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소식

작성일2021-12-30

성탄절(12.25)부터 주현일(1.6)까지 ‘성탄 절기’라고 부른다. 교회가 예수 탄생 사건을 깊게 묵상하는 시기이다. 여러 주제가 있겠지만 성탄 소식을 접한 최초의 사람을 짚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성경에 보면 성탄 소식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왕족이나 지식인, 종교 지도자, 사회 지도층이 아니라 목자와 동방박사였다. 목자는 유대인, 동방박사는 이방인을 상징한다고 본다면 성탄은 온 세상을 위한 기쁜 소식이 분명하다. 하지만 성탄의 이야기는 이렇게 단순하게 끝나지 않는다.

유대인은 선민의식 하나로 사는 민족인데 선민의식을 보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율법을 지키는 삶이다. 그중에서도 안식일 준수는 최고의 법인 동시에 가장 기본적인 생활 태도라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지옥 갈 ‘죄인’으로 쉽게 구분됐다.

그러면 목자들은 어떨까. 목자들은 유대인이지만 안식일을 지킬 수 없는 직업군이다. 생각해 보라. 안식일 지킨다고 너도나도 다 성전에 가버리고 일도 안 하면 양은 누가 돌보나. 이런 현실적인 이유로 유대인들은 입에 풀칠하기 바쁜 가난한 하층민을 고용해 양을 돌보게 했는데, 이들이 바로 성탄의 첫 목격자였던 목자들이다. 그러니 목자들이 성탄을 목격했다는 성경 이야기는 그리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더욱 비극적인 건 사회적 편견이다. 자기들이 고용해서 안식일을 지킬 수 없도록 원천 봉쇄해 놓고선 목자들을 죄인이라고 무시했다는 건, 목자들이 유대인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가질 수 없던 부류였다는 걸 방증한다. 그런데 성탄의 소식은 이런 목소리 없던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진다.

동방박사는 또 어떤가. 이들은 이방인이다. ‘지옥 땔감으로 쓰려고 하나님이 이방인을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대인에게 이방인은 멸시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성경에서 ‘동방박사’라고 읽는 원어는 유식한 ‘박사’라는 뜻이 아니다. ‘박사들’이라고 번역된 원문은 ‘마고이’인데 요즘으로 치면 ‘점쟁이들’이란 뜻이나 다름없다. 즉 ‘동방박사’는 동쪽 나라 출신의 용한 외국 점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쪽에서 온 용한 점쟁이, 게다가 구원 계획에서 이미 제외된 이방인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사람들이 가장 먼저 거룩한 성탄 장면을 보고 주님을 영접한다.

이쯤 되면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던 ‘거룩’과 ‘속된 것’의 구별이 모호해진다. 우리는 성속(聖俗)의 짙은 구분선을 그려가며 이 사람 저 사람을 평가해 왔지만, 성탄의 메시지는 우리가 그어대던 그 굵은 선을 깡그리 지워버린다.

복음은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린 늘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 중요한 사람과 하찮은 사람, 특별한 지역과 무시하는 지역을 은연중 구분하며 살지만, 성탄은 이런 우리식 삶과 생각을 야멸차게 박살낸다. 그러고는 그동안 무심코 지나친 모든 사람과 사물, 지역,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실은 하늘의 신비를 발견할 수 있는 거룩한 장이었다는 아름다운 사실을 전해준다.

오늘 우리의 교회가 성탄의 절기에 해야 할 일도 이와 연결된다. 정치 경제 환경 그 무엇 하나 희망 둘 곳 없다고 아우성치는 이 시대에, 교회가 할 일은 특별하고 화려한 성탄 행사나 연말연시 이벤트를 여는 데 있지 않다. 요셉과 마리아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 베들레헴처럼 보잘것없는 환경과 지역, 심지어 목자와 동방박사로 대표되는 목소리 없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찾아내고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일에 교회가 힘써야 한다. 이런 일에 고민도 없고 힘도 안 쓴다면 그건 성탄의 소식을 하나의 이벤트로 소비하며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 곳이라면 정말 교회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목사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25087&code=23111413&sid1=mco

최주훈 (중앙루터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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