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생명의 갈등을 던지고 싶습니다”

작성일2016-07-20

몇 주 전 후배가 갑작스럽게 부탁해서, 한 교회의 교사 세미나에 갔습니다. 주일 오후였고 40여명의 교사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강의 중간에 저는 “오늘 주일인데 주일설교 제목이 무엇이었나요?” 하고 물어봤습니다. 사실 목적은 오늘 주일설교를 통해서 각자의 삶에 적용해야 할 실제적인 제안과 도움을 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단 한 사람도 주일설교제목도 내용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저를 초대한 그 후배 목사는 자신이 준비하여 당일에 자신의 부서에서 한 설교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순간 마음이 날카로운 칼에 찔리듯 고통스럽고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소위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어도 그것이 삶에 도전도 자극도 갈등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씨앗이 뿌려졌지만 오늘도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습니다. 그 안타까운 성경 말씀의 비유가 자기 이야기인줄 모르고 있는 것이 지금도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영화 한편을 봐도 잔상이 남고 시를 하나 읽어도 아련한 기억이 있는데, 오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고 주님과 만나고 돌아가도 자신의 삶에 대한 갈등이 전혀 없다는 것은 너무나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갈등이 없으니 삶의 변화도 당연히 없습니다. 아마 목사 책임이 가장 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도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예배 때 와서 예배인지 영화 관람을 하러 온 것인지 모르는 태도로 종교활동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진실로 우리가 주님을 만난 증거는 “우리 삶에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철저히 악하고 음란한 이 시대 속에 사는 인간이 하나님을 보고 그 분을 만나는 순간에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세례 요한이 메시지를 전했을 때, 사람들이 와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고 가르침을 던질 때마다 사람들에겐 그분을 믿든지 아니면 죽여야 하는 철저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갈등이 없습니다. 병원에만 다녀와도 자기 몸의 건강에 대한 갈등이 일어나는데 영혼의 병원인 교회는 아무리 다녀와도 갈등이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눈물 나도록 마음 아픕니다.

일부 목사들은 성도들이 교회 떠날까봐 진리를 진리답게 전하지 못합니다. 일부 성도들도 교회가 많으니 편한 분위기에서 부드러운 설교만 들으려고 합니다. 자신의 영혼에 대한 갈등이 없으니 교회에 대한 갈등도 없습니다. 와서 먹고 마시고 얻어 가려고만 하지, 나누고 섬기고 베풀어서 이 교회가 소금이 되고 빛이 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의사가 웃으면서 말하겠습니까? 철저히 악한 습관을 고치지 않는 사람이 “내가 성도다”라고 거스름을 떨며 앉아 있는데 부드럽고 웃긴 이야기를 설교라고 해야겠습니까? 저는 십자가교회가 큰 교회가 되지 못하고 성도들이 다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갈등을 던져야겠습니다. “왜 목사님이 그렇게 크게 말씀하셨는가? 왜 목사님이 그렇게 우셨는가? 왜 목사님이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셨는가?” 그들에게 갈등이 남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학교 1학년 때, 교회에서 어떤 평신도가 옆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데 그 영어 성경이 너덜너덜해져 있는 것을 보고 심한 도전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고 지금까지 수십 권의 성경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습니다. 신학교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국에 온 외국 선교사들의 이야기 중에서, 변화 없는 성도들로 인해 가슴 아파하던 한 선교사가 설교를 마치고 자기 머리에 총을 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방법은 분명히 잘못되었겠지만 저는 할 수만 있다면 매일 저 자신과 성도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을 쏘고 싶습니다. 로마서 7장 말미에서 일어난 바울의 탄식으로 로마서 8장을 만나게 할, 즉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꿀 갈등을 던지고 싶습니다.

저는 갈등 없는 이 세상에 참된 갈등을 던지고 싶습니다! 저는 갈등을 전환시키고 싶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떤 쾌락을 누릴까, 어떤 욕망을 이룰까라는 사망의 갈등이 아니라 “딱 한 번 사는 인생, 어찌하면 주를 위해 죽을 수 있을까?”라는 그 생명의 갈등이 일어나게 하고 싶습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의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눅 12:49~51).†

강산 (목사)

십자가 교회 , <나는 진짜인가? >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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