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건축을 하라”

그의 이런 확신은 그가 걸어왔던 길에 ....

청년창업지원과 사회혁신을 통한 취약계층 지원사업은 아산나눔재단의 큰 두 축이다. 사진은 파트너 온 협약식

그의 이런 확신은 그가 걸어왔던 길에 수없이 경험했던 시행착오와 그 속에서 만났던 하나님이 계셨기에 가능하다. 누군가 그에게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이 언제였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숙대 총장시절”이라고 답한다.

겉으로는 명예롭고 권위 있는 자리로 보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전혀 다른 자리였다.
“1994년 첫 총장 취임식 날, 총장실에 들어가 제일 처음 받아본 것이 7억 8천만원짜리 세금고지서였습니다. 숙대 땅이 국유지이니 세금을 내라는 것이었죠. 보름, 한 달에 걸쳐 세금고지서에 연체료에 벌금까지… 정신이 없더군요. 그 전까지는 고종황실이 숙대에 하사한 것이라는 칙서가 있으니까 나몰라라 해왔던 것이지요.”

그러나 더 이상 땅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숙대는 큰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그때부터 대학종합평가가 시작되는 시점이라 시설이 부족하면 평가에서 탈락, 학교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었다.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하나님, 하필 기독교인이 총장이 되었는데 학교 망하게 하실 이유가 뭡니까? 살려주세요’라면서….”

아침 7시에 집을 나서면 밤 10시가 돼야 들어오고, 집에 와서도 법률과 부동산 관련된 자료들을 보다보면 어느새 새벽이었다. 이렇게 7개월을 하다 두 번이나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다. 병명은 ‘영양실조’. 말단 공무원부터 장관급까지 관련부처 사람 수백 명을 만나려면 주로 그들의 식사타임을 이용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대학의 입장을 설명해야 하니 몇 달간 제대로 끼니를 챙길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퇴원 후 교회 2층 기도실에 엎드렸다. 탈진이 되니 기도도 안 나왔다. 마치 한나가 중얼중얼 기도하는 것처럼 그러고 있는데 세미한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네가 언제 온전히 맡긴 적이 있느냐? 네가 열심히 혼자 뛰어다녔지”라는. 생각해보니 기도는 했지
만 항상 성령보다 앞서 뛰었다. 확신이 서기 전 사람들을 만났고, 하나님께서 맡아서 해주실 틈을 만들지 않았다. 이 깨달음을 얻고부터는 아무리 바빠도 응답이 있을 때까지 기도하고 엎드리는 시간을 더 갖게 됐다.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확실히 들 때 실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찾아갈 때마다 차가운 눈빛과 말투로 일관하던 이들이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한 번 검토해볼게요”라는 저들의 반응은 놀라운 일이었다. 혼자서 애쓸 때는 꿈쩍도 않던 저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니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물론 한 번에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산을 하나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다가왔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은 그가 주님 앞에 엎드리는 시간과 기도의 내용이다. 하나님이 먼저 일하시게 기다리는 것, 그래서 무릎 꿇는 시간이 더 많아지는 것이 그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었다.

“사람이 운영해서 학교가 이 지경이 되었으니 더 미련을 갖지 말고 이제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비전을 품게 되었어요.”

그래서 기도 가운데 제2창학을 선언하고 1995년 2월 22일 발기인대회를 열기로했다. 미국의 여러 대학을 벤치마킹한 결과, 학교의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약 1천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데 이것을 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그의 별명이 ‘사이코총장’이었단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숙대가 모금했던 최고액이 2억원이었는데, 1천억원을 모으겠다고 하니 그 누구도 이를 믿지 못했다.

“당시엔 눈을 뜨는 시간보다 눈 감는 시간이 많았어요.”
눈을 뜨면 부정적인 소식과 시각들을 만나고 기도실에 들어와 눈감고 엎드리면하나님의 비전이 보였기 때문이다. 발기인 대회도 바로 이 눈감는 시간의 결과였다.

기도 가운데 주신 마음으로 공영방송국 사장을 찾아가 방송출연과 연결해 홍보했고, 약 10년간 모금운동을 통해 2006년에는 1천억원을 모을 것을 그리며 숙대동문발기인 대회 때 2006개의 도시락을 주문했다. 앞서 다른 대학에서 발기인대회를 열었는데 졸업생이 20만명이 넘어도 1천명이 안 모였다며 숙대졸업생 4만3천명 중 2006명은 불가능하다는 호텔측과 처장단들의 합리적인 만류도 주님 앞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네가 손해 보아라”라는 주님의 음성. 도시락이 남는다면 약 16개월간 월급 중 100만원씩 빚을 갚아나간다는 지혜를 주셨다. 이 결단은 평소 그가 신뢰와 책임, 그리고 섬김에 바탕을 둔 리더십의 모습에도 일치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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