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칼럼

너와 함께 있으리라 ㉕|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이다말의 자손인 엘리가 실로의 제사장으로 있던 BC 1102년, 에브라임 산지에서 온 ‘엘가나’라는 사람이 실로에 올라가 ‘만군(萬軍)의 여호와’께 예배했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삼상 1:1).
이 기사를 보면 엘가나는 요셉에게서 장자권을 물려받은 에브라임 지파의 사람 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대기를 보면 그의 정체가 달라진다.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사무엘서에 나오는 엘가나는 사무엘의 아버지다.
“사무엘은 엘가나의 아들이요 엘가나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여로함은 엘리엘의 아들이요 엘리엘은 도아의 아들이요 도아는 숩의 아들이요”(대상 6:34~35).
사무엘서와 다른 것은 엘리후가 엘리엘로, 도후가 도아로 표기되어 있을 뿐 같은 이름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바로 레위 가문의 족보인 것이다. 그런데 왜 사무엘은 그의 부친 엘가나가 레위인임을 밝히지 않고 그냥 에브라임 산지에 살았던 ‘에브라임 사람’으로 적어 놓은 것일까? 역대기의 그 다음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있다.
“숩은 엘가나의 아들이요 엘가나는 마핫의 아들이요 마핫은 아마새의 아들이요
아마새는 엘가나의 아들이요 엘가나는 요엘의 아들이요 요엘은 아사랴의 아들이요
아사랴는 스바냐의 아들이요 스바냐는 다핫의 아들이요 다핫은 앗실의 아들이요
앗실은 에비아삽의 아들이요 에비아삽은 고라의 아들이요”(대상 6:35~37).
사무엘의 부친 엘가나에서 고라까지의 사이에 엘가나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셋이다. ‘엘가나’는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뜻이다. 에비아삽이 비록 그 아버지 고라의 편에 서지 않아서 죽음을 면했으나, 갈라진 땅 속으로 들어간 ‘반역자 고라’의 자손으로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비참했던가를 말해주고 있는 이름이었다. 그 이름을 나누어 가진 사무엘의 부친은 매년 실로에 가서 예배와 제사를 드렸다.

만군의 여호와여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삼상 1:3).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 5경을 기록한 모세는 군인 출신답게 하나님을 ‘싸우시는 분’으로 많이 표현했고,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에도 인간의 전쟁에 직접 개입하시는 여호와가 많이 나타나지만 ‘만군(萬軍)의 여호와’ 즉 ‘여호와 체바옷’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사무엘서가 처음이다. 반역자의 자손으로 태어나 너무 마음이 괴로운 엘가나가 칼을 들고 싸우시는 ‘만군의 여호와’께 의지하려 했던 것일까?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다. 그 하나의 이름은 한나이고 또 하나는 브닌나였다. 한나에게 자식이 없어 브닌나를 더 두었을 수도 있다. 브닌나가 늘 한나를 격분시켜 그녀가 울면 엘가나는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않으냐, 하면서 위로하곤 했다. 그러나 엘가나는 그 나름대로 고뇌가 있었고, 또 날로 타락해가는 이스라엘의 장래가 더 근심스러웠던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마음이 괴로운 한나는 엘가나의 심경을 잘 이해하지는 못했어도 그 남편이 부르며 예배하는 ‘만군(萬軍)의 여호와’께 울면서 서원의 기도를 드렸다.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1).
즉 아들을 ‘나실인’으로 드리겠다는 것이었다. 한나가 울며 입술만 달싹거리는 것을 엘리 제사장이 보고 술에 취한 것으로 생각하여 그녀를 타일렀다.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한나가 그에게 대답했다.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삼상 1:16).
엘리가 그 뜻을 짐작하고 다시 그녀에게 일렀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삼상 1:17).
집으로 돌아간 엘가나가 한나와 동침하매 그녀가 임신을 했다.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삼상 1:20).
‘사무엘’이라는 이름은 ‘그의 이름은 하나님(엘)’이라는 의미였다. 엘가나와 한나는 ‘만군의 여호와’께 기도했는데 그분이 바로 ‘엘’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라는 뜻이었다. 그들은 사무엘이 젖떼기까지 기다렸다가 그를 데리고 실로에 데려가서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부대를 바쳤다.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삼상 1:27~28).
한나는 ‘만군의 여호와’를 찬양했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삼상 2:1).

‘격분케 하는 자’가 ‘격분’시켜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는 한나의 찬송이 고통의 광야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격려가 되고 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6). 그분이 바로 ‘만군(萬軍)의 여호와’셨던 것이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삼상 2:10).

