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줘도 고마움을 모르는 자녀를 둔 부모님께

작성일2017-06-15

문 : 초등학교 4학년 외동딸을 둔 엄마입니다. 며칠 전에 새 학기를 준비한다고 동대문 대형문구점에 들렀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렇게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이번엔 웬일인지 시큰둥합니다. 뭘 고를 때도 귀찮아 죽겠으니 아무거나 사라는 표정입니다. 저는 그 나이 때 새 공책과 연필, 지우개, 자, 컴퍼스 같은 것을 살 때 참 많이 설레고 부모님이 고마웠는데요, 저 아이는 왜 그럴까요?
그러고 보면 최근에 아이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어요.

답 : 초등 저학년에서 고학년은 전환의 시점입니다. 10세 이전의 아동들은 ‘마술적 사고’의 단계라고 해서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경험을 할 때죠. 기본 정서는 “네가 원하기만 해. 그러면 모든 것을 다해줄게”라는 것이 바탕이고 부모는 모든 것을 다 채워주는 존재입니다. 아이로서는 가장 행복한 시절입니다. 흔히 이 시기의 대표적인 상징이 놀이동산으로 대변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행복한 가정을 묘사할 때 등장하는 장면 있죠? 회전목마 타면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 장면 말입니다.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하고 안개 필터를 깨워 촬영해서 마치 환상 속에 있는 듯한 시각효과를 냅니다.
그러나 10세 이후는 ‘추상적 사고’ 단계로써 사랑, 우정, 봉사, 믿음, 베풂 등과 같은 개념을 이해할 나이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는 시기요 부모공경을 실천할 때입니다. 이전에는 없던 책임과 의무가 부과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만약, ‘추상적 사고’ 단계의 아이를 여전히 ‘마술적 사고’의 아이로만 대한다면 그 아이는 ‘심리적 마스코트’로 성장합니다. 즉 신체적으로는 성장(growth)했지만 발달(development)은 성장하지 않은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자기밖에 모르고 부모는 그저 자기의 필요만 충족시켜주는 무수리 같은 존재로 여깁니다. 그런 사고 체계에서 고마움을 느낄리 만무합니다.

문 : 저희 가족은 상호존중이라는 민주적 원칙을 세우고 부부 상호간은 물론 아이에게도 높임말을 씁니다. 자녀계획을 세울 때도 여러 명 낳아 제대로 양육해주지 못하는 것보다 하나를 낳더라도 제대로 양육하는 게 중요하다고 합의 했었고요. 그래서 전 태교부터 육아일기를 썼고 육아서도 많이 읽었고 부모교육 강의도 많이 들었어요. 육아서의 방침대로 아이를 존중하려고 애썼고요. 부부싸움을 크게 하지도 않지만 혹 더러 언성 높일 일이 있어도 안방이나 차 안에서 말다툼을 했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뭐가 부족하나요?

답 : 그 정도로 아이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니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나 감사를 모르는 아이의 태도는 부모의 부족한 양육에서가 아니라 과잉이 불러온 역반응입니다. 민주적 양육방식을 택하셨다고 말씀하셨지만 냉정히 보면 그것은 민주적인 양육태도가 아니라 허용적 양육태도를 넘어선 과잉적 양육태도입니다. 민주적 부모라는 뜻은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준다는 뜻도 있지만 그보다 ‘되는 것은 확실하게 YES, 안 되는 것은 죽어도 NO’라고 해서 기준과 원칙이 분명한 것을 말합니다. 또 부모가 아이에게 높임말을 쓰는 것은 공식적인 상황뿐입니다. 마치 사극에서 왕이 된 아들을 대하거나 왕비가 된 딸에게 높임말을 쓰는 것 외의 경우는 없습니다.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춰주고 높임말을 쓰라고 하는 이론은 1970년대에 육아법의 성경이라고 불렸던 <육아전서>를 쓴 미국의 심리학자 스포크(Benjamin Spock)의 이론입니다. 그 때 당시 미국사회에서 베스트셀러 1위가 <성경>, 2위가 <육아전서>, 3위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고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으니 교양 있는 부모라면 육아전서는 필독서였지요. 문제는 그 육아법으로 양육 받은 세대가 부모가 되어 자식을 낳았는데 그 특징이 감사를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문 : 그럼, 성경 에베소서에서 “아이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건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고 한 말씀 아닌지요?

답 : 에베소서 6장 4절 말씀인데요, 노엽게 하지 말라는 내용 뒤에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라고 나옵니다. 훈계와 비난을 구분하라는 의미입니다. 훈계는 사건을, 비난은 사람을 싸잡아 공격하는 것이니 훈계는 행동을 고치지만 비난은 상처를 남기겠지요. 그 이전에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의무가 먼저 주어집니다. 십계명에도 분명히 명기되어 있죠. 그런데 왜 자녀를 사랑하라는 말은 없을까요? 부모는 기본적으로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10세 이상의 자녀는 ‘마술적 사고’를 넘어 ‘추상적 사고’로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면 다소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가르치십시오.†



이 병 준 목사
상담학 박사, 통&톡 하이터치 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남편&아내사용설명서>, <다 큰 자녀 싸가지 코칭>,<니들이 결혼을 알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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