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동굴소년들을 통해 희망을 본다

우리가 태국 유소년축구팀의 생환生還을 기뻐하는 이유

태국 유소년축구팀의 생환에 전 세계 사람들이 감동하고 열광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살아 돌아온 것에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살아 돌아온 것 그 자체로 좋은 것이지 그 외에 다른 무슨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단견斷見이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을 구분 짓는 결정적인 기준은 바로 죽음을 대하는 태도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성경은 이 세상 사람들이 사탄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세상 사람들이 사탄의 종노릇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의 문은 성경으로 답해야 한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뭐라고 답하고 있을까?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 이니”(히 2:15).
그렇다. 성경은 이 세상 사람들이 죽기를 두려워하여 한평생 사탄의 종노릇을 한 다고 말하고 있다. 사탄이 죽음을 무기로 세상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사탄의 사망권세라고 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죽음 직전의 상황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그 소식이 바로 복음福音이다. 크리스천이 생각하는 복음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죽음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태국 유소년축구 팀이 직면한 동굴 조난 사건은 누구에게나 얼마든지 닥칠 수 있는 일이다. 태국 유소년축구팀이 생환하였다는 것은 그들 또한 그런 상황에서 생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기에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감동의 역사를 기록한 유소년축구팀과 그들을 구출하는데 총력을 다한 구조팀에게 찬사를 보내고 물질적으로 보답함으로써 추후 그런 일이 그들에게 벌어졌을 때 그들의 생환을 위해 세상이 노력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죽음을 이긴 아브라함의 순종


성경은 한편으로는 사탄의 사망권세에 맞서 담대하게 죽음의 길을 선택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야기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사탄의 사망권세를 이길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시험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금쪽같은 자식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다 (창 22:1~2). 다음날 아침 일찍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출발하였다. 모리아 땅까지 2박 3일의 일정이다. 2박 3일 동안 아브라함은 수백 번도 넘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을 것이다. 그 생각의 결과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기로 결심한다. 사탄의 사망권세를 이긴 것이다. 이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신 것이다(창 22:16~17).

예수님 또한 사탄의 사망권세를 멸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의 죽음을 담대하게 받아들이심으로써 사탄의 사망권세를 멸하셨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히 2:14).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은 사탄의 사망권세와 사탄의 무기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하나님의 뜻


태국 유소년 축구팀의 생환, 크리스천인 우리는 어떠한 이유로 그들의 생환을 기뻐하는가? 태국 유소년축구팀의 동굴 조난 사건 역시 하나님이 주관하신 것일까? 이에 관하여 성경은 뭐라고 답하고 있을까?

예수님은 갈릴리 피살 사건과 실로암 망대 붕괴 사건을 통해 우리가 이 세상의 사건 사고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1~5).

빌라도는 역모를 일삼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갈릴리인 몇 사람을 죽여 그 피를 제물에 섞었다. 실로암에는 예루살렘에 공급되는 물의 저수지가 있었고 이를 관리하는 망대가 있었는데,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유대인들은 불행한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면 그 원인을 죄에 두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관하여 예수님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많아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위험사회이다. 위험이 상존하고 있으며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이런 일이 비껴가는 것도 아니다. 크리스천 역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굴레 안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생로병사의 굴레 안에 처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은 이에 대해 명확하게 답하고 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고, 하나님은 명령을 어긴 아담과 하와를 이 세상으로 쫓아내셨다. 그리고 그들을 벌주기 위해 땅을 저주하사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게 하셨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영생을 누릴 수도 있었다. 만일 그랬다면 생로병사의 굴레에 갇힐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원죄를 저지른 아담과 하와를 이 세상으로 추방하시면서 형벌을 내리셨다(창세기 3:16~17절 참조).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이 세상으로 쫓아내신 것은 단순히 벌을 주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형벌의 궁극적인 목적은 교화•개선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이 세상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존재로 거듭나길 원하신다.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이 세상으로 쫓아내신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셨다. 요컨대 우리는 이 세상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은 전면적 불순종의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존재로 거듭날 것인지의 여부가 판가름 나는 시험장임이 분명하다.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서는 필기, 코스, 주행 등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운전면허시험장에는 필기, 코스, 주행 시험을 치르기 위한 제반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역시 그런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비된 시험장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완벽한 시험장으로 만드셨는데 사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딱 하나 땅을 저주하사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게 하신 것뿐이다. 어떻게 그것만으로 이 세상이 완벽한 시험장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인류의 두 번째 불순종 때문이다. 첫 번째 불순종 즉 선악과를 먹고 전면적 불순종의 존재가 된 인간은 하나님의 형벌에도 불순종으로 나아가고 있다. 남자들은 평생 땀 흘려 일하는 것을 거부하고, 여자들은 임신과 출산의 고통과 남편의 지배를 거부한다. 이것이 인류의 두 번째 불순종이다.
평생노역형을 거부하는 남자들로 인하여 이 세상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전쟁터로 변해 버렸다. 스스로 땀 흘려 먹을 것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땀 흘려 가꾸어 놓은 것을 빼앗는다. 절도, 강도, 사기, 횡령 등의 범죄들이 바로 그것이다. 처음에는 개인적이던 것이 부족간 약탈,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이 세상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변하고 만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직접 빼앗지 않는 비교적 선량한 사람들 역시 불순종으로 나아가기는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평생 땀 흘려 일하는 것을 거부한 다. 오늘 열심히 일해서 내일 먹을 것, 늙어서 먹을 것,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을 쌓아 두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쌓아 두다 보니 먹거리는 줄어들고 생존을 위한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어 버렸다.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창 6:11~12).
하나님이 만드신 시험장은 완벽하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하나님이 관여하실 이유가 없다. 하나님은 시스템 자체로 내버려 두시다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위해 꼭 필요하실 때에만 개입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 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롬 1:24).

태국 유소년축구팀에게 동굴 조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인생 중에 겪어야 하는 시험 하나가 지나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시험을 치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치르고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나아가 그 시험을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도 모른다.

공자는 학문의 최고 목표가 하늘의 뜻을 아는 것 즉 지천명(知天命)이라면서, 태어날 때부터 천명을 알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문을 통해 천명을 깨닫는 사람도 있고, 세상의 험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깨닫는 사람도 있다고 말하였다.

태국 유소년축구팀은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옴으로써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모른 채,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는 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분명 축복받은 일이다. 태국 유소년축구팀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길, 나아가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길 소망해 본다.†

강정민 (변호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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