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위로, 진짜 위로

작성일2017-09-12

처음으로 전도사 생활을 시작한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 뒤로 식은땀이 흐릅니다. 저는 당시 신학교 1학년을 시작하는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었으나 담임목사님은 목회 경력이 저의 나이보다 많으신 육십대 후반의 할아버지셨습니다. 처음 목사님께 인사를 드릴 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목사님은 차분하지만 엄한목소리로 “최선은 누구나 다 한다. 좋은 결과를 내야 하는거야”라고 하셨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담임목사님께서는 저에게 밥한번 사주신 적이 없었고 칭찬 한번 해주신 적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순간에도 목사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한번은 여름 방학에 교회에서 갑자기 진행한 영어 캠프를 섬기느라 한 달 내내 새벽 4시에 나와서 저녁 11시에 집에 들어가야 했고, 어떤 날은 갑자기 밤늦게 전화를 하셔서 “내일 새벽기도회 인도해라”하셔서 한잠도 못 자고 새벽기도회를 준비하여 인도했지만, 목사님께서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없으셨습니다.

늘 엄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저의 잘못이나 부족함만 지적하셨습니다.

또한 주일학교를 담당해서 저는 학생들에게 설교하고 그 아이들만 잘 목양하면 되는 줄 알았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은 그 주일학교 학생들만이 아니라, 그 아이들의 부모님과 그 주일학교 학생들을 담당하고 있는 철없는 교사들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버릇없고 무례한 아이들은 설교 시간 내내 장난을 치고 수련회를 가서도 온갖 말썽을 피웠습니다. 그게 끝이아니었습니다. 무슨 회의만 하면 “전도사님이 어리셔서 잘 모르시나 본데요…”로 시작하는 선생님들, 잘할 때는 한마디의 격려도 없다가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전화를 해서 불평을 토로하는 부모님들을 겪으며 이제야 하는 이야기지만, 홀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솔직히 그 어리고 힘든 첫 전도사 시절에 저는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의 칭찬을, 교사들의 응원을, 그리고 부모님들의 격려를 저는 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밤 홀로 기도하는 중에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산아, 그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를 받으면 네가 좀 더 훌륭한 목회자가 될 수 있겠느냐?”라고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그런 인간적인 위로와 격려가 잠시 감정적인 도움은 줄 수 있지만 결국 나의 존재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진정으로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위로받고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의 따뜻한 말과 사랑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만 의지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늘 수동적이고 인간적이며 약한 신앙인으로 전락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위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가짜 약이라는 말입니다. 약처럼 생겼지만 먹으면 전혀 효력이 없는 가짜 약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짜 위로’가 있습니다. 그 순간은 괜찮은 것 같고 그 순간은 회복이 되는 것 같지만 그것은 각 사람의 중심을 변화시킬 수 없고 다시 이전의 무가치한 삶을 반복하도록 격려하는 무가치한 위로입니다. 가짜 위로는 언 발에 오줌을 누는 것과 같고, 목마른 사람에게 탄산 음료수와 같습니다. 진정한 건강과는 상관없는 정크 푸드와 같고 생명과는 상관없는 장식과 같습니다. 그 순간은 짜릿하고 시원하여 기분이 좋지만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며, 자꾸만 자꾸만 더 많은 가짜 위로를 갈망하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가짜 위로에는 조금씩 조금씩 거짓이 담기게 되며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거나 직시하지 못하게 함으로 결국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하시려는 의도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진짜 위로가 있습니다. 말씀을 읽다가 깊이 마음에 찔려 회개할 때, 그 눈물 속에서 그 변화 속에서 하나님의 진짜 위로가 있습니다. 깊은 기도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이 있습니다. 복음을 들고 나가서 전하는 과정에서 수치를 당하고 모멸을 당하며 주님을 기억하게 됩니다. 하고 싶은 일만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들 속에서 진짜 위로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피하고 나서 ‘괜찮아, 나도 그랬어’라는 헛된 동질화가 아니라 십자가를 감당하고 밝게 빛나는 부활의 아침에 진짜 위로가 있다는 말입니다.

따뜻한 말과 부드러운 인사, 사랑의 섬김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말하고 나누고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 되고 있는지 늘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사람의 위로만 받다가 지옥 백성이 되게 하느니, 진실한 충고를 듣고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므로 변화도 없고 성장도 없고 회개도 이끌지 못하는 그런 위로는 이제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아야 합니다.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서 마지막 날 주님께서“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시며 칭찬해 주시고 거룩한 세마포 옷을 입혀 주시며 천국의 상급을 받을 만한 진짜 위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마귀는 “배가 고프니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했습니다. 가족들은 이제 그만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한 제자는 절대로 십자가를 져서는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진짜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아, 그 참혹한 십자가를 지고 가거라”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최고의 위로요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당부 드립니다. 따뜻한 말과 사랑의 격려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합당하지 않은 가짜 위로 받기를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짜 위로가 보일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찬송가 458장의 렴이 저에게는 최고의 진정한 위로로 들립니다.

“참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받네”†

강산 (목사)

십자가 교회 , <나는 진짜인가? >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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