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을 아는 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16세기 종교 개혁자 존 칼뱅의 『기독교 강요』라는 책에는 이런 글이 있다.

어느 나라 임금이 나라 안의 모든 학자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이란 누구신가?’를 알기 쉽게 설명하라고 하였다. 학자들은 며칠 간의 여유를 달라고 요청한 후 수 많은 책을 조사하며 명상에 잠긴 채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들은 결국 임금 앞에서 ‘임금님, 하나님이란 알 수 없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망원경으로 보면 해와 달 등 천체가 보이고, 현미경으로 보면 세균은 보여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라 고 고백하였다.

학자들의 고백이 옳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성경에도 기록되었듯이 하나님이 알려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적인 하나님을 경험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 인생에는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우리가 그분을 알게되는 것은 오직 창조주의 의지에 달려있을 뿐 이다.
성경은 하나님에게 나타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계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창조물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또는 선지자를 통해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

“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 19:1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20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1-2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 5:39



이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이 계시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달려있다. 이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의심하고 거부하냐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지 결정된다.
그러나 우리가 배워왔던 혹은 믿어왔던 도그마에 대한 잘못된 이론들 때문에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계시를 그대로 믿는 것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레슬리 뉴비긴은 그의 저서 『다윈주의 사회에서의 복음』에서 현대의 종교 교육이 어린이에게 종교적 진리에 대한 특정한 견해를 강요하는 것 을 강하게 비난한다고 고발하면서 아래와 같이 저술했다.


그리스도인은 ‘마치 자기의 믿음이 거짓일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어떤 명제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의심 없이 수용하는 다른 신념에 기초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동일한 신념에 대해 독단적인 자세와 회의적인 자세를 동시에 품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한편 과학 교육의 접근방식은 이와 전혀 다르다고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과학 교사는 가령 기체의 팽창에 관한 법칙이 무엇인지 분명하고 확고한 견해를 갖고 있고, 교육의 결과 학생들도 똑같은 것을 믿게 될 것을 기대한다. (…) 학생이 그저 교사가 말하는 내용을 반복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본인이 그것이 참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 만일 학생이 그 진리나 자기가 배운 내용에 대해 열린마음(회의하는)을 갖는다면, 교사는 결코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교사는 학생에게 그 진리나 보일의 법칙같은 것이 개인적 의견의 문제라는 인상을 주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과학과 수학이 사실에 대한 믿음을 통해 그 배움을 시작하는 것처럼, 종교적인 계시 또한 믿음을 통해 그 진리를 배워가야 한다. 사실 모든 지식은 믿음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레슬리 뉴비긴의 말처럼, 프랑스의 수도가 파리인 것을 가르치는 것과 1+1=2인 것을 아이에게 가르칠 때 아이가 믿지 않는다면 배움이 시작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흔히 ‘이성’ 이란 단어가 마치 독자적인 정보의 근원인 양 전통이나 계시와 나란히 사용된다. 그러나 이는 범주들을 혼동하는 잘못임에 틀림없다. 이성은 허공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정신력은 이전 세대들의 경험에 기대는 어떤 전통 안에서만 계발될 수 있다. (…) 과학을 포함해서 (…) 이성은 반드시 어떤 신념의 타당성 여부를 결정하는 한 전통의 테두리 내에서 그런 기능을 수행하게 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그의 글을 읽어 보기를 바란다. 필자는 그의 글을 통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여러 채널을 통해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믿기보다는 의심 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을 먼저 배워왔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는 그런 비판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인 바탕이 있다. 우리가 그러한 바탕을 의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자라고 누리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계몽주의 이후의 철학 사상이 우리의 문화에 뿌리내리고 있기에 그러한 철학과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성경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는 알기 위해서 믿는다.’ 아우구스티누스

이제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으로 돌아가야 한다. 불신앙의 잘못된 세계관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겸손한 마음으로 믿기로 결정해야 한다. 이 믿음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계시)을 들음에서 나온다. 또한 들음은 마음 중심으로부터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의지적 결단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매일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만이 그 분을 알게 되는 지식에 이를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 7:17



최재화 (감독)

기독교대한감리회 중앙연회 감독이며 명암교회 담임목사로 시무 중인 최재화 감독은 협성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아세아학원을 수료, 감리교신학대학교 선교대 학원 졸업,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연수를 했다. 겨레사랑선교회 이사, 성남시 기독 교연합회 부회장, 감리교 홍보출판국 위원, 기아대책 성남지역 이사, 기독교대한 감리회 중앙연회 총무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평신도대학』, 『예수님, 어떻게 믿을까요?』가 있으며 『트리니티말씀대전』을 편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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