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왜 저를 믿어주지 않지요?

작성일2018-08-05

문 : 사귄 지 27일 된 남자친구가 있어요. 옆 반이라 쉬는 시간마다 그 애를 만나 는 기쁨에 학교에 가는 게 재밌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학교에 전화를 해서 선 생님과 성적 이야기를 하시면서 제 학교생활에 대해서 물어보셨대요. 선생님께서 전 공부는 잘하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게 늘 남자애랑 어울린다고 엄마 에게 부정적인 말투로 말씀하셨대요. 그 전화를 한 날, 엄마는 “넌 도대체 학 교에서 어떻게 행동을 하길래 선생님이 네가 남자애들과 어울리는 것을 걱정 하느냐”며 학교를 공부하러 다니느냐 남자애들 만나러 다니느냐, 그럴 거면 학교를 그만 다니라고 했어요. 전 아무 말도 안 하고 엄마 앞에서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엄마도 제가 좋아하는 애가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성적만 받쳐준다면 괜찮다고 하고선 선생님 이야기를 듣곤 말을 완전히 바꾸네요.

답 : 누군가를 그냥 좋아하고, 만나서 이야길 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지요. 엄마도 처음엔 그래서 공부에 지장이 없다면 괜찮다고 허락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남자애랑 너무 어울려서 걱정이 된다는 말을 들으니 엄마 마음이 갑자기 걱정과 불안으로 바뀌면서 학교를 그만 다니라는 말까지 하셨을 거예요. 그만큼 엄마가 마음이 상하셨다는 뜻이죠. 엄마를 안심시켜 드리세요. “엄마가 선생님께 ‘남자애랑 너무 어울려서 문제다’라는 말을 들은 것은 분 명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선생님께 대들거나 공부를 안 한 것 은 아니지 않느냐. 그 애는 다른 반이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면 복도에서 만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선생님 눈에 더 띄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하고 있다. 학교를 안 다녀야 할 만큼 엉망은 아니다. 엄마가 걱정하시는 것은 알겠는데 선생님 말 한 마디에 엄마가 그렇게 얼굴을 바꾸면 나도 서운하다”고 말씀 드리세요. 엄마 앞에서 문을 쾅 닫아서 ‘나 화났거든요’ 하고 표현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답니다.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그 점은 분명히 사과를 하세요. 너무 당황해서 그랬다고. 앞으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차분히 설명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 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불안했던 엄마의 마음이 조금 풀릴 거예요. 부모는 언제든지 내 아이를 믿고 싶어합니다.

문 : 그런데 주말에 엄마랑 아빠가 남자친구가 제 어깨에 손을 올리고 걸어가는 것 을 보셨대요. 아빤 그 자리에서 저를 태워오려고 하셨지만 엄마가 말리셨대요. 집에 오자마자 엄마는 대뜸 “너 어디까지 갔어?” “여태 뭐하다 이제 오는 거야” 하면서 당장 남자친구랑 헤어지든지 진짜로 학교를 그만 두든지 하라는 거예요. 다른 애들은 키스도 하고 끌어안기도 하는데 우린 손만 잡고 어깨에 손을 올리고 걸은 것뿐인데 억울해요.

답 : 요즘 이성교제 속도에서는 만난 지 일주일만 지나면 키스도 하고 껴안기도 하는 것은 당연한 진도로 생각하지요. 부모님께서 생각하시는 이성교제의 범위와 속도 는 당연히 다르지요. 내 딸 어깨에 손을 걸치고 걸어가는 남자애를 보면 어느 부 모라도 그 자리에서 당장 그 남자애를 지구 밖으로 추방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거예요. 아버지께서 그 자리에서 차를 멈추지 않은 것만도 대단한 인내를 보여주신 거예요. 엄마는 선생님의 말 때문에 불안과 걱정이 마음 한 켠에 웅크리고 있는 데 어깨동무를 하고 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순간 눈앞이 캄캄했을 거예요. 그래서 “너 어디까지 갔어?”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이 문제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 다른 애들에 비해 우린 건전하다는 말로 부모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다른 아이들이 어떤 짓을 하든 부모는 내 딸이 어떤 상태인가가 더 중요하거든요.
부모님은 남자와 여자의 성충동에 대해서 말하고 싶으실 거예요. 어깨동무를 허락하는 것이 남학생에겐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도 말씀하실 거예요. 부모님의 말씀이 노파심에서 나온 말도 안 되는 소리 같겠지만 이성친구와의 신체적인 접촉 에선 처음부터 한계를 분명히 긋는 태도가 분명히 필요하답니다. 내가 순수하다고 해서 남학생도 순수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내가 괜찮다고 부모님까지 괜찮다고 믿게 하긴 어려울 거예요. 난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을 허락했을 뿐이지만 남자친구는 더 멀리까지도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게 차이점이에요.

문 : 엄마 앞에서 남자친구한테 그만 만나자고 톡을 보내고, 폰도 반납하고, 학원도 끊고, 학교에서 따로 남자친구를 안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폰이 없는 학교생활은 우주공간에 혼자 버려진 것 같아요. 왜 부모님은 남자친구를 사귀면서도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까요? 집을 나갈까요? 답답하고 무서워요. 제가 무슨 일을 할 지 저도 모르겠어요.

답 : 폰을 뺐고 애도 아닌데 강제로 톡을 보내게 하고 학원도 끊고 도저히 받아들 일 수 없는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고 생각되겠지요. 그러나 지금 부모님은 공부 도 학교도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을 거예요. 부모의 눈이 없는 곳에서 내 딸이 남 자애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걸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용납이 안 될 수 있어요. 가출을 생각하지 말고 부모님께 시간을 드리세요. 나 역시 부모님이 다시 나를 믿고 폰도 돌려주고 의심의 눈길을 거둘 수 있도록 다르게 행동하는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가출해 버리면 부모님이 후회할 것 같지만 그것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뿐이 에요. 솥에서 죽이 끓어 넘칠 때는 잠시 뚜껑을 열어두고 불을 약하게 줄인 후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남자친구에 대한 감정도 지켜보고, 부모님의 걱정 에서 비롯된 화가 가라앉을 시간도 필요하고,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도 주세요. 샛길로 빠지지 않고 늘 직선만으로 가는 사람은 없어요. 길을 벗어나 걷다가 잘못 왔구나 싶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돌아서는 사람은 잠깐 길을 잃었어도 다시 가던 길로 돌아올 수 있답니다. 당분간 아무 결정도 내리지 말고 묵묵히 내가 가야 할 길을 걷기 바랍니다.†

강금주 변호사
지난 30년간 <십대들의 쪽지>를 통해 십대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살아온 청소년 전문 상담자이자 발행인, 호주 변호사, 저서로는 <사춘기로 성장하는 아이 사춘기로 어긋나는 아이>, <사춘기 대화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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