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달러의 기적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개입하심

매달 15달러와 편지로 45년간 하나님의 사랑을 배달해준 에드나 어머니와 함께

책상에 오래 앉아있었지만 공부는 늘 못했다. 그래서 갈 대학도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 고향분이 집에 찾아왔는데 건국대 교수였다. 처음 만난 분이 꿈이 뭐냐고 묻는데 당황한 나머지 얼떨결에 ‘교수’라고 말해버렸다. 그랬더니 뜻밖에 입학 할 학과를 제안했다.
“교수가 되려면 남이 하지 않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건국대에 미생물공학과가 있는데 미달이 될 수도 있다며 지금은 인기가 없어도 10년 뒤에는 생명공학 시대가 오니까 지원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적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대학생이 되고 싶어 입학원서를 냈다. 그리고는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활은 꿈과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들 1시간 공부할 때 3시간 이상을 공부해야 겨우 따라갈 수 있었으니 늘 시간이 부족했다. 게다가 졸업해도 취직이 안 되니 교수가 되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마치 절벽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지만 한 번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 붙잡고 치열하게 공부하고 기도도 엄청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전도도 열심히 하고 교회 일도 도맡아 하면서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대학을 막 졸업한 24세 때 덜컥 결핵 판정을 받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1년간 농장에 내려가 요양을 해야 했다. 도무지 이 상황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을 잘 믿고 의지했던 때인데 결핵이라니? 하나님은 미리 아셨을 텐데 왜 막아주지 않으셨을까? 1년 후 낫는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결핵이 안 나으면 거기서 제 인생은 끝인 거죠.”
하나님만 믿으면 다 잘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고난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고난과 은혜가 같이 공존한다(창 3:18)는 것을 깨닫게 됐다. 기다림을 통해 인내를 배웠고, 어떤 고난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 오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차츰 몸은 회복됐고 기적적으로 1983년도에 미국 오하이오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생활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영어 실력도, 전공 실력도 부족했으니 결국 두 학기 만에 학교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한국 부모님께도, 같이 있는 아내에게조차 그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아침이면 공원 벤치에 앉아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책을 보다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에드나 어머니께는 말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때도 15달러와 함께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라.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한다”는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
하루빨리 이 상황을 빠져나가고 싶지만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번의 기적이 찾아왔다. 쫓겨난 학교의 교수가 추천서를 써주겠다는 것이다.
“제가 그 교수님의 강의에서 C를 받았는데 추천서를 써준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됩니다. 그렇게 추천서를 받아 여러 학교에 지원했는데 100% 다 입학이 거절됐습니다. 왜 안 될까 이상하기만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계획은 따로 있었다. 어느 날 우편함에 애리조나대학교에서 편지가 와 있었다. 이미 불합격 통지를 받은 학교인데 이상하다 싶어 편지를 열어봤다. 편지 내용인즉 찰스 스털링 교수가 지도해보겠다고 나섰는데 이 교수를 지도교수로 수학하고 싶은 경우 입학을 허락하고 아니면 입학 할 수 없다는 이상한 조건이 달려있었다. 찬밥 더운밥을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게 애리조나대학교 미생물·면역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찰스 스털링 교수는 에이즈 연구가였다. 그래서 조 교수도 에이즈를 연구하게 된 것이다.
“대학 전공도, 교수라는 꿈도, 심지어 미국에 유전공학을 공부하러 왔는데 에이즈를 공부하게 되다니요.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1983년도에 에이즈 바이러스가 규명됐는데 에이즈가 뭔지도 몰랐던 제가 1985년부터 에이즈를 연구하게 됐으니 졸지에 선구자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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