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칼럼

한 사람의 지도자로 희망의 탑을 쌓아가자

내가 미국 뉴욕에서 집회를 할 때 미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법이 통과되었다. 동행했던 기자들이 주일날 미국의 비교적 보수적인 교회들이 동성애 합법화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기 위해 탐방했다. 그런데 어느 교회의 주보에서도 동성애 합법화에 대한 광고나기도를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고 울분을 터뜨리며 설교하는 목회자도 없었다고 한다.

나는 한 보수교회에서 주일 마지막 예배를 인도하며 동성애에 대해 설교했다. 원래 동성애 설교를 하려 했던것은 아니다. 다른 설교를 준비했는데 그 자리에 수천만 성도들을 이끄는 거대 교단의 총회장이 참석했다. 그분
은 전용비행기를 타고 미국 전역을 순회할 정도로 위상과 영향력이 큰 분이다. 그런데 그분이 내가 설교하기 전에 교인들에게 인사말을 했다. 그분은 동성애 합법화가 되자 성명서를 냈는데, 자신은 변호사 출신이기 때문에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썼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충격을 받고 가슴에 의분이 일었다. 그래서 급하게 설교를 바꾼 것이다.

나는 예배 후에 총회장과 식사를 하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만약 미국 워싱턴에서 100만 명, 아니 50만 명만이라도 모여서 기도를 했더라면 동성애법이 통과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미국교회가 하나 돼서 이런 법을 막았어야 했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이제라도 미국교회가 하나 돼 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하지만 총회장은 시선을 돌리고 이야기를 피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미국 대법원에서 동성애가 합법화된 것이 당연한 분위기였구나. 이처럼 안일한 문제의식과 영적 둔감함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준 것이구나.’ 물론 아직도 미국교회는 살아 있다. 큰 교회도 많고, 교단들도 많다. 그러나 다 흩어진 모래알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한 사람의 지도자가 없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건재했을 때는 미국교회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로서 정계, 재계, 문화예술계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는 큰 교회 목사들도 있고 큰 교단 총회장들도 있지만 한 사람의 지도자는 없다. 개교회주의, 몇몇 목회자의 스타플레이,개교단주의적 양상이 동성결혼 합법화를 허용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여기에 관한한 장밋빛 희망이 없다. 연합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도자를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지도력을 발휘하려고 하면 어떻게든지 그 사람을 흠집 내고 끌어내리려고 하는 풍토가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완벽한 모습을 보려면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않고 수도원에 가서 수도사적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람이 큰일을 하고 여러 경영적 리더십을 발휘하다 보면 빛과 그림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는 세계 최대 교회가 있고 수백 년 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도 있다. 또 그 뒤를 잇는 지도자도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어떻게든지 그런 분들의 영적 권위와 리더십을 끌어내리려고 한다. 전부 다 도덕적, 윤리적, 선악과적 기준의 잣대로만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좀 더 영적으로 바라보고 생명나무 신앙과 건덕의 차원으로 바라보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가 온 마음과 힘을 다하여 섬기고 칭찬하기도 부족한데 악의적으로 비판하고 끌어내릴 이유가 무엇인가. 사랑이 없는 정의는 오히려 악을 생산하고 정의 없는 사랑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지난 평화통일기도회를 앞에 두고 한국교회의 큰 지도자 한 분을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를 했다. 거의 다 된 마당에 지금은 곤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타종교에서는 어떤 분이 방송에 나와도 전혀 반발이나 항의 전화가 없는데, 개신교에서 특정한 분이 지상파에 나오면 오히려 교계에서 “왜 그런 분을 세웠느냐?”며 항의 전화가 빗발친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미어지고 찢어질 뻔하였다. 한국교회도 다시 새로운 부흥을 꾀하고 세상에 거룩한 힘과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먼저 우리끼리 상처를 내지 말아야 한다.

한국교회도 개교회주의, 목회자의 스타플레이, 개교단주의로 가면 영국교회와 미국교회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에게 제도적 약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타종교 같은 경우는 제도적으로 1인 지도자가 있고 그 1인의 지도와 리더십에 의해서 모든 산하 기관들이 움직이는 일원화된 조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렇지가 않다. 1인 체제가 아니라 다체제 리더십이다. 여러 교단도 많고 연합기관마저도 몇 개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이런 불리한 약점이 있기 때문에 신학과 신앙이 큰 차이가 없으면 교단도 하나되는 것이 좋다. 더구나 연합기관도 하나가 되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교단이 다르고 다체제로 되어 있더라도 스피릿만큼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반기독교적인 정서와 세력을 막는 데는 무조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우러러보고 존경할 만한 분의 말씀이라면 따르고 순응하는 분위기와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주 안에서 하나 돼 함께 가자. 역사의식과 시대적 소명의식을 가진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세워서 연합의 지도력을 발휘하며 한국교회를 지키게 하자.
자기희생, 개교회와 개교단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한국교회 전체를 위한 큰 걸음을 걷고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세워 나가자. 그럴 때 한국교회의 눈부신 역사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 한 사람의 지도자를 지키고 세우자. 다시 한 번 불멸의 황금서판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한국교회의 역사를 새겨보자.†

소강석 (목사)

새에덴교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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