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작성일2022-04-15
나는 목숨 건 대수술을 여러 번 했고, 의사로부터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선고도 들었다. 그때 나의 모습이 지금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교회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이 힘든 지금,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 미래가 달라진다.
우리 교회에 급성 백혈병으로 투병했던 형제가 있었다. 절망적인 결과를 통보받고 낙심하는 아내에게 이 형제는 “지금 내 병을 붙잡은 거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붙잡은 거야?”라고 물었고, 그 아내는 부활하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고 낙심한 상황을 이길 수 있었다. 이렇게 초점의 문제는 생사(生死)가 걸린 문제다(민 21:4~9). 그러면 고난 가운데 있었던 초대교회는 무엇을 바라보았는가. 초대교회의 신앙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부활 신앙’이다. 초대교회의 부활 신앙은 단순히 예수님이 살아나셨고 죽음 이후 내세가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지금 그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신앙이다. 우리와 성정이 동일한 제자들인데 어떻게 이 신앙이 가능했을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던 현장에 있지 않던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하는 동료들에게 ‘내가 예수님의 못 자국에 직접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했다. 8일 후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도마의 이 고백을 그대로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았어도 그들과 함께하셨음을 증명해 보이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로 성경과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믿었고, 예수님이 눈앞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항상 우리와 함께하심을 실제로 믿었다.
부활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역사성을 인정하면서도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2000년 전에 일어난 부활 사건이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부활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 죄를 위해 죽고, 부활하셔서 지금 만왕의 왕으로 살아 계시다는 것이며, 지금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라는 것이다(엡 1:19~21). 부활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다. 왜냐하면 ‘부활 사건’은 20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현재 살아계신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믿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믿음이 참된 믿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라고 하였다. 믿음은 곧 영접, 예수님을 내 안에 주인으로 모셔 들이는 것이다(요한복음 1:12).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예수님이 지금 내 안에 계신 것을 믿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입술로는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는다고 말하면서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믿지 않는다면, 실상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믿는 자들의 삶이 변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종교개혁자들의 외침인 ‘코람데오’ 즉, ‘하나님의 임재’가 실제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제인 것과 같이,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 것도 실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은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인도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믿는 자들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 것을 믿는 자이며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믿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간음하는 것이며(약 4:4),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골 3:17).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행하는 것이므로 외식할 수 없고 은밀한 죄를 지을 수 없다.
그런데 그리스도인 중에 ‘하나님의 임재’ 즉 ‘하나님이 나와 항상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사건이며 위대한 능력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능력인가. 구약 시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왕이나 선지자, 제사장뿐이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잘 이끌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모세와 함께하셨던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수 1:5) 여호수아의 탁월한 지도력의 근원은 ‘하나님이 함께하심’이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일지라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떠나시기도 하였다(삼상 16:14, 시 51:11).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인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세상 끝날까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신다(마 28:18~20). 이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는 이유이고, 우리의 지친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이며, 세상에서 우리가 들은 가장 기쁜 소식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사명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셨다. 그 능력이 바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이다. 주님이 함께하시는 우리는 모세와 여호수아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고린도후서 4장 8, 9절에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심한 고난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극심한 고난의 때에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그 답은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어떤 환경 속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지금 내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은 가장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이다. 질그릇같이 연약한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보배, 주님 안에 거할 때 이와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고후 4:7, 요 15:5)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믿는 자들이 악한 자 안에 처한 이 세상(요일 5:19)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한다. 성령께서는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 즉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해주신다.
부활은 기독교의 심장이며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도 없다. 부활 복음으로 세워진 초대교회에 고난의 시대에도 놀라운 부흥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코로나로 어려운 이 시대에도 부활의 복음을 통해 놀라운 부흥 역사가 일어날 것을 확신한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40500&code=23111412&sid1=mco
김성로 (한마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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