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셔 디스카우가 남긴 감동
작성일2022-02-15
독일의 성악가 중 최고는 단연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이다. 특히 그가 부르는 독일 가곡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디스카우는 머리 가슴 몸통 소리를 종합해 자기만의 독특한 소리를 만들었고, 이는 독일 가곡 발성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본래 디스카우는 성량이 너무 작은 가수였다. 그는 성악가로서의 꿈이었던 오페라 가수로는 성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았고 목소리가 작아도 가능한 독일 가곡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는 프란츠 슈베르트나 로베르트 슈만 등의 가곡에 붙어 있는 독일어 가사를 모두 분석했고 멜로디와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를 연구했다. 더 나아가 작곡가들이나 노래에 붙은 시에 관한 분석과 시인들에 관련된 책을 읽고 발성에 적용했다.
한때 독일의 유명 TV 방송에서 ‘디스카우의 마스터클래스’라는 제목의 시리즈 기획을 방영한 적이 있다. 디스카우의 연습 장면과 학생들을 개인지도 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중 마트하우스 폰 콜린의 시에 ‘가곡의 왕’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노래 ‘비애’(Wehmut)의 연습 장면이 눈에 띄었다. 디스카우는 가사의 뜻과 감각을 완전히 익히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날의 반주자는 유명한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프 에센바하(Christoph Eschenbach-외래어 표기법은 ‘에센바흐’이지만, 필자는 앞의 모음을 따라가는 독일어 ‘ch’ 발음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이렇게 표기한다)였는데, 그도 눈을 감고 입으로 가사를 음미하면서 반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눈을 감았으나 시종일관 음악 속에서 합일된 모습으로 대화를 주고받듯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숲을 거닐고 들을 산보할 때면/ 행복한 감정과 아픔이 교차하며/ 마음에 불안이 엄습한다/ 아름다운 초원을 바라보고 봄의 즐거움을 만끽하지만/ 마음에 스며드는 평온함 속에는 비애가 뒤섞여 있다/ 왜냐하면/ 바람을 타고 들리는 노래도/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것들도/ 사랑하고 의지하며 지내던 사람도/ 눈에 비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도/ 바람같이 사라지고 지나가겠기에.”
노래가 끝날 무렵 디스카우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는 것이 카메라에 클로즈업됐다. 그런가 하면 반주자의 눈가에도 역시 눈물이 고여 있었다. 두 사람은 음악이 멈추고 한참을 고요함 속에 미동도 없이 있었다. 그런 후에 두 거장이 음악 해석에 대해 진지하게 무엇인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마스터클래스의 프로그램은 막을 내렸다.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이들이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이유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정식 무대도 아닌 하나의 연습에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예술이 아닌가. 그리고 그들은 완전한 합일을 이루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었기에 아름답게 보이고 감동을 준다. 둘이 하나 되고 열과 백이 하나가 되어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은 아름다움이고 감동이다. 또한 눈물이 있기에 더욱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죽은 오선지의 음악을 살려서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고, 그 예술적 성취감에 겨워 조용히 흐느끼는 모습은 가슴 저미는 아름다움과 감동이다.
아름다움이 상실되고 감동의 눈물이 메마른 시대를 살고 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하나 되지 못하고, 눈물도 메마른 이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가슴 저미는 감동과 아름다운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종교도 그리고 교회조차도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아름다운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31550&code=23111413&sid1=mco
문성모 (강남제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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