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개정, 이것을 주목하라

우리가 헌법의 무게를 알자

4월 25일은 법의 날이다. 법에도 위계질서가 있고, 헌법은 한 나라의 법질서에서 제일 윗자리를 차지한다. 그 밑에 법률, 명령, 조례 등의 순으로 법질서의 위계가 정해진다. 법의 역사를 보면 오늘날 민법(civil law)으로 흔히 일컬어지는 사법(私法)의 역사가 헌법의 역사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헌법은 한 나라의 뼈대를 이루는 기본법이다. 따라서 근대국가가 형성된 이후 헌법 없는 국가는 상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현대국가는 예외 없이 헌법을 가지고 있다.

헌법은 보통 전문(前文)과 기본권조항 그리고 통치기구로 구성된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부분은 두말할 것도 없이 기본권조항과 통치기구이다. 기본권조항에는 신체의 자유와 재산권,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포함한 전통적인 자유적 기본권 그리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참정권과 같은 적극적 청구권과 정치적 참여권 그 밖에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인 노동기본권, 교육을 받을 권리, 혼인과 가정을 보호받을 권리, 평등권과 같은 사회적 기본권 등이 포함된다.


기본권조항은 헌법의 핵심가치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의 구체적인 조항들이기 때문에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경제정의와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살 권리인 환경기본권, 소비자의 각종 권리 등은 후기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그 중요성이 인식됨으로써 새롭게 확립된 기본권이다. 오늘날 지구촌시대의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세계시민들에게 국제연합산하의 각종 기구들, 특히 국제인권기구들은 새로운 양태의 인권을 개발하고 확장시키는데 열중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적인 인권운동의 흐름이 곧바로 헌법적인 무게를 갖지는 못하지만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은 국제협약들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며, 그 결과 헌법을 보충하는 효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통치기구는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2원집정부제 등의 다양한 틀 안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주로 3권 분립과 견제균형의 원칙하에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외에 헌법기관인 감사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등의 존립과 기능에 관한 규정으로 구성된다. 그 밖에도 지방자치단체와 정당에 관한 비교적 상세한 규정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물론 통치기구는 국가의 존립에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것 자체가 존재목적일 수 없다. 통치기구는 바로 기본권조항의 실현을 위한 합목적적인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말해 국가가 인간을 위
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국가의 통치기구도 국민의 기본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의 기본권이 국가의 통치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1조2항)고 말할 때 이런 의미도 내포하는 것이다. 좀 더 명확하게 독일헌법인 기본법은 “다음에
열거하는 기본권은 직접 적용될 법으로서 입법, 행정, 사법을 구속한다”(독일기본법 제1조3항)고 표명한다.

보통 사람들은 헌법의 이 가치핵심을 바로 알지 못하고, 권력에 굴종된 왜소한 인간존재로 살아가기 십상이다. 보통 헌법은 뜬구름처럼 막연해 보이고 현실의 권력 작용들은 각 사람 위에 강력한 힘을 실제로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도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속국가에서 우리는 국민으로서 모든 국가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주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권력 앞에 당당할 존엄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그 근거를 하나님과 동일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존재의 존엄성에서 찾는다.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 기름부음 받은 존재이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현실 국가의 헌법질서 속에서 각자 존엄한 주체로서 주권을 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은 우리를 섬기는 종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독소조항이 들어가지 않게 감시가 필요
최근 국회와 정부에서 헌법개정논의가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는 중이다. 이미 알려진 몇 가지 쟁점들을 여기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첫째, 헌법 전문에 나오는 기존의 3·1운동, 4·19민주이념에 더하여 박근혜 정부를 탄핵으로 몰아낸 이른바 ‘촛불혁명’을 추가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대신 ‘민주적’ 기
본질서로 헌법정신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현 문재인정부와 여권에서 나오고 있다.

아직 촛불혁명에 담긴 의미의 모호성이 큰 점을 감안하면 그런 시도는 경솔해 보인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리는 우리가 수많은 피를 흘리며 쟁취하고 수호해 온 장구한 헌법의 기본정신이기 때문에 흔들리기 쉬운 한 정권의 입맛대로 섣불리 손을 댈 사안이 못 된다. 이와 관련하여 헌법 제4조 평화통일 정책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정책’의 방향도 함부로 ‘민주적 기본질서’와 같은 애매한 말로 각색하도록 내 버려둬서는 안 될 일이다.

독일연방 기본법은 이와 관련하여 이른바 헌법의 불변조항을 두고 있다(제79조3항). 즉,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불가침성(제1조1항),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이 인간 공동체와 세계평화와 정의의 기본임에 대한 독일국민의 신조(제1조2항), 독일연방공화국은 민주적, 사회적 연방국가이며(제20조1항), 모든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제20조2항), 입법권은 이 헌법에 합치하는 질서에, 행정권과 사법권은 법과 법률에 구속된다는 점(제20조2항), 이런 질서를 폐기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모든 독일국민은 이를 제지하기 위한 다른 수단이 없을 때 저항권을
가진다(제20조3항)는 것이다.

둘째, 기본권조항과 관련된 개정논의이다. 최근 좌편향 시민단체들과 정치세력들이 추진하는 헌법개정운동에는 특정세력의 이해관계에 맞도록 헌법상의 기본권조항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노골화되고 있다. 예컨대 헌법 제11조의 차별 금지항목에 ‘성적지향’ 또는 단순히 사회적 신분(제11조1항) 바로 다음에 ‘등’을 끼어 넣어 동성애를 국민기본권항목으로 추가하려 한다. 만약 이렇게 되면 동성애는 우리가 알지 못한 사이에 개헌에 편승하여 베일에 가려진 채로 국민기본권으로 등극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잇따른 부속 법률로 차별금지법이니 혐오금지법 따위가 제정되어, 우리의 신앙과 양심의 자유, 선교와 전도를 포함한 각종 종교 활동의 자유가 급격하게 위축될 위험이 높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깨어 기도해야 할 뿐 아니라, 그것 하나 때문에도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보이콧 하거나 반대투표운동에 나서야 한다.

또 다른 함정도 유의해야 한다. 헌법 제36조1항(혼인과 가족생활의 보호)에서도 기존의 ‘양성평등’을 그냥 ‘성 평등’으로 바꾸려는 시도이다. 여기에도 간교하고 위험한 술책이 들어 있다. 성 평등이라는 기치아래 동성애, 양성애 등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인 성욕구자들이 기본권이라는 권리행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이런 잔꾀에 넘어가지 않도록 성도들은 깨어 기도하며 경계 방어해야 마땅하다.


이번에 헌법 개정이 필요해 보이는 부분은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통치기구의 손질이다. 그것이 큰 국민적 관심사인 만큼, 그 밖에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어떠한 기도도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 헌법질서를 위해 엄혹한 냉전시대를 겪어왔고, 한국전쟁이라는 끔찍한 전란과 분단 상황을 견뎌냈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옳았다는 점은 구소련체제의 붕괴로 입증되었고, 오늘날 남북한 간에 삶의 질 차이가 그것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음을 알아야할 것이다.†

김일수 (명예교수)

고려대 법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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