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섬, 금호도교회를 가다'- 금호도교회 전주호 목사 -

작성일2017-02-03

“엄마 나도 마트 있는 곳에 살고 싶어요.”
“현지야…”
“엄마 우리도 마트 있는 곳으로 이사가요.”
“......”
방경숙 사모는 선착장에 홀로 서서 손을 흔들었다.
오후 4시 30분에 금호도를 빠져나가는 마지막 배에 승선한 기자를 배웅하며 그렇게 오랫동안 서있었다. 방 사모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다가 이윽고 점 하나가 되어 사라졌다.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금호도. 땅 끝 너머에 있는 섬. 6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이곳에 세워진 단 하나의 교회다.
통계에 따르면 국내 섬 교회의 미자립율은 95%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절대 다수의 섬 교회가 육지 교회의 지원 없이는 유지할 수 없는형편에 처해있다.

“이제 일곱 살이 된 딸의 말을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 지더라고요.”
방 사모는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어갔다.

“전교생 세 명에 불과한 분교에 다니는 현지를 두고 육지에 다녀올 일 이 있었는데 하루에 네 번 오가는 마지막 배를 놓쳐버렸어요. 저희 부부 는 어쩔 수 없이 현지 담임선생님께 아이를 맡겨서 하룻밤 신세를 져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섬에서 산다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장로교 합동교단 소속의 금호도교회는 지난 3년간 방치되어 있었다. 교회를 개척하고 20년간 교회를 돌보던 목사님이 건강문제로 광주로 떠난 이후 그렇지 않아도 노후했던 건물만 덩그러니 남은 것이다.
그런데 한 주에 한 번씩 교회 문을 열고 들어와 청소를 하고 기도를 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여든의 나이를 훌쩍 넘긴 용일심 할머니는 목자 없는 빈 교회를 홀로 지켰다. 일심 할머니는 청력을 잃었다. 보청기를 껴도 듣지 못하는 어두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적막한 공간에 홀로 남아 구부정한 몸으로 교회에 쌓인 먼지를 털고 걸레로 닦았다. 빈강단을 쓸쓸한 손길로 쓰다듬으며 속히 주의 종을 보내달라고 기도한 지3년째 되던 어느 날 우연히 시찰회에서 용일심 할머니의 사연을 전해 듣게 되었다.
당시 타 교회의 부목사로 섬기고 있던 전주호 목사가 부임자로 추천을 받았는데 그는 이전에도 고금도라는 섬에서 교회를 섬긴 경험이 있었다.
전 목사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말했다.

“가족 분들이 많이 반대 하셨어요. 왜 굳이 섬으로 가려느냐고, 특히 어머니가 울면서 걱정하셨죠.”
고금도에서 사역하던 시절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던 방경숙 사모는 뜻밖에 금호도에서 사역을 해보자고 적극적으로 전 목사를 지지하며 나섰다.

“목사님, 하나님이 가게 하신다면 그곳이 섬이라 해도 가야지요. 까마귀를 통해서라도 먹이시는 하나님이시잖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실 겁니다.”

“당신이 괜찮다면 나도 좋습니다. 금호도로 갑시다.”
교회에는 두 명의 성도가 남아있었다. 용일심 할머니와 지적 장애를 가진 45살 정병진 청년. 본격적으로 전도를 시작하자 한 주민이 전 목사 부부에게 말했다.

“내가 30년을 여기서 살았는데 우리는 뽕 할머니를 섬기거든? 전도는 꿈도 꾸지 말어!”
그러한 섬 주민의 으름장에도 전 목사는 낙망하지 않고 전도를 계속 이어나갔다.

‘주님, 34 가구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이곳을 복음화 하겠습니다.’
전 목사는 매주 토요일 마다 초코파이와 요구르트 80명분을 준비하여 섬 전체를 돌며 간식을 나누어 주었다.

