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신자의 명예

작성일2019-07-03

지난달 30일 김영길 전 한동대 총장이 별세했다. 평생 과학자이자 교육자로, 무엇보다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다.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 그가 남긴 말을 최근 유가족에게 들었다. 김 전 총장은 지난달 20일 병문안을 왔던 이재훈 온누리교회 목사 앞에서 큰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목사님, 저는 죽어도 삽니다. 죽음은 저에게 기쁨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기쁨입니다.” 서서히 의식을 잃으면서도 그는 또렷하게 부활 신앙을 고백했다.

과학도 시절 기독교에 입문한 이후 그는 평생 하나님만 의지했다. 3년 전 김 전 총장에게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코너에 지나온 삶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그는 전화 너머로 이런 말을 했다. “과학자로 미국에서 살 때까지는 특별한 어려움이 없었어요. 그런데 한동대를 시작하고 고난이 찾아왔지요. 내 얘기보다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말하고 싶어요.” 그때가 췌장암 진단을 받은 직후였다. 청천벽력 같은 선고였을 텐데도 굴하지 않고 원고를 일일이 챙기며 퇴고까지 직접 했고, 글에서는 최대한 하나님을 드러내려 애썼다.

그는 실제로 한동대 개교를 준비하면서부터 질고를 많이 겪었다. 총장 부임을 앞두고 있을 때 셋째 형님인 고 김호기 포항공대 초대총장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형에 대한 상실감과 슬픔은 너무 컸다. 그래도 개교를 준비해야 했다. 6개월 뒤엔 형님 비보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마저 여의어야 했다. 이듬해 개교 후엔 부친과도 사별했다.

95년 3월 7일 개교식 사진엔 당시 절절함이 묻어난다. 김 전 총장이 단상에 올라 대학의 비전을 선포하는 모습 뒤엔 검은 도포 차림의 부친이 말없이 앉아 아들을 쳐다보고 있다. 김 전 총장이나 부친 모두 웃음기가 없었다. 그 후에도 고소·고발까지 당하며 옥고를 치러야 했다.

1일 찾아간 그의 빈소 앞 영정 사진은 24년 전 사진 속 표정과는 확연히 달랐다. 해맑은 소년의 웃음이 가득했다. 저런 웃음을 소유한 어른을 본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생경하기까지 했다. 담당 기자로서 그가 당한 고난의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서울대를 졸업해 미항공우주국 연구원,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를 역임하고 대학 총장까지 지낸 분에게 웬 고난의 연속이냐고 질문했다.

그의 대답은 간명했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고난이 있으며 특히 신자들은 ‘자기 온도에 맞는 불시험을 겪거나 통과한다’고 했다. 고난은 항상 앞에 있는 것이니 너무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자는 대답이었다. 이런 담담함 때문일까, 췌장암 진단을 받은 후 그의 치료과정은 성공적이었다. 건강도 유지했다. 최근까지도 한동대-UNAI 반기문글로벌교육원 사무실에 출근하며 학생들을 만났다. 그의 미소와 웃음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높은뜻연합선교회 대표를 지낸 김동호 목사도 고난 중에 있다. 그는 폐암 2기로 지난 5월 초 폐의 20%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현재 항암 치료 중이다. 지난달 22일엔 암 환자들을 초청해 치유 집회를 열었다. 김 목사는 집회에서 “왜 하필 내가 암에 걸렸을까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왜 나는 (암에 걸리면) 안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면서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서 ‘가오(자존심)’가 죽을까 더 무서웠다. 생명은 하나님께 치료는 의사에게 맡기고 우리는 우리 싸움을 해나가자”고 환자들과 가족들을 격려했다.

이재철 전 100주년기념교회 목사 역시 2013년 자신에게 내려진 전립선암 선고에 이렇게 응답했다. “인생 종반부를 맞는 제게 하나님께서 적절한 벗을 제 몸에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제 평생 암을 동반자 삼아 살아가야 하는 저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제 인생을 매듭지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신자의 명예는 바로 이런 고백들이 증언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신앙은 신이 인간에 찾아와 은혜를 줬고 이 은혜로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구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지상에서의 삶은 신이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는 여정이다. 신자의 고난은 그래서 두렵거나 외롭지 않은가보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86557&code=23111411&sid1=mco

신상목 (국민일보 종교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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