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그루버 칼럼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간 후에

저는 최근에 급속하게 암이 전이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하자고 했지만 저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겠다는 결정을 하고 큰 딸인 크리스틴의 집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교회에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제가 2013년 초, 미국 달라스 주에서 사역할 교회를 향해 차를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눈 태풍이 불어와서 바로 앞에 있는 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든 차들이 마치 흰 눈에 갇혀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조심조심 주의 깊게 운전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제 눈앞에 열린 비전이 나타났습니다. 한 젊고 뚱뚱한 동양 남자가 잠자며 악몽을 꾸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서 두려워하는 모습이 눈앞에 선명 하게 펼쳐졌습니다.
성령께서 제게 그 남자는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김정은이 꾸었던 악몽도 보여주셨습니다. 김정은을 지키던 개인 경호원은 여자였습니다. 그 중 한 여자가 갑자기 김정은을 향해서 총을 쏘는 장면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김정은이 종종 이런 악몽을 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한국 기독교인들은 김정은이 빨리 죽거나 제거되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김정은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김정은이 북한의 독재자가 되어서 기독교를 탄압하고 있지만 그것은 김정은의 선택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라도 김씨 일가에서 태어나서 복음을 듣지 못한 채 김정은처럼 양육되고 김정은과 같은 위치에 있게 된다면 김정은과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게도 김정은 나이대의 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떠올리게 하시며 김정은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제가 제 아들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제게 김정은에 대한 애끓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에 저는 운전대를 붙잡고 펑펑 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가 김정은을 심판해달라고만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기에 한국교회의 요청에 따라 김정은에게 자비 없는 심판을 행해야 한다면 한국교회의 죄악에 대해서도 자비 없는 심판을 행하게 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봄에 한국교회에 가면 메시지를 전할 기회를 열어줄 것이니 한국교회에 경고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칼로 그으면 잘라질 것처럼 하얗고 두꺼운 커튼을 겹겹이 둘러놓은 듯이 눈이 펑펑 쏟아지는 도로 위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조금만 운전을 잘못하면 바로 미끄러져 버릴 수 있었습니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앞차나 뒷차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그런 눈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위험한 상황 속에서 열린 비전을 주셨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한동안 김정은에 대해 깊은 사랑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 한국교회에 제가 받은 비전을 나눴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저를 김정은에게 보내주신다면 복음을 전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제가 죽어도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북으로 가는 길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판문점을 방문할 기회가 와서 판문점을 따라 북으로 올라갈 생각도 했습니다. 함께 간 한국교회 성도들이 제가 북으로 가버리면 자신들이 매우 곤란한 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기에 포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에 메시지를 전한 이후 김정은에 대한 중보부담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제가 김정은의 영혼이 구원받도록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면 한국의 성도나 목회자 중에는 “김정은이 구원받으면 김정은 정권이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김정은이 제거되고 빨리 북한의 문이 열리기를 원합니다. 그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인 우리의 원수입니다”라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교회에 말하고 싶습니다. 김정은의 영혼구원을 위해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김정은 뿐 아니라 한국교회에도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심판만을 주장한다면 한국교회에게도 하나님께서 자비 없는 공의를 행하게 될 것입니다.

끝까지 베푸신 신실한 사랑
제 아내는 2018년 가을에 소천했습니다. 아내는 중년에 이미 심한 당뇨를 앓았고 죽기 15년 전에는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오랜 지병으로 아내는 매우 민감하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변했기에 한동안 우리의 관계는 매우 불편했고 긴장으로 가득했습니다. 저는 외부사역을 많이 했기에 집에 홀로 오랫동안 있어야 했던 아내의 불만은 당연히 컸습니다. 한때는 아내와 나와의 관계가 도저히 회복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족을 주님께 의뢰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충실했는데 노력해도 아내와 불편한 관계를 회복하기가 힘들어서 때로 제 자신이 위선자 같이 느껴져 괴로울 때가 있었습니다. 제 사역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고, 구원을 받고,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내와의 불화는 제게는 손 밑에 가시가 박힌듯이 늘 마음에 걸리는 문제였습니다.

아내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제가 사역을 할 때는 사역에 전념하도록 해주었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해외 전화는 매우 비쌌기에 해외 사역을 가면 집에 전화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역지에 가면 가족을 내려놓고 사역에만 전념하던 버릇이 지속되면서 아내와 친밀감 있는 사랑을 나누기가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포기하지 말고 부드러운 사랑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저는 해외에 있을 때나 외부사역 중에는 아내와 영상통화로 꼭 30~40분 동안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내가 마음이 불편해하는 것 같으면 더 오랜 시간을 아내에게 내어주었습니다. 아내를 기쁘게 하는 것을 사역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내와 친밀한 관계가 회복되자 아내는 “헨리와 나는 정말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헨리는 내게 아버지 같은 사랑을 주었습니다”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아내와의 관계가 회복되자 자녀들이 매우 기뻐했습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속에 절망이 치유되었고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사랑도 회복되었습니다. 보이는 아내와 친밀한 사랑을 누리지 못할 때는 주님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고 주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했지만 내 안에 어떤 막 같은 게 쳐져 있었습니다. 아내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며 그리스도와의 관계나 사역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더 일찍 깨달았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부부관계에 어려움이 있다면 부부사이에 꼬인 매듭이 풀려야 영혼육의 많은 결핍이 해결될 수 있으니 포기하지 마시고 부드럽고 겸손한 사랑으로 끝까지 노력하며 기도하시길 권고하고 싶습니다.

저는 암이 온몸에 전이되었지만 고통을 느끼지는 않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암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주님과의 친밀감이 나날이 더해져 가고 있고 제가 죄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들도 회개하는 은혜가 부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하지만 당신에게 신실하려고 했고 순복하려고 했던 종에게 끝까지 베푸시는 신실하신 사랑과 은혜에 대해 간증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한국교회 성도 여러분을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헨리 그루버 (목사)

‘세상을 걷는 중보기도자’로 알려 져 있는 필자는 18세 때부터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의 우범지역에서 주님과 함께 걷기 시작해 지금까지 주님과 함께 걷고 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그가 만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 을 전하고 있다. 그의 삶에는 초자 연적인 이적들이 많이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걸으며 기도한다는 사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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