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선물

작성일2018-04-22

길을 걷던 할머니 눈에 번쩍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할머니가 다가간 곳엔 눈을 크게 뜬 곰 인형이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생일 선물로 곰 인형을 갖고 싶어 했던 영희 얼굴이 떠올랐다.
곰 인형은 사람들 발길에 차인 듯 하얀 얼굴과 몸뚱이에 검은 발자국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할머니는 허리를 굽혀 때 묻은 곰 인형을 주웠다



집 짓는 공사장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영희는 곰 인형을 사달라고 졸랐다.
“아빠, 곰 인형 사줘. 내 생일 얼마 남지 않았잖아.”
“영희야, 생일 선물은 나중에 사줄게. 너 병원에 있는 동안 병원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아빠가 지금은 돈이 없어.”
아빠의 말에 영희는 더 이상 곰 인형을 사 달라고 조를 수 없었다. 자신의 병원비를 구하기 위해 아빠가 애를 태우며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는 것을 영희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희가 병원에서 나온 뒤로 아빠는 예전보다 더 많이 한숨을 내쉬었다. 할머니 얼굴에도 깊은 시름이 가득했다.
하루는 아빠가 아침밥을 먹다 말고 영희에게 말했다

“영희야, 아빠가 일 끝내고 일찍 들어올게.”
“아빠, 오늘 꼭 일 나가야 해? 내 생일이니까 할머니하고 아빠하고 소풍 가고 싶은데….”
영희는 입을 삐죽삐죽 내밀며 볼멘소리로 말했다.

“아빠가 일을 안 나가면 다른 아저씨들도 집을 지을 수 없거든.”
“다른 아저씨들도 쉬면 되잖아, 뭐.”
영희는 시무룩한 얼굴로 어깃장을 놓았다. 영희는 멀뚱하게 아빠 얼굴을 바라보다 다시 물었다.

“아빠, 우리 집은 언제 지을 거야? 혜정이가 만날 놀려. 우리가 가난해서 자기네 집에 세 들어 사는 거라고 말이야. 혜정이가 그런 말 할 때마다 너무 창피해.”
영희의 말에 아빠 얼굴은 금세 우울해졌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 때 할머니가 영희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우리 영희가 조금만 더 크면 우리 집도 지을 거야. 마당에 나무도 심고 꽃도심고 할 거야. 영희야, 알았지?”
할머니의 물음에 영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영희에게 아침밥을 차려주고 할머니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할머니는 느릿느릿 한참을 걸어 산동네 아랫길로 내려갔다. 할머니는 관할 구청으로 일자리를 알아보러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노인들에게 도로에 있는 화단 작업을 시키고 구청에서 돈을 준다는 말을 할머니는 들은 적이 있었다.
영희 할머니는 구청에서 멀지 않은 버스 정거장에서 내렸다. 할머니는 구청으로 가기 위해 양옥집이 늘어선 주택가 골목길을 느릿느릿 걸었다. 그런데 길을 걷던 할머니 눈에 번쩍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할머니가 다가간 곳엔 눈을 크게 뜬 곰 인형이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생일 선물로 곰 인형을 갖고 싶어 했던 영희 얼굴이 떠올랐다. 곰 인형은 사람들 발길에 차인 듯 하얀 얼굴과 몸뚱이에 검은 발자국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할머니는 허리를 굽혀 때 묻은 곰 인형을 주웠다.
구청에서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흉하게 때가 묻은 곰 인형을 세심히 빨았다. 길가에 버려진 곰 인형을 영희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영희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 그 일을 끝내야 했기에 할머니 마음은 조급했다. 길에 버려진 곰 인형을 주워 온 줄 알면 영희가 실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물에 젖은 곰 인형을 영희가 보지 못하도록 뒤란 지붕 위 양지 바른 곳에 올려놓았다. 물을 잔뜩 뒤집어 쓴 곰 인형은 다음 날 한나절이 지나서야 물기가 다 말랐다. 흉하게 묻어 있던 때는 없어졌지만 곰 인형 몸뚱이에 우중충한 빛깔이 남아 있었다. 할머니는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와, 곰 인형이다!”
잠결에 들려오는 영희 목소리에 할머니는 잠에서 깨어났다. 학교에서 돌아온 영희가 깜짝 놀라며 방 한 쪽에 앉아 있는 곰 인형에게로 다가갔다. 영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할머니는 곰 인형을 방 한 쪽에 그냥 앉혀 놓았던 것이다.

“할머니, 곰 인형 너무 예뻐!”
신이 난 영희는 곰 인형을 가슴에 안아 보기도 하고 입을 맞춰보기도 했다.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할머니도 환하게 웃었다.

“할머니, 정말 고마워.”
“….”
고맙다는 영희의 말에 할머니 마음은 돌덩이를 매단 듯 금세 무거워졌다. 할머니는 마음이 아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할머니 눈에 슬며시 눈물이 고이더니 얼굴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영희는 할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영희는 야윈 뺨 위로 흘러내리는 할머니 눈물을 닦아주었다. 눈물을 글썽이던 할머니는 겸연쩍게 웃으며 영희의 얼굴을 어루만져주었다. 할머니가 왜 눈물을 흘리는지 영희는 알고 있었다. 바로 전 날, 뒤란 지붕 위에 벌렁 누워서 젖은 몸을 말리고 있던 곰 인형을 영희는 보았던 것이다.†

이철환 (소설가)

작품으로는 430만 명의 독자들이 읽은 <연탄길 1,2,3>과 <행복한 고물상>과 <위로>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등 총 23권이 있다. 작가의 작품 중 총 10편의 글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뮤지컬 연탄길 대본은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2000년부터 책 수익금으로 운영해 온 ‘연탄길 나눔터 기금’을 통해, 낮고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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