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칼럼

너와 함께 있으리라(34)|하늘이 열리는 그 날에

BC 592년, 서른 살이 된 에스겔은 다른 동포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가 있던 바벨론의 그발 강변에서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되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에서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겔 1:1).
서른 살은 레위인 중 고핫 자손이 회막의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였다.
“곧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役事)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민 4:3).
또 그 나이는 후일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때이기도 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눅 3:23).
그발 강변에서 에스겔이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을 때 하늘이 열렸다고 했는데, 예수께서 나사렛을 떠나 요단 강에 이르러 세례를 받으신 때에도 하늘이 열렸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 3:16).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셨는데 에스겔이 그발 강변에서 본 환상은 매우 놀랍고 두려운 것이었다.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그들에게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겔 1:4~6).
에스겔은 그 네 얼굴의 모양을 설명해 놓았다.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겔 1:10).
에스겔이 그가 본 광경을 ‘하나님의 모습(visions)’이라고 써 놓았기 때문에 이 ‘네 생물’의 형상에 대한 해석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형이상학적 견해가 되거나 지나친 신비주의 쪽으로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형상(形像, likeness)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좀 더 편하게 받을 수도 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 1:27).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형상’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친근한 말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으므로 우리는 사람의 형상에서 시작해 하나님께로 다가가 그분의 형상을 느껴볼 수도 있고, 사람의 마음에서 출발해 하나님의 마음에까지도 이를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롬 11:34).
우리의 마음을 그분의 마음으로 연결시켜 주는 이가 바로 ‘성령’이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10).
에스겔이 본 네 생물의 형상도 ‘영(靈, the spirit)’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그 생물들도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또 생물들의 모양은 타는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에서는 번개가 나며 그 생물들은 번개 모양 같이 왕래하더라”(겔 1:12~14).

내가 네게 말하리라
네 생물의 ‘형상’을 말할 때 그 특징을 따라 사람을 ‘지혜’로, 사자를 ‘권능’으로, 소를 ‘성실’로 그리고 독수리를 ‘통찰’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무소부재’의 권위를 나타내는 ‘형상(image)’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더 친근한 전통적 접근 방법은 네 형상을 ‘네 복음서’의 상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즉 사람은 ‘마태복음’, 사자는 ‘마가복음’, 소는 ‘누가복음’, 독수리는 ‘요한복음’으로 본다.
세리였던 마태가 기록한 ‘마태복음’은 역사적 징조와 복음의 성취를 연결해 가며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을 면밀하게 살펴 놓았고, 베드로가 불러 주어 마가가 받아썼다는 ‘마가복음’은 하나님 나라를 향해 질주하듯 박력이 넘치고, 의원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에는 하나님의 성실과 긍휼이 강물처럼 흐르고, 나중에 기록된 ‘요한복음’에는 하나님의 품속에까지 파고드는 안목이 빛나고 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아버지와 아들의 통일성을 증거해 주는 분이 곧 성령이시다. 에스겔이 본 네 가지 형상이 성령에 의해 운행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또한 아들이신 분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과 함께 살고, 말씀하시고, 행하셨던 것들을 네 명의 기자가 적어 남긴 ‘네 복음서’를 통해 그 의미를 해석하고, 이해하고, 깨닫는 일은 합당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면 하나님께서 왜 그발 강변에 잡혀가 있는 에스겔에게 네 생물의 형상을 보여 주셨는지 알아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제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아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에 이루어진 일들을 지켜본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있을 때 왜 다시 하늘이 열렸는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계 4:1).
그리고 사도 요한도 성령에 감동되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계 4:2~3).
에스겔도 그발 강변에서 그 보좌의 무지개를 보았다.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겔 1:28).
그리고 요한도 에스겔처럼 네 생물의 형상을 본 것이다.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계 4:6~8).
에스겔이 보좌의 무지개를 보고 엎드렸을 때 그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렸다.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겔 2:1).
BC 166년 제사장 마따디아가 그의 다섯 아들과 함께 수리아 왕 안티오쿠스 Ⅳ세의 명령에 불복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하시딤’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했다.
“일부 하시딤 사람들이 모여 와서 그들과 합세했다. 그들은 용감한 사람들이었고 모두 경건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다.”(마카비 상 2:42)
‘하시딤’ 즉 ‘경건파’ 사람들은 일부 레위인이 안티오쿠스 Ⅳ세가 강요하는 명령에 타협하려는 기미가 보이자 이를 거부하고 율법의 수호를 주장하며 봉기한 마따디아 일가의 반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성전 재탈환에 성공했다. 시몬의 대제사장직을 세습하는 하스몬 왕조에서 ‘하시딤’은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시몬의 아들 요한 힐카누스의 시대에 하시딤의 권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요한 힐카누스를 반대했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3~10)
요한 힐카누스는 대제사장직을 물려받았으나 매우 정치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다윗의 무덤에서 3천 달란트를 꺼내 군사 자금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에돔 즉 이두매를 공격하여 그들에게 강제로 할례를 받게 하고 유대 율법을 지키게 했다. 그는 또 사마리아를 공격하여 폐허로 만들었고 로마와는 우호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일부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의 지나친 정치적 성향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율법에도 없는 수많은 규례들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것을 사두개파는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대제사장 요한 힐카누스와 바리새파의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하자 사두개파들이 끼어들어 바리새파를 비난했고 요한 힐카누스는 사두개파 쪽을 편들게 되었다.
“요한 힐카누스는 스스로 바리새파에서 탈퇴하고 바리새파 사람들이 만들어 백성들에게 지시한 모든 법규들을 철폐했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3~10)
이때부터 사두개파는 저절로 권력 편에 서게 되었고 제사장직을 주도하는 세력이 되었다. 반면에 바리새파는 제도권에서 밀려나 강경파가 되었다. 헤롯의 시대에도 역시 대제사장을 비롯한 제도권의 인맥은 사두개파가 장악했고, 바리새파는 그에 대항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하시딤’ 즉 경건파의 중심 세력이었던 바리새파에서 두 개의 종파가 더 파생되었는데 엣세네파와 셀롯파가 그것이었다.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권력 투쟁에 실망하여 세상과 단절한 채, 정결 생활에 힘써서 종말을 준비하며 하시딤의 정통파를 자처한 신앙 공동체가 엣세네파였다. 그와는 반대로 로마 세력을 투쟁으로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자들이 셀롯파 즉 ‘열심당’이었다. 방향이 좀 다르기는 하나 열심당 역시 심기불편했던 바리새파가 은연중에 부추겨서 만들어낸 투쟁 집단이었던 것이다.

