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을 만나다

작성일2016-06-30

운전을 기가 막히게 하던 친구가 있었다. 장롱면허로 20여 년을 지낸 나 같은 사람이 그런 친구의 자동차를 타면 별천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 친구의 특징은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동이 걸리고 기어가 5단까지 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친구는 늘 말했다. “브레이크를 밟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야!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고 느낄 때, 실제로 해야 할 일은 액셀을 밟아야 하지!” 그 친구는 그 말을 하며, 바로 앞에서 급정지하는 자동차를 순식간에 추월했다. 정말 나 같으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상황이었는데, 그 친구는 더 속도를 내어 멋지게 나아갔다. 내가 그 친구의 자동차를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 친구의 자동차는 서거나 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출발과 도착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로 들렸다.
“산아… 나 사람을 죽였어.”
늘 액셀만 밟던 그 친구는 그 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멈추지 않고 달렸다고 한다. 횡단보도에서 느리게 걸어오는 한 여자를 보고 충분히 더 빠른 속도로 지나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여자의 손을 벗어나 달려 나가는 아이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아니, 보았지만 차의 속도를 늦추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고 했다. 아이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내 친구의 자동차는 잔인하게 아이와 부딪쳤고 뒤늦게 밟은 브레이크처럼 그 아이의 심장도 멈추어 버렸다. 내 친구는 그 날 이후, 지금까지 운전을 하지 않는다. 멈추지 않았던 삶은 영원히 멈추어 버렸다.
쉼도 순종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삶엔 ‘쉼’이 사라져 버렸다. ‘쉬고 있다’는 말은 ‘무능하다’는 말로 들리고, ‘바쁘다’는 말은 ‘열심히 살고 있으며 성공을 향해 가고 있다’는 의미로 치환 된지 오래 되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달리는 연습과 속도를 내는 연습만 너무 많이 해서인지 쉬는 법 자체를 잃어버렸다. 담배를 끊는 사람과 술을 끊는 사람에게만 금단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쉬는 법을 잊어버린 현대인들은 인터넷, 텔레비전, SNS가 없는 시간 속에서 더 불안해하고 쉼 속에서 더 고통스러워한다. 쉼은 오래 전에 우리의 삶에서 사라져 버렸다. 내 친구처럼 출발과 도착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조차 “쉼이 없다”는 것이다. 쉼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끊임없이 분주하고 계속적으로 일만 한다. 아무리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의 주일로 바뀌어서 그 쉼의 개념이 발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람은 한계를 가진 존재이며, 쉼은 그 한계를 가진 존재가 선택적으로 가져야 할 옵션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누려야 할 과정이라는 것을 놓쳐버리고 있다.

멈추지 않고 잠시 기다리지 못한다.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주님과 사람들의 한 걸음 뒤에서 따라가지 못한다. 심지어 주님이 서서 쉬고 계실 때조차 우리는 쉴 수 없다. 우리는 게으름과 나태함을 쉼과 혼돈하기 시작했고 조급함을 열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결국 쉼이 없음은 여유가 없음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다른 시간표를 만들고 말았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표에 하나님을 맞추고 있다. 시간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우리의 시간 속에 가두어 놓기 시작한 것이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나에게 ‘쉼’을 도전하시고 부탁하셨다. 십자가 교회를 개척하고 9년 2개월동안 나는 담임목사로 쉼 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조급한 매일의 일정 속에 갇혀서 내 몸이 조금씩 상해가는 것을 느꼈다. 비문증과 허리의 통증 그리고 손목의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커져만 갔다. 신기하게도 하나님은 의사선생님
과 아내, 친구, 그리고 이웃을 통해 말씀하셨다. 쉬어가라고 말이다. 멈추라고 말이다. 그만두라는 것이 아니라 쉼을 만나라고 말이다.

솔직히 나에겐 너무나 어려운 결단이었다. 내가 하루라도 쉬면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이 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교회나 가정의 재정적 운영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하는 것”만이 순종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 역시 순종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한 달을 쉬었다.

쉼은 갑작스런 사고 후에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하는 수동적인 옵션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서 누려야 할 삶의 필수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나는 지난 한 달을 쉬었다. 가족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삶을 나누고 라면을 끓여먹고 늦둥이 다연이를 안아주며 너무나 빠르게 달려가다가 보지 못했던 들풀 같은 내 아이들과 아내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천천히 걸었다. 늘 강단에서 메시지를 전했던 20여 년의 시간을 멈추고 훌륭한 목회자들의 메시지를 아이들과 함께 성도석에서 들으며 우리 성도들의 입장이 되어 보았다.

음악을 만드는 악보에는 크고 작은 음표만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쉼표 역시 들어 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더 많은 일을 하실지도 모른다. 더 이상 할 수 없기에 그만두어야 할 때가 오기 전에, 나는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시 쉬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게 되었다. 내가 쉬면 아무 도 안 될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정말 내가 쉬는 동안 더 많을 일을 하셨다. 이 글을 읽고 지금 주님께서 주시는 감동이 있다면, 쉼을 당하지 말고 쉼을 만나라!†

강산 (목사)

십자가 교회 , <나는 진짜인가? >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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