면 세상에 한눈 팔아지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눈이 돌아가지 않는다. ‘한눈 팔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한눈 팔지 않게 되는’ 것이다. 주 예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번 깊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여러분은 어떤 이단 단체에서 돈 100억 원을 주고 오라고 하면 그 제안이 유혹이 되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 중에 “어느 이단으로 갈까?” 하면서 이단에 한눈 파는 분은 없을 것이다. ‘한눈 팔지 말아야지’가 아니다. 한눈 팔아지지 않는 것이다.

주님 안에 거하라


왕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임하신 것을 믿으면 세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된다. 왕이신 주님과 친밀해지는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 세상이 유혹이나 관심의 대상이 되겠는가? 은밀한 죄에서 이기는 길은 결단이나 회개나 금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쩔 수 없는 육신의 일이니 너무 상심 말고 스스로 학대하지 말고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믿으면 결국 주님이 이기게 해주실 거라고 쿨하게 넘겨버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왕이신 주님이 마음에 오신 것이 황홀하게 여겨질 때 가능하다. 날마다 왕이신 주님과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 흥분이 되고 감격이 될 때 죄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것은 금욕생활과는 다른 것이다. 실제로 왕이신 주님을 더 깊이 알아 가는 것은 평생을 투자해도 가치 있는 일이다. 왕이신 주님과 친밀해지는 것, 왕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이 눈에 보이듯이 믿어지는 것 은 정말 꿈같은 일이다. 우리가 이것을 정말 믿으면 세상에 한눈 팔아지지 않는다.

그렇다. 주님을 믿어도 세상에 한눈 팔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진정으로 믿지 못하였기에 세상에 한눈 팔고 살아온 것이다. 그동안 우리의 문제는 우리 안에 주님이 임하신 것이 실재라는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과 세상을 저울질하고 산 것이다. 주님은 막연하고 세상은 실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자격이 안 되는데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셨다. 우리가 할 일은 이 놀라운 사실을 정말 믿는 것뿐이다. “왕이신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
이것이 모든 문제의 답이다. 아직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분명히 모르겠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막연하다면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면 된다. 그동안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살았기 때문 일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매일 매 순간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깨닫게 하셨는데도 순종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즉각 회개하고 순종해가면 된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순종뿐이다. 거기에 어떻게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훈련이 너무나 되어 있지 못하다. 주님의 역사를 기다리다가 지친 분이 있는가? 지친 이유는 오래 기다려서가 아니라 주님과의 친밀함이 없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인내란 죽을상을 하고 불쌍한 모습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열매인 오래 참음은 기쁨으로 참는 것이다. 상황이 힘들고 약속이 더디 이루어져도 주님을 바라보는 기쁨으로 매일매일 사는 것이 오래 참는 것이다.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는 것은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주님과의 관계를 항상 유지하라는 것이다. 오래 기다리게 하신다고 불평하지 말고 부지런히 주님을 알고 주님으로 사는 삶의 훈련을 달게 받아야 한다.†

유기성 (목사)

선한목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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