세포리스의 십자가
BC 4년 헤롯 왕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한 후 자신을 만나지 않고 돌아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심히 노하여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라고 명령했으나 요셉과 마리아는 이미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한 후였다. 그 후 헤롯은 탐식증에 걸려 마구 먹기만 하다가 위와 내장이 모두 썩어 사망했다.
“헤롯은 유대 왕국을 아켈라오에게, 갈릴리와 베레아 분봉국은 안디바에게 그리고 드라고닛과 바네아는 빌립에게 물려 주었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7~8)
나사렛의 예수가 열 살이던 AD 6년, 나사렛 북서쪽 8km 지점에 있는 세포리스에서 ‘열심당’의 반란이 일어났다. ‘갈릴리의 유다’(행 5:37)라는 인물이 열심당의 이름으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수리아 총독 바루스가 2개 군단과 4개 기병대를 출동시켜 세포리스를 탈환하고 세포리스로 들어가는 도로 양쪽에 십자가를 세웠다.
“십자가에 달려 처형된 자의 수는 2천 명에 달했다.”(<유대고대사> 17~10)
반역자를 십자가에 달아 처형하는 방법은 로마가 카르타고에서 배워 도입한 것으로 BC 71년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이 진압된 후 아피아 가도에 십자가를 세워 가담자 6천 명을 처형한 후로 자주 사용된 처형법이었다. 세포리스에서 2천 개의 십자가를 급히 제작할 때 인근 나사렛의 목수였던 요셉도 동원되었을 것이고, 당시 열 살이었던 예수도 아버지의 작업 현장에 가 보았을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마 10:38).
어린 예수는 세포리스에서 2천 명의 반란군이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는 모습도 보았을 것이고 이때부터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며 선지자의 글들을 더 많이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태 후인 AD 8년 유월절에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간다.
“유대 왕 아켈라오는 시위 군중 3천 명을 학살했다. 유대인들이 이를 고소하자 카이사르는 아켈라오를 파면하고 코포니우스를 총독으로 임명했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AD 8년 열두 살의 예수는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눅 2:42~43).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예수 말고도 세 아들이 더 있었다(마 13:55). 그 아이들을 안고, 업고, 끌며 예수는 당연히 일행 중에 있을 줄로 생각하여 하룻길을 간 후 비로소 아이가 없음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이를 찾으며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랍비들 중에 앉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는 예수를 만났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그 부모의 물음에 아이가 대답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
열두 살 된 예수는 이미 그때 사람이 서로 싸우고 죽이는 문제는 그 ‘아버지’(사 64:8)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떠났기 때문임을 알아챘던 것이다. 아이 예수는 사람이 사망의 문제를 이기는 길은 오직 말씀에 ‘순종’하여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모친 마리아는 예수의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눅 2:51).
누가는 열두 살 이후로 그 아들이 자라던 모습을 한 줄 더 적어 놓았다. 아마도 예수의 성장 과정을 곁에서 유심히 지켜본 그 모친 마리아의 기억이었을 것이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김성일 (소설가)

196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 대우중공업 이사를 지냈다. 기독교 소설과 추리, 역사소설을 주로 쓴 기독교문학가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성경과의 만남>, <성 경으로 여는 세계사 1, 2, 3>, <하나 되게 하소서>, <문화전쟁의 시대>, <제3일의 소 망>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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