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

작성일2018-07-17

 아마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 날은 마지막으로 학교에 가는 날이었습니다. 내일 이사를 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물건들을 모두 정리하여 책가방에 담고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교실에서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학생건강기록부를 받기 위해 교무실로 갔습니다. 여러 번의 전학과 함께 저를 따라 다닌 저의 학생건강기록부는 제 마음처럼 이미 너덜너덜 했습니다. 종이로 된 학생건강기록부 파일을 펼쳐서 핀을 뽑은 후에 전체를 묶어 놓았던 실을 풀어서 그 중에 저의 것, 한 장을 꺼내는 것이 귀찮았던 많은 담임 선생님들이 그냥 쭉쭉 뜯어 당기는 바람에 저의 학생건강기록부는 조금씩 찢어졌고 헤어졌습니다. 전학을 간, 다음 학교에서 테이프를 붙여보았지만 또 다시 전학을 갈 때, 같은 방식으로 뽑히면서 상처가 더 크게 났고 그 위에 붙인 테이프까지 낡고 망가지면서 더 험한 모양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그 학생건강기록부를 담임 선생님은 몇 번 손으로 펴 준 다음, 저에게 주었습니다. 잘 가라는 인사와 함께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산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니?”
 저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해야 했지만, 곧 담담하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평범하게 사는 거요.”
 저의 대답에 감수성이 예민했던 담임 선생님의 눈가가 잠시 붉어졌다가 사라졌습니다. 손에 넘겨진 상처 많은 학생건강기록부가 저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물론 ‘무엇이 평범한 삶인가’에 대해서는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았지만, 그냥 저의 주변에 사는 친구들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평범하게 아침에는 출근하고 주말에 쉬는 아버지와 집에 오면 간 식을 준비해 주는 살림하는 어머니 밑에서 적당한 수입을 가지고 남들이 누리는 만큼 그 정도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한 동네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는 그런 친한 친구들과 오랫동안 함께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저의 삶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살아온 나이보다 제가 이사한 숫자가 언제나 더 많았습니다. 전학을 하도 많이 다녀서 친구라고 할만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목회를 선택한 것은 우리 부모님이셨는데 저도 목회자처럼 살 것을 요구받았습니다. 우리 집은 교회였고, 우리 삶은 잠시도 쉴 시간이 없는 끝없는 사역이었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하는 것을 거의 다 할 수 없었고, 남들이 하는 것 이상을 하면서도 그 이하의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시골 목회를 하고 이가 빠지도록 교회를 개척하고 건축했지만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수없이 다투시다가 결국 헤어졌고,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제 동생은 신앙을 버렸습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왕따를 당하며 학교를 다녀야 했고, 위장병을 한 평생 앓았고 각혈을 하다가 기절한 적도 있습니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 재수를 해야 했으며, 지독한 군 생활을 하면서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제가 원하지 않는 신학교를, 그것도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야간대학에 들어가야 했고, 남들 다 가는 신혼여행조차 가지 못하고 출발한 지독히도 가난한 결혼생활을 눈물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기도조차 하지 않았던 외롭고 아픈 개척교회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평범하지 않은 삶’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마음이 아픈 것은 저의 평범하지 않은 삶으로 인해 우리 가족도, 저의 어린 시절처럼 평범하지 않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어서 모아 놓아, 각기 모양도 크기도 다른 3개의 장롱 문은 오래 전에 고장이 나서 한쪽은 열지도 못합니다.

평범에서 고귀함으로


 결혼하고 이를 하나 뽑았지만 해 넣지를 못해서 누워버린 치아와 17년 간 화장할 기회가 없었던 사모에겐 화장대도 아직 없습니다. 저 역시 작은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1년 365일 중 하루도 평범하게 보낼 수가 없습니다. 다양한 성도들이 다양하게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따금 달력에 빨간 날이 있는 것이 저는 더 힘듭니다. 왜냐하면 남들이 다 쉬어도 저는 쉴 수 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금요철야를 마치고 남들이 다 자는 새벽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평범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평범하게 살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보니 이제는 그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기대했던 평범한 삶이란, 제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제 육신의 편한 대로,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대로, 십자가의 길과 세상의 길에 양다리를 걸 고 사는 그런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원하는 삶보다 더 귀한 삶을 원하셨습니다. 제가 기대하는 삶보다 더 위대한 삶을 기대하셨습니다. 제가 말하는 평범함을 넘어선 고귀한 삶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건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강함을 주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고, 실력이 없었기 때문에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부유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었고, 지독히도 아팠기 때문에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인생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참 힘든 삶이었지만 의미가 있는 삶이었고 고통스러웠지만 나눌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눈물 이 있었지만 진정으로 웃을 수 있게 했습니다. 위기가 있었지만 위기 때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삶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연속이었지만 곧 이어 만날 부활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진행 중인, 평범함을 넘어선 삶이고 앞으로도 한없이 기대하게 하는 삶이 된 것입니다.

 최근에 저의 삶을 잘 아는 한 목사님을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려고 하는 순간, 갑작스럽게 그 목사님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강 목사님은 어떻게 살고 싶으신가요?”라고 말입니다. 저는 오래 전 그 날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는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가 살기 싫은 삶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평범하게 사는 것입니다.”†

강산 (목사)

십자가 교회 , <나는 진짜인가? >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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