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의 교만

작성일2017-11-21

“나비들이 꽃밭에 내려앉을 때 항상 날개를 접고 내려앉는 건 항상 날개를 펴고 앉는 나방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사마귀는 말했다.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게‘권력’이라고 했던 사마귀의 말이 자꾸 나비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쩌면…… 나방은 단 한 번도 나비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 지도 모른다고 나비는 생각했다.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나비는 숲속을 지나다가 무시무시한 사마귀를 만났다. 나비는 나뭇잎 뒤로 얼른 몸을 숨겼다. 바로 그때 사마귀의 늘쩡늘쩡한 목소리가 나비의 귓가로 들려왔다.
“숨어도 보이거든. 근데 걱정 마라. 나는 지금 배부르니까……. 내일 먹기 위해 너를 잡진 않을 거야.”

나비가 두려워 떨고 있을 때 소름 끼칠 정도로 위엄 있는 사마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너도 알겠지만 나는 곤충의 왕이야. 나에겐 강인한 앞다리가 있으니까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어. 나의 앞다리가 곧 나의 권력이거든. 너도 알겠지만 세상엔 오직 이기는 자와 지는 자만 있을 뿐이야. 내 말 듣고 있니?”

나비는 몸을 숨긴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또다시 사마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내게 권력을 만들어준 건 도끼처럼 생긴 내 앞다리가 아냐. 뒤꽁무니에서만 나를 비난하는 너희들의 비겁함이 내게 권력을 만들어준 거라고. 너희들에게 이익이 없다면 너희들은 내게 권력을 만들어주지 않았어. 권력 없는 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만들어주고 권력의 지배를 받는 거니까……. 정말로 한심한 것들이지. 권력을 비판하며 진실을 들먹이는 자들도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진실과 거리가 멀어. 진실 같은 건 없어. 누구에게든 자신의 기준이 진실일 뿐이니까…….”

사방은 고요했다. 사마귀는 하늘을 향해 도끼처럼 생긴 앞다리를 비벼대더니 마른 침을 삼키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나비 너희들이 꽃잎에 내려앉을 때도 항상 날개를 접고 내려앉는 건 너희들이 나방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잖아. 나방들은 앉을 때 언제나 날개를 펴고 앉으니까…….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권력이야. 너희들도 나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거지……. 그러니까 나를 원망하지 말라고.”

나비는 수치스러웠지만 나뭇잎 뒤에 잠자코 숨어 있었다. 잠시 후 사마귀가 다른 숲으로 날아간 뒤에 나비는 나뭇잎 밖으로 나왔다. 나비의 수치스러운 마음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나비들이 꽃밭에 내려앉을 때 항상 날개를 접고 내려앉는 건 항상 날개를 펴고 앉는 나방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사마귀는 말했다.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게 ‘권력’이라고 했던 사마귀의 말이 자꾸만 나비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쩌면…… 나방은 단 한 번도 나비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 지도 모른다고 나비는 생각했다.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어느 날 숲길에서 나비는 사마귀를 다시 만났다. 나비는 무서웠지만 예전처럼몸을 숨기지 않았다. 사마귀는 나비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빨리 도망쳐! 이번엔 너를 잡아먹을지도 모르니까. 나를 믿지 말라고. 배고프면 언제든 너를 잡아먹을 수 있거든. 권력을 가진 자들은 남을 속이기도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속일 수 있으니까.”

나비가 겁먹은 얼굴로 몸을 돌렸을 때 사마귀는 공중을 향해 푸드덕 날아올랐다.
잠시 후 사마귀가 허공에 매달린 채 파닥거렸다. 스스로를 왕이라고 말했던 사마귀가 거미줄에 걸린 채 바동거리고 있었다. 사마귀는 거미줄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쳤다. 도끼 같은 앞다리로 거미줄을 힘차게 내리쳤지만 거미줄은 끊어지지 않았고 다리에 감길 뿐이었다. 사투를 벌이던 사마귀는 잠시 뒤 힘이 빠진 듯 움직이지 않았다.

사마귀를 조심스럽게 살피던 거미가 한 걸음 한 걸음 사마귀를 향해 다가왔다. 거미가 더 가까이 다가왔을 때였다. 사마귀는 순식간에 몸을 비틀어 거미를 덮쳤다. 사마귀의 속임수에 거미가 당한 것이었다. 거미는 사마귀의 커다란 앞발에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다. 사마귀는 거미를 움켜쥐고 게걸스럽게 뜯어먹었다.

사마귀는 거미를 먹어치웠지만 거미줄을 빠져나올 수는 없었다. 사마귀는 거미를 이길 수 있었지만 거미줄을 이길 수는 없었다. 배고픈 사마귀는 거미줄을 향해 먹이라도 날아와 주길 바랐지만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았다. 곤충의 왕 사마귀는 거미줄에 매달린 채 죽어갔다. 죽어가는 사마귀 눈동자 속으로 별빛이 지나갔다. 나비는 그 섬뜩한 광경을 지켜보며 사마귀가 했던 말을 생각했다. 세상엔 오직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있을 뿐이라고 사마귀는 말했었다.†

이철환 (소설가)

작품으로는 430만 명의 독자들이 읽은 <연탄길 1,2,3>과 <행복한 고물상>과 <위로>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등 총 23권이 있다. 작가의 작품 중 총 10편의 글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뮤지컬 연탄길 대본은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2000년부터 책 수익금으로 운영해 온 ‘연탄길 나눔터 기금’을 통해, 낮고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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