“섬 목회의 가장 어려운 점은 우울증입니다. 어떤 활동이나 취미 생활 을 하고 싶어도 배를 타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쉽지가 않아요. 그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도심에 있던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죠. 성도가 4-50명이나 되는 교회의 목회자도 버티지 못하고 2-3년 만에 나와 버립니다. 저 처럼 섬에 적응이 된 목회자나 생활의 터전을 아예 섬에 뿌리박고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육지에 다른 사역지가 생기면 다들 떠나버립니다.
그러니 섬 주민들이 상처를 잘 받아요. 정이 들었는데 가버리니까요.”
전 목사는 섬 주민들에게 교회에 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몇 안 되는 노인들을 묵묵히 섬기면서 몸이 아프면 병원에 모셔가고 말 동무가 되어드렸다. 때때로 효도관광을 떠나시는 분이 계시면 적은 금액이나마 보태드리기도 했다. 그렇게 매주 집을 방문하니 차차 주민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여섯 명이 찾아왔다.

“목사님, 저희가 마음이 불편해서 한 번은 와야 할 것 같아서요. 저희가 헌금할 형편도 못되고 바쁜 철이 되면 멸치랑 김 작업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못해요.”

“괜찮습니다. 앉아 있어만 주셔도 됩니다. 다른 부담 가지지 마세요. 하나님이 저희를 먹이십니다. 걱정 마시고 편안하게 오세요.”
전 목사는 그날 설교 중에 울어버리고 말았다.

‘한 영혼이 이렇게 귀하구나. 이것이 진짜 목회구나.’
할머니들은 2-3천 원씩 모아서 헌금을 드렸다.전 목사는 할머니들을 위해 예배를 마친 후 빵과 바나나, 음료수를 준비했다. 어려운 교회 형편에는 그 작은 간식조차 버거운 상황이었지만 매주 정성껏 간식을 마련한 것이다.
한번만 오고 말겠다던 할머니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14명에 이르렀다.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우지 못해 성경을 읽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알아 듣기 쉬운 설교만 하게 되는데 집중해서 잘 들으십니다.”

“섬 목회를 하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자의 질문에 전 목사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나태함입니다. 섬 안에 있다 보면 도시와는 달리 나태함에 빠질 위험이 있어요. 도시 교회의 경우에는 대개 조직이 구성되어 있고 기도회나성경공부 모임, 그 외의 여러 가지 활동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골이나 섬지역의 경우에는 할 일이 없습니다. 성경공부 모임을 할 수도 없는 형편이고요. 목회자 또한 자기개발을 하기가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죠. 심방도, 제자훈련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 상황에 안주해 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세미나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참석합니다. 그러면서 힘을 내보려는 것이죠. 물론 세미나에서 배우는 것들이 섬 목회에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않습니다만 목회자의 절박함에 의해 자꾸 참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영성생활의 유지를 위해 가족 세 명이 둘러 앉아 소리 내어 성경을 함께 읽습니다. 기도생활과 말씀생활을 의지를 내어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태해져 버릴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밤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사택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진도와 금호도를 오가는 배의 선장이 술에 잔뜩 취해 서 있었다.

“선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목사님~ 저 꽃을 보고 왔습니다. 빨간 꽃이요.”
교회 탑의 십자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목사님~ 사실 저희 어머니가 살아계실 적에 저보고 꼭 교회를 다니라 하셨는데 제가 그러지 못해서 한이 되었어요. 저도 교회 나오고 싶습니다.”
전 목사는 한 달에 한 번씩 섬 주민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에 선장을 초대했다. 선장은 그때 교회에 등록을 하고 3-4주간 교회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교회 화장실 환경이 열악해서 비가 오면 물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개보수 공사를 하려면 500만 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름이 되면 예배당에 있는 선풍기 두 대로는 무더위를 버티기 힘들어요. 연로하신 분들이 편안하게 예배드릴 수 있도록 에어컨이 설치되면 좋겠습니다.”


전주호 목사
광신대학교 졸업
대한예수교장로회 금호도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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