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딱 한 걸음이었습니다

작성일2017-08-10

2006년 3월. 하나님의 강권적인 이끄심으로 십자가 교회는 시작되었습니다. 스무 평도 되지 않는 상가 건물 3층이었습니다. 서른 두 살이었고 전도사였습니다. 보증금 2천만 원이 없어서 대출을 받았는데, 부동산 계약을 하는 날에 대출이 되지 않아 말할 수 없는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개척의 시련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정말 없는 것 투성이었습니다. 성도도 없었고 냉난방기도 없고 의자도 없었습니다. 한 번은 어떤 여자 분이 주일 예배에 전도되어 나오셨는데 의자가 없이 방석에 앉으려니 너무 힘들다면서 다른 교회로 가셨습니다. 여름에는 녹물이 나오고 겨울에는 얼어붙어버린 수도관은 마치 제 마음 같았습니다. 같은 지역의 한 간판집 사장님을 전도하려고 비싸게 간판을 했지만, 그들은 교회를 이용해 먹고 대충 간판을 달아 놓아서 태풍이 올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땅으로 떨어졌고 결국 우리 교회는 간판도 없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2층의 PC방 앞에는 온갖 구토물과 쓰레기가 쌓였고 늦은 밤 본당에서 홀로 기도하고 있으면 지독한 담배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아침이면 등굣길에 학생들이 올라와 간식 먹고 남은 쓰레기와 피운 담배를 버리고 갔고 저녁이면 도움을 달라고 걸인들만 찾아왔습니다.


예배 시간이 다 되었는데 한 사람도 오지 않아서 홀로 드렸던 예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우리 가족이 드린 헌금 외에는 단 한 푼의 헌금도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았습니다. 매일 같이 오전 시간을 기도하고 말씀 읽고 나가서 전도했지만 사람들은 이 누추한 교회당으로 올라오려하지 않았고 설사 힘들게 왔다가도 교회가 미자립이라고, 사람이 없다고,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그리고 삶이 힘든데 설교가 강하다고 돌아섰습니다. 진리보다는 위로가 더 필요한 사람들이었고 변화보다는 문제 해결이 시급한 그들에게 제가 전한 복음은 너무 멀어 보였습니다. 그나마 귀한 은혜를 받고 복음을 받아들인 청년들은 이성교제로 깨져서 흩어졌고 일부 귀한 신앙으로 성장한 성도는 신학생이 되어 눈물로 헤어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앉을 곳이 없어서 이사를 갑니다. 교회에 성도들이 많이 모인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우리는 그 때마다 기회를 얻을 수 없었고 헌신하는 성도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싸우고 따지고 이간질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섬기고 나누고 밀알이 되어준 성도들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그 과정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결정은 제가 해야 했습니다. 모두들 순간 순간 일부를 걸고 있지만 저는 매 순간 전부를 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계획해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실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갈수 없던 건물이 열렸고 받을 수 없던 돈이 대출되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제 산본동을 떠납니다. 오늘 마지막 주일 예배 주보를 만들었습니다. 주보에 칼럼으로 무엇을 쓸까 고민을 하다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주보에 썼습니다. 그들 모두 딱 한 줄의 감사로 마감하기에는 저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 성도들의 이름을 기도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자판으로 누르다 보니, 어느새 컴퓨터 화면이 뜨겁게 흐려집니다. 몇 번이나 눈물을 닦고 다시 글을 이어야 했습니다. 고맙다는 말로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추운 겨울 붕어빵을 판 돈으로 헌금한 사람도 있었고 외롭고 힘들 때 전화해 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두 시간이 넘는 길을 찾아와 예배하는 사람도 있었고 추운 겨울에 보일러도 틀지 않고 기도해 주던 용사들도 있었습니다. 누구도 보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섬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힘들었던 안식월에 저를 기다려준 사람들이었고 십년간 월급이 없는 부족한 종을 위해 작은 봉투에 편지와 물질을 담아 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저의 마음을 찢어 놓은 사람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들이요, 주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소중한 양들입니다.

지난 주 몇몇 선배님들을 만나 인사와 선물을 나누었습니다. 이제 지방회까지 달라지니, 어쩌면 다시 보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선배님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왔느냐”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랬습니다. “딱, 한 걸음씩 걸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말입니다. 솔직히 두 걸음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딱 한 걸음만 더 걷자고 생각했습니다. 주일 설교를 마치면 다음 주 주일 설교를 준비했고,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도왔습니다. 기도해야 할 사람이 있으면 내가족처럼 기도를 했고 다음을 위해 무엇을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두 걸음을 걸을 능력도 힘도 안목도 없었습니다. 그냥 딱 한 걸음이었습니다. 그렇게 걸었더니 열두 해가 지났습니다.

이제 우리 십자가 교회는 크게 한 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딱 한 걸음인데 이 걸음이 이번에는 큽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함께 한 걸음을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도 딱 한 걸음입니다.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 앞으로 딱 한걸음 더 나갑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고 전도합니다. 어려운 성도를 만나고 밥을 사주고 중보해줍니다. 그들의 손을 잡고 이끌어야 할 사람은 이끌고 밀어야 할 사람은 밀어줍니다. 책을 빌려준 청년, 코드를 틀리는 반주자, 인사하지 못하는 성도, 잠자는 학생, 죄로 갈등하는 리더, 강한 성품의 성도들 속에 있는 바로 나 자신을 보며 한 걸음만 더 기다려줍니다. 그리고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기대하며 한 걸음만 더 내디딥니다.

20년이 넘는 도망자의 신분에서 야곱은 얍복강으로 매일 한 걸음씩 걸었을 것입니다. 400년이 넘는 노예 생활에서 가나안 땅으로 모세는 그리고 여호수아는 한 걸음씩 걸었을 것입니다. 아시아와 유럽의 거친 땅을 복음화하기 위해 바울은 한 걸음씩 걸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기 위해, 그리고 다시 오시기 위해 지금도 한 걸음씩 걸으십니다. 저 역시 주님을 향해 오늘 한 걸음 걸어갑니다. 저의 마지막 그 날을 향해 오직 한 걸음을 말입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 저에게 딱 한 걸음만 더 걸어갈 힘을 주소서!”†

P.S. 한국의 수많은 개척교회와 상가 미자립 교회에서 목회하시는 목회자분들과 크고 넓은 대형교회가 아니라 작은 교회를 찾아 섬기는 성도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우리의 무엇으로 낙망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무엇으로 소망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혹시라도 낙망과 좌절 속에서 우연이라도 이 글을 읽으신다면 이 부족한 종의 조잡한 글 조각이 한 알의 밀알의 되어서 딱 한 걸음만 더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되기만을 마음 다해 고대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힘내십시오!

강산 (목사)

십자가 교회 , <나는 진짜인가? >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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