사무엘은 그 모친이 지어다 주는 세마포 에봇을 입고 실로의 성막에 머물며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겼다. 그러나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행실이 나빠 성막의 제사를 함부로 멸시했다. 하나님께 드리는 고기는 태워서 드리고 제사장은 삶은 것을 먹으라는 계율을 어기고 제물을 먼저 가져다 구워서 먹었고,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여 그 부친에게까지 소문이 들어갔다.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삼상 2:24~25).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의 아들들이 악한 행위를 계속하는 동안 언약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에 누워 있던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엘리가 부르는 줄로 알고 대답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삼상 3:4).
그가 엘리 제사장에게로 달려갔으나 엘리는 부르지 않았노라고 했다. 그런 일이 세 번이나 계속되자 엘리 제사장은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신 것임을 깨달았다.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삼상 3:9).
사무엘이 가서 누웠는데 여호와께서 또 그를 부르셨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이 시킨 대로 대답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장차 엘리의 집을 심판할 것이며 그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고 이르셨다. 아침에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그분이 말씀한대로 고하라 했으므로 사무엘이 그대로 고하자 엘리가 탄식하며 말했다.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대로 하실 것이니라”(삼상 3:18).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고 온 이스라엘이 그가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로 알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삼상 3:21).
그리고 엘리의 아들들에게는 최후의 날이 다가왔다.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하러 나갔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무참히 패해서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군사가 4천 명 가량이나 되었던 것이다.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삼상 4:4).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공격해 왔고 이스라엘은 또 패전했다. ‘만국의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들에게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사했다. 눈이 어두워진 98세의 엘리는 두 아들이 죽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다고 듣게 되었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뼈가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삼상 4:18).
블레셋 사람들이 빼앗은 여호와의 궤를 다곤 신전에 두었더니 다곤 신상이 엎드러지고 사람들 사이에 독한 종기가 유행하므로 궤를 가드로 옮겨갔으나 거기서도 독한 종기가 번졌다. 궤를 다시 에그론으로 옮겼으나 마찬가지여서 결국 돌려보내기로 했다. 암소가 끄는 수레에 실어 벧세메스로 보냈다. 궤를 들여다본 벧세메스 사람들 오만 칠십 명이 죽은고로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그 궤를 받았다.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삼상 7:2).

엘리 제사장이 죽자 결국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서게 되었다.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삼상 7:4).
이스라엘 자손이 그의 말을 따라 바알 신과 아스다롯 여신을 없애고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약속하자 사무엘은 미스바의 성회를 소집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종일 금식하며 죄를 고백했다. 그렇게 해서 엘가나와 한나가 ‘만군의 여호와’께 기도하여 낳은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삼상 7:6).
그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로 340년간 주변 모든 민족과의 수많은 전쟁으로 얼룩졌던 ‘사사시대’의 마지막 사사로, 또 제사장과 선지자로 그 시대를 마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가 기도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블레셋을 쳤고, 이스라엘은 승리했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삼상 7:12).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라는 뜻이었다. 사무엘이 사는 동안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건드리지 못했고, 이스라엘은 에그론에서 가드까지 블레셋에 빼앗겼던 성읍들을 도로 찾았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도 전쟁이 없었다. 그러나 사무엘이 늙은 후 사사의 직무를 물려받은 그의 아들 요엘과 아비야는 그 부친과 달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여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삼상 8:4~5).
그나마 이스라엘은 다른 이방들에 비해 하나님이 다스리는 체제를 꽤 오래 유지해온 셈이었다. 사무엘이 여호와께 묻자 그분이 대답하셨다.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 8:7).
결국 사무엘은 가장 미약한 베냐민 지파 증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을 주목하여 살피다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그를 왕으로 세웠다. 그는 외모가 준수하고 부친에게 효성스럽고 또 겸손한 젊은이였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삼상 9:17).
사무엘이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그를 왕으로 삼았다. 그러나 왕이 된 후의 사울은 자주 사무엘이 할 소임을 자신이 가로채어 하는 등 분별 없이 행하더니 아말렉과 싸울 때 그들의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양과 소를 남겨 두었다가 사무엘에게 들켜 그의 경고를 받게 되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邪神)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

김성일 (소설가)

196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전 대우중공업 이사를 지냈다. 기독교 소설과 추리, 역사소설을 주로 쓴 기독교문학가로 유명하다. 저서로는 <성경과의 만남>, <성 경으로 여는 세계사 1, 2, 3>, <하나 되게 하소서>, <문화전쟁의 시대>, <제3일의 소 망>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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