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지키느라 일요일 쉬었더니 주님이 채워주신 객석

작성일2017-06-02

서울 대학로 열린극장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더 북’의 한 장면. 문화행동 아트리 제공

지난 29일 오후 7시30분. 서울 대학로의 한 골목에 들어서자 수십 명의 사람들이 공연장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관객들의 손엔 ‘성경이 된 사람들, 뮤지컬 더 북(The book)’이라고 적힌 팸플릿이 들려 있었다. 공연장 입구에선 극단 문화행동 아트리(Artree) 대표 김관영 목사가 관객들을 안내하며 일일이 인사했다.

“공연 없는 날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월요일 대학로는 공연 없는 날로 통한다. 주 6일 무대에 올리는 공연도 대다수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관객들을 만나고 월요일은 쉰다. 관객들이 몰리는 주말에 공연 횟수를 늘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뮤지컬 ‘더 북’은 다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공연하고 일요일은 쉰다. 매주 일요일 오후 6시 공연 대신 특별복음집회를 무대 위에 올린다. 김 목사는 “일요일 오후 공연을 마친 대학로의 문화예술인들에게 음주문화 대신 복음문화를 나누기 위해 준비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더 북은 아트리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지난 1월 2일부터 오는 12월 30일까지 대학로 열린극장 무대에서 선보이는 뮤지컬이다(국민일보 2016년 12월 23일자 33면 참조). 더 북은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되기 100여년 전인 15세기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번역된 성경을 지닌 것만으로도 목숨을 위협받던 ‘롤라드파(영국의 종교개혁자 위클리프의 가르침을 신봉하던 사람들)’가 당시 기득권 세력이었던 로마가톨릭교회에 맞서 진리를 전하려는 헌신을 담았다.

1년 동안 370회에 걸쳐 공연되는 작품을 관객 동원이 수월한 일요일 공연을 포기하고 진행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상대적으로 수요층이 한정된 종교색 짙은 작품으로선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북이 보여준 지난 5개월간의 객석 점유율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1월 105%, 2월 108%, 공연계 비수기인 3,4월에도 각각 93%와 90%를 기록하며 평균 객석점유율 99%를 기록했다. 김 목사는 “지금까지 2만5500여명이 관객석을 채웠다”며 “25년여 공연을 제작해오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했다. 관객들이 작성한 관람후기엔 ‘내 손에 성경 한 권이 들려지기까지 엄청난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이건 진짜다’ ‘배우들이 연기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삶을 토해내는 듯하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관객석이 채워지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가늠케 했다.

공연장을 찾는 비기독교인 관람객 수가 꾸준하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김 목사는 “최근 대한성서공회에서 기증해 준 성경책 500권을 공연 시작 전 비기독교인 관람객들에게 나눠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는데 5월 한 달만 50권이 전달됐다”며 웃었다.

이날 열린극장엔 보조석까지 관객이 들어차며 객석점유율 100%를 훌쩍 넘겼다. 공연은 언제나처럼 극단 단원과 관람객의 외침으로 시작됐다. “오직! 성경으로!”(musicalthebook.modoo.at